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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범인인데 천명패가 나를 골랐다

1화. 범인이 본 하늘

범인은 하늘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하늘의 그림자는 가장 먼저 땅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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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루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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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인데 천명패가 나를 골랐다 1화 대표 삽화
범인인데 천명패가 나를 골랐다 1화 1쪽 삽화

청계진 사람들은 비가 산 위에서 내려온다고 믿었다. 평범한 비가 아니라, 천명선종의 구름문을 지나며 한 번 걸러진 물이라고 했다. 그래서 봄비가 내리면 아이들은 처마 밑에 사발을 놓았고, 노인들은 그 물로 약을 달이면 병이 빨리 낫는다고 했다.

운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가 아는 비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차가웠고, 구멍 난 초가의 지붕을 가리지 않았으며, 짚신 사이로 들어와 발가락을 얼렸다. 선인의 비라면 적어도 장부 종이를 이렇게 젖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날도 비는 사납게 내렸다. 청계진 약포의 낡은 간판이 바람에 삐걱거렸고,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돌바닥을 때렸다. 운은 두 팔로 장부 상자를 감싸고 약포 뒷문으로 뛰어 들어갔다.

“늦었다.”

약포 주인 조노인이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운은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상자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상류 돌다리가 반쯤 내려앉았습니다. 수레가 못 지나가서 돌아왔습니다.”

“핑계도 젖어서 오는군.”

조노인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상자를 먼저 확인했다. 장부가 젖지 않은 것을 보고서야 그의 눈매가 조금 풀렸다.

운은 열일곱이었다. 수선자는 아니었다. 무공을 익힌 무인도 아니었다. 청계진 기준으로도 특별한 집안의 자식이 아니었다. 다만 글자를 조금 빨리 익혔고, 약초 이름을 잘 외웠으며, 산길에서 길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약포의 장부와 심부름을 맡았다.

청계진에는 그런 아이들이 많았다. 종문 아래 마을에 태어났지만 종문과는 아무 상관없는 아이들. 하늘 위 전각을 보며 자랐지만 평생 그 문턱에 올라서지 못하는 사람들.

범인.

수선자들은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악의가 없을 때도 있었고, 벌레를 밟지 않으려 피해 가는 정도의 선의가 담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운은 그 말이 싫었다. 범인이라는 말은 살면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판결처럼 들렸다.

청계진 북쪽에는 천명선종으로 오르는 산길이 있었다. 길이라기보다 계단에 가까웠고, 계단이라기보다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돌무더기에 가까웠다. 범인은 중턱 이상 오를 수 없었다. 정확히는 오를 수는 있었지만 살아 돌아온 사람이 드물었다.

산중턱부터는 영기가 짙어졌다. 수선자에게는 맑은 샘 같은 기운이라지만, 범인에게는 독한 술과 비슷했다.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오래 있으면 코피가 났다. 그래서 청계진 사람들은 종문에 바칠 약초와 물자를 중턱의 백석정까지만 올렸다.

그 뒤는 외문 잡역 제자들이 가져갔다.

운은 그 경계가 싫었다. 백석정 아래는 범인의 땅이고, 위는 수선자의 땅. 돌계단 하나 차이로 사람이 두 종류로 나뉘었다. 그러나 싫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는 오늘도 백석정으로 올라갈 약초 꾸러미를 장부에 적었다.

“백년근 세 뿌리, 청심초 열다섯 묶음, 냉월초 어린잎 두 상자.”

“냉월초는 조심해라.” 조노인이 말했다. “단약전에서 직접 찍어 간 물건이다. 하나라도 상하면 네 품삯 석 달이 날아간다.”

“제가 상하게 하면 석 달로 끝나겠습니까.”

“입은 살아 있군.”

운은 대꾸하지 않고 상자 뚜껑을 열었다. 냉월초 어린잎은 은빛을 띠었다. 범인의 눈에도 보일 만큼 잎맥이 맑았다. 그는 손을 대지 않고 냄새부터 맡았다. 차고 깨끗한 풀 냄새. 거기에 아주 희미한 쇳내가 섞여 있었다.

운의 손이 멈췄다.

“이 상자 누가 가져왔습니까?”

조노인이 눈을 찌푸렸다. “상류 채약꾼들이 새벽에 놓고 갔다. 왜?”

“흙 냄새가 다릅니다.”

“비 오는 날 흙 냄새가 다르지 같겠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운은 산길을 오래 다녔다. 남쪽 비탈의 붉은 흙, 북쪽 그늘의 검은 흙, 백석정 아래 물길의 차가운 자갈 냄새를 구분할 수 있었다. 냉월초 상자 바닥의 흙은 청계산 것이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흙보다 그 안에 섞인 무언가가 이상했다.

범인은 영기를 느끼지 못한다. 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독초와 상한 약초는 냄새로 구분할 수 있었다. 그건 수련이 아니라 오래 굴러다닌 몸의 기억이었다.

조노인은 운의 말을 반쯤만 믿었다. 아니, 반쯤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운이 장부와 약초에서 헛소리를 한 적은 많지 않았기에, 그는 냉월초 상자를 따로 묶으라고 했다.

“백석정에 올라가면 외문 제자에게 직접 말해라. 네 코가 이상하다고.”

“제가 말하면 믿겠습니까?”

“믿든 말든 네 입으로 말해라. 장부에는 적어 둔다.”

조노인은 붓을 들었다. 운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청계진 사람들은 수선자 앞에서 대개 허리를 굽혔지만, 조노인은 장부 앞에서만큼은 굽히지 않았다. 장부에 적힌 물건은 적힌 대로 가야 하고, 이상이 있으면 이상이 있다고 적어야 했다. 그것이 범인이 하늘 아래에서 겨우 붙잡은 질서였다.

오후가 되자 비는 더 거세졌다. 운은 냉월초 상자를 등에 메고, 다른 약초 꾸러미를 노새에 실었다. 함께 올라갈 아이는 없었다. 원래는 조노인의 손녀 소영이 같이 가야 했지만, 아침부터 열이 났다.

“혼자 괜찮겠냐?” 조노인이 물었다.

운은 노새의 고삐를 잡았다. “백석정까지만 갑니다.”

그 말은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백석정까지만. 경계까지만. 범인의 발이 허락된 곳까지만.

청계진을 벗어나자 길은 곧장 좁아졌다. 산비탈의 물이 흙을 깎아내리고, 돌 틈마다 흰 거품이 일었다. 노새는 몇 번이나 버텼다. 운은 욕을 삼키며 고삐를 짧게 잡았다. 약초보다 노새가 더 비쌌다. 노새보다 자기 목숨이 싼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중턱쯤 올랐을 때, 산 위에서 종소리가 났다.

한 번.

길게.

운은 걸음을 멈췄다. 천명선종의 종은 범인에게 자주 들리지 않았다. 들린다 해도 명절이나 외문 시험일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은 소리가 달랐다. 맑지 않았다. 종소리 끝이 찢어진 천처럼 흔들렸다.

노새가 갑자기 앞발을 들었다.

운은 고삐를 놓쳤다.

바람이 아래에서 위로 불었다. 비가 잠깐 허공에 멈춘 것처럼 보였다. 운은 본능적으로 엎드렸다. 바로 다음 순간, 산길 위쪽의 바위가 터졌다. 천둥소리와 함께 돌조각이 쏟아졌고, 노새가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쓰러졌다.

운은 장부 상자를 끌어안은 채 진흙 속을 굴렀다. 등에서 냉월초 상자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다행히 끈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는 숨을 죽였다.

위쪽 길에서 사람이 내려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외문 제자인 줄 알았다. 검은 우의를 걸쳤고, 허리에는 낡은 검을 찼다. 그러나 걸음이 이상했다. 비탈길을 내려오는데 발이 흙에 잠기지 않았다. 발밑에서 물이 스스로 비켜나는 듯했다.

수선자.

운의 목 안이 바짝 말랐다. 청계진 사람들은 수선자를 두려워했다. 천명선종 제자들은 그래도 규율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수선자가 종문에 속한 것은 아니었다. 문파도 가문도 없이 떠도는 자들, 장터와 산길 사이에서 약초와 법기 조각을 사고팔며 살아가는 자들.

산수.

그들은 범인이 아니었다. 범인이 그들을 가난한 떠돌이라고 착각하면 죽었다. 산수도 기를 다루는 수선자였다. 다만 뒤를 봐 줄 문파가 없고, 정해진 법도가 없을 뿐이었다.

검은 우의의 산수가 쓰러진 노새 옆에 멈췄다. 그는 약초 꾸러미를 살피더니 냉월초 상자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운은 진흙 속에서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숨을 쉬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사람은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다. 그는 아주 얕게, 흙 냄새 사이로 숨을 나눠 쉬었다.

“나와라.”

산수는 칼집을 손가락으로 한 번 두드렸다.

목소리는 낮았고, 이상하게 젖어 있었다.

“범인 숨소리는 숨겨도 티가 난다.”

운은 일어났다. 도망쳐 봐야 소용없었다. 산수는 이미 그를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겁먹은 짐승처럼 굴기보다, 물건을 맡은 심부름꾼처럼 서는 편이 나았다.

“청계진 조씨 약포의 운입니다.”

산수의 눈이 웃었다. 입은 웃지 않았다.

“운? 이름이 가볍군.”

“물건은 천명선종 단약전으로 가는 약초입니다. 백석정 인계 전이라 장부 책임은 저희 약포에 있습니다.”

“장부.”

산수가 천천히 그 말을 씹었다. “범인들은 죽을 때도 장부를 찾더군.”

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산수의 시선은 이미 그의 등 뒤 냉월초 상자에 가 있었다.

“그 상자를 내려놔라.”

“단약전 물건입니다.”

“그래서 달라는 것이다.”

비가 산수의 어깨를 때렸지만, 물방울은 우의에 닿기 전에 옆으로 흘렀다. 운은 그 작은 현상에서 둘 사이의 거리를 보았다. 자신은 젖고, 상대는 젖지 않는다. 자신은 숨이 가쁘고, 상대는 비탈에서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는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물건을 그냥 내주면 조노인은 망했다. 약포가 망하면 소영의 약값도 끊긴다. 운은 무의식적으로 냉월초 상자의 끈을 더 조였다.

“제가 상자를 내려놓으면, 저는 살려 주십니까?”

산수가 처음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범인치고 셈이 빠르구나.”

“셈이 느린 범인은 장부를 못 봅니다.”

“살려 주마.”

거짓말이었다. 운은 알았다. 장터에서 사기꾼을 많이 봤기 때문이 아니라, 산수의 눈이 이미 그를 물건이 아니라 흔적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훔친 약초에는 목격자가 남으면 안 된다.

운은 상자 끈을 풀었다.

그리고 손을 미끄러뜨려 허리춤의 작은 약주머니를 잡았다.

약주머니 안에는 독이 없었다. 범인이 수선자에게 쓸 독을 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들어 있는 것은 마른 석회가루와 고춧가루, 그리고 산길에서 뱀을 쫓을 때 쓰는 쓴 약초 가루였다.

운은 상자를 내려놓는 척 몸을 숙였다. 산수의 시선이 냉월초에 닿은 순간, 그는 약주머니를 진흙물에 던졌다.

펑, 하고 흙탕물이 튀었다.

산수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막이 그의 앞에서 흙탕물을 막았다. 운은 그럴 줄 알았다. 흙탕물은 산수를 맞히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물길을 더럽히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곧장 비탈 아래로 몸을 던졌다.

“잔재주.”

산수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운의 왼쪽 어깨가 뜨거워졌다. 보이지 않는 채찍이 살을 스치고 지나간 듯했다. 그는 비명을 삼켰다. 소리를 내면 숨이 끊기고, 숨이 끊기면 몸이 굳는다.

비탈 아래에는 오래된 물길이 있었다. 평소에는 마른 도랑이지만, 오늘 같은 폭우에는 작은 계곡이 된다. 운은 그 도랑의 방향을 알고 있었다. 세 걸음 아래, 썩은 나무뿌리. 다섯 걸음 오른쪽, 움푹 꺼진 돌. 그 너머에는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바위틈이 있다.

범인은 기를 느끼지 못한다.

대신 넘어져 본 곳은 기억한다.

운은 바위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바로 뒤에서 검은 기운이 바위를 때렸다. 돌가루가 얼굴에 쏟아졌다.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다음 틈을 못 본다.

“나와라.”

산수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운은 대답 대신 냉월초 상자를 품에 더 깊이 끌어안았다. 상자 안에서 아주 미세한 쇳내가 났다. 아까 약포에서 맡은 냄새보다 짙어져 있었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산수가 냉월초를 훔치려는 게 아니다.

이미 건드린 냉월초를 회수하러 온 것이다.

상자 바닥의 흙은 청계산 것이 아니었다. 아마 산수가 미리 손을 써 둔 흙이었다. 단약전으로 올라가면 문제가 생길 물건. 혹은 단약전 안에서 무언가를 오염시킬 물건.

운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가 할 일은 물건을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이 상자가 종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해야 했다.

산수의 발소리가 바위틈 앞에 멈췄다. 운은 허리춤에서 장부용 작은 칼을 꺼냈다. 사람을 찌르기 위한 칼이 아니었다. 대나무 끈을 자르고, 종이 묶음을 다듬는 칼. 수선자 앞에서는 장난감보다 못했다.

하지만 상자 끈은 자를 수 있었다.

운은 냉월초 상자의 아래쪽 매듭을 조심스럽게 끊었다. 뚜껑을 열면 산수가 알아챌 것이다. 바닥을 열어야 했다. 조씨 약포의 운반 상자는 습기를 빼기 위해 바닥 판이 이중이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약포 사람뿐이었다.

“셋을 세겠다.” 산수가 말했다.

운은 바닥 판을 열었다.

“하나.”

은빛 어린잎 사이에 검은 모래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모래는 비에 젖었는데도 뭉치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 있는 벌레처럼 잎맥을 따라 움직였다.

“둘.”

운은 약초를 살릴 생각을 버렸다. 그는 상자를 뒤집어 바위틈 아래 물길로 쏟았다. 냉월초 어린잎이 빗물에 흩어졌다. 검은 모래도 함께 쓸려 내려갔다.

“셋.”

바위가 갈라졌다.

운은 물길을 따라 몸을 낮췄다. 폭우로 불어난 물이 그를 끌어당겼다. 등과 팔꿈치가 돌에 부딪혔다. 그러나 그는 상자를 놓지 않았다. 빈 상자라도 증거였다.

그가 바위틈 밖으로 휩쓸려 나왔을 때, 산수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여유가 사라졌다.

“미친 범인 놈.”

운은 피 섞인 침을 뱉었다.

“장부에는 손실 사유가 필요해서요.”

산수의 손이 올라갔다. 이번에는 장난이 아니었다. 검은 기운이 빗줄기 사이로 모였다. 운은 그 기운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주변의 비가 한쪽으로 휘는 것을 보고 알았다. 저것이 자신을 죽일 것이다.

그 순간 하늘에서 다시 종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맑았다.

산수의 검은 기운이 허공에서 끊어졌다.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줄을 잘라 낸 것처럼, 그것은 힘을 잃고 비에 흩어졌다.

흰 도포의 노인이 산길 위에 서 있었다.

노인은 우산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젖지 않았다. 앞선 산수처럼 빗물을 억지로 밀어내는 느낌이 아니었다. 비가 그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비와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젖지 않는 듯했다.

운은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알았다. 저 노인은 산수와 다르다.

“천명선종 백야.”

산수가 이를 갈았다.

백야 장로는 산수를 보지 않았다. 먼저 운을 보았다. 정확히는 운의 품에 남은 빈 냉월초 상자를 보았다. 그리고 물길로 흩어진 은빛 잎, 검은 모래, 무너진 바위, 진흙투성이 범인의 손을 차례로 보았다.

“네가 쏟았느냐.”

운은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영기를 보았느냐.”

“못 봅니다.”

“그럼 무엇으로 알았느냐.”

운은 잠깐 망설였다. 이런 말을 수선자 앞에서 해도 되는지 몰랐다. 그러나 거짓말할 힘도 없었다.

“흙 냄새가 달랐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훔치러 온 게 아니라 회수하러 온 얼굴이었습니다.”

백야 장로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산수가 웃었다. 웃음 속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백야, 천명선종도 이제 범인 코를 믿나?”

“범인의 코가 네 술법보다 먼저 움직였군.”

백야가 처음으로 산수를 보았다. 그 한 번의 시선에 산수의 어깨가 굳었다.

운은 그제야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리가 떨렸다. 그는 서 있으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무릎이 꺾였다.

백야의 소매가 살짝 움직였다. 운은 땅에 쓰러지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힘이 그의 등을 받쳤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힘이었다. 마치 바람이 잠깐 뼈를 빌려 준 것 같았다.

“저자는 무혼교의 잔향을 품었다.” 백야가 말했다. “혼자 온 산수가 아니다.”

“늦었다.” 산수가 말했다. “씨앗은 이미 올라갔다.”

“그 씨앗 하나는 범인이 흘려보냈다.”

산수의 얼굴이 뒤틀렸다. 그는 갑자기 뒤로 물러났다. 검은 우의가 비와 섞여 흐려졌다. 도망치려는 것이다.

백야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를 내렸다.

산길의 빗물이 모두 칼이 되었다.

운은 그 장면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빗방울 하나하나는 여전히 물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같은 방향으로 떨어지는 순간, 물은 피할 수 없는 법칙이 되었다. 산수의 몸이 허공에서 멈췄다. 다음 순간 그는 무릎을 꿇었다.

피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비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백야가 그렇게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은 처음으로 수선자의 힘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도 보았다.

산수는 묶였다. 밧줄이 아니라 빛으로 묶였다. 백야는 그를 산길 한쪽에 던져 두고 운에게 다가왔다.

“이름.”

“운입니다.”

“성은.”

운은 대답하지 못했다. 성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버려진 아이에게 남은 성은 대개 키운 사람의 편의에 따라 바뀌었다. 조씨 약포에서는 그를 조운이라 부르지 않았다. 식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부에는 그냥 운이라고 적혔다.

“없습니다.”

백야는 더 묻지 않았다.

“범인이군.”

그 말은 산수가 내뱉던 범인이라는 말과 달랐다. 깔보는 소리가 아니었다. 확인하는 말이었다.

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영근도 없습니다. 적어도 검사받은 적은 없습니다.”

“검사받은 적이 없는데 없다고 단정하느냐.”

“있었다면 살면서 한 번쯤은 티가 났을 것 같아서요.”

백야의 눈에 아주 희미한 빛이 스쳤다. 웃음은 아니었지만, 웃음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수선자가 되고 싶으냐.”

운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청계진의 아이들은 모두 한 번쯤 그런 꿈을 꾼다. 구름 위 전각을 걷고, 검을 타고 하늘을 가르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누구에게도 허리를 굽히지 않는 꿈. 그러나 꿈은 오래전에 접어 두었다. 범인이 꿈을 오래 품으면 삶이 더 비참해진다.

“되고 싶다고 하면 됩니까?”

“대부분은 안 된다.”

“그럼 왜 물으십니까.”

“대부분이 아닌 경우도 있으니까.”

운은 백야를 올려다보았다. 비 때문인지 피 때문인지 시야가 흐렸다.

“저는 하늘을 못 봅니다.”

“오늘 너는 땅을 보았다.”

백야는 눈을 내리깔고도 상대의 숨을 놓치지 않았다.

“하늘의 재앙은 늘 먼저 땅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것을 본 자가 하늘을 못 본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운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가슴 어딘가가 이상하게 조용해졌다. 칭찬을 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무거운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백야는 손을 뻗었다. 운은 움찔했지만 피하지 않았다. 노인의 손가락이 그의 손목에 닿았다.

순간 몸 안으로 차가운 물이 들어온 듯했다. 운은 이를 악물었다. 심장, 폐, 뼈, 피가 차례로 낯선 빛 아래 놓이는 기분이었다. 그는 자기 몸이 이렇게 빈약한 물건인지 처음 알았다.

백야는 오래 보지 않았다.

“영근 반응은 없다.”

예상한 말이었다. 그런데도 운의 속이 조금 내려앉았다. 사람은 기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도, 판결을 들으면 상처받는다.

“다만 이상하군.”

운이 고개를 들었다.

백야는 그의 허리춤을 보았다. 운도 따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오래된 나무패가 하나 달려 있었다. 조노인이 장부 심부름을 맡기며 준 물건이었다. 약포의 창고 열쇠와 같이 묶여 있던 낡은 패. 글자는 닳아 거의 보이지 않았고, 운은 그것을 그냥 부적으로 여겼다.

그 나무패가 젖은 옷 사이에서 희미하게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운의 숨이 멈췄다.

“그건...”

“네 것이냐.” 백야가 물었다.

“약포 창고에 있던 겁니다. 주인 어르신이 길 잃지 말라고...”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운도 알았다. 길을 잃지 말라는 부적치고는 백야 장로의 눈빛이 너무 깊었다.

백야는 나무패를 빼앗지 않았다. 손도 대지 않았다. 다만 그 앞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수선자가 범인의 낡은 패 앞에서 물러섰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운은 이 물건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천명패의 잔편일 수도 있겠군.” 백야가 낮게 말했다.

운은 그 말을 처음 들었다. 그러나 천명이라는 두 글자는 청계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았다. 천명선종의 천명. 하늘이 내린 명. 범인에게는 너무 먼 말.

“저한테 왜 그런 게 있습니까.”

“그걸 묻기엔 네가 너무 늦게 발견했고, 내가 너무 늦게 보았다.”

백야는 산길 위쪽을 보았다. 비구름 사이로 천명선종의 산문이 아주 희미하게 보였다. 평소 운이 백석정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바로 그 하늘이었다. 오늘은 그 하늘이 조금 낮아 보였다.

“운.”

“예.”

“백석정까지 갈 수 있느냐.”

운은 자기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떨리고 있었다. 왼쪽 어깨는 피로 젖었고, 손바닥은 돌에 찢겼다. 정상적인 대답은 못 간다였다.

그런데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다.

“냉월초 손실 보고를 해야 합니다.”

백야는 한참 그를 보았다.

“장부 때문이냐.”

“장부 때문입니다. 그리고 단약전 안에 같은 게 더 들어갔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 일은 종문이 한다.”

“제가 냄새를 압니다.”

말하고 나서 운은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것을 알았다. 범인이 종문 일에 끼어들겠다고 말한 셈이다. 산수가 들었다면 웃었을 것이다. 외문 제자가 들었다면 꾸짖었을 것이다.

백야는 웃지도 꾸짖지도 않았다.

“좋다.”

운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백석정이 아니라 산문까지 간다.”

비가 한순간 더 차가워졌다.

“살아서 오르면, 네 눈으로 확인하게 해 주마.”

그때 산길 아래에서 작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운은 고개를 돌렸다. 무너진 바위 뒤, 약초 광주리를 멘 어린 잡역 제자가 웅크리고 있었다. 아마 백석정에서 내려오다 산수의 습격을 피해 숨은 아이일 것이다.

운은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나와.”

아이는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했다. 운은 한숨을 삼키고 무릎을 꿇었다.

“저 흰 옷 어르신이 무서우면 나를 봐. 나도 무서운데 아직 살아 있잖아.”

아이가 눈물 젖은 얼굴을 들었다.

“형, 범인이에요?”

“그래.”

“그런데 왜 도망 안 갔어요?”

운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멋진 이유는 없었다. 냉월초 상자를 지키려다 일이 커졌고, 살려고 굴렀고, 죽기 싫어서 머리를 썼다. 거기에 아이가 있었고, 산수가 있었고, 백야가 왔다.

세상일은 장부처럼 깔끔하게 칸이 나뉘지 않았다.

“도망갈 길을 잘못 봤어.”

아이는 그 말에 울다가 웃었다. 운은 아이의 광주리를 대신 들어 주었다. 어깨가 찢어질 듯 아팠지만, 빈손으로 걷는 것보다 나았다. 손에 뭔가 들려 있으면 사람은 덜 떨린다.

백야는 두 사람을 기다렸다.

산수는 빛의 밧줄에 묶인 채 의식을 잃어 가고 있었다. 운은 그를 지나치며 처음으로 제대로 보았다. 산수의 허리에는 여러 개의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부적, 작은 병, 깨진 옥 조각, 말린 약초. 떠돌이 수선자의 살림이었다.

가난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범인과 달랐다.

그의 가난은 힘을 가진 자의 결핍이었다. 운의 가난은 애초에 힘이라는 칸이 장부에 없는 상태였다.

그 차이를 운은 똑똑히 기억했다.

백석정에 도착했을 때, 외문 제자 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백야를 보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운이 들고 온 빈 상자와 피 묻은 옷을 보고는 더 굳었다.

“장로님, 이 범인은...”

“증인이다.” 백야가 말했다.

그 한마디에 제자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범인에서 증인으로. 대단한 상승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발로 치워도 되는 물건은 아니게 되었다.

운은 빈 냉월초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렸다.

“청계진 조씨 약포 운반분입니다. 냉월초 어린잎 두 상자 중 한 상자 오염. 현장에서 폐기. 사유는...”

말하던 그는 잠깐 멈췄다. 장부 문장으로는 오늘 일을 다 적을 수 없었다. 산수, 검은 모래, 물길, 백야, 천명패. 어느 칸에 넣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백야는 젖은 소매를 가만히 내렸다.

“사유는 무혼교 잔향.”

외문 제자들의 얼굴이 변했다.

운은 그 단어를 기억했다. 무혼교. 산수의 배후. 냉월초에 심긴 검은 모래. 종문 안으로 들어가려던 씨앗.

이제 알았다. 자신이 오늘 본 것은 우연한 강도질이 아니었다. 종문을 향한 작은 칼끝이었다.

그리고 그 칼끝을 범인이 먼저 밟았다.

백야는 외문 제자에게 명했다.

“단약전으로 전갈을 보내라. 오늘 청계진에서 올라온 냉월초 전량 봉인. 같은 흙 냄새가 나는 운반분은 따로 빼라.”

외문 제자가 순간 운을 보았다.

“이자가 구분합니까?”

“그렇다.”

운은 입을 열려다 닫았다. 백야가 너무 쉽게 말해 버렸다. 이제 물러설 길이 없었다.

범인인데 천명패가 나를 골랐다 1화 15쪽 삽화

백석정 뒤쪽부터는 공기가 달랐다. 운은 몇 걸음만 걸어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이는 외문 제자가 데려갔고, 산수는 빛의 밧줄째 들려 올라갔다. 운만이 자기 발로 걸었다.

“힘들면 말해라.” 백야가 말했다.

“말하면 내려보내 주십니까?”

“아니다. 잠깐 쉬게 해 주지.”

“그럼 조금 더 가겠습니다.”

백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운은 한 계단씩 올랐다. 천명선종으로 오르는 길은 청계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길었다. 흰 돌계단은 구름 속으로 사라졌고, 양옆의 석등에는 비가 닿지 않았다. 계단 중간중간 금색 문양이 새겨져 있었지만, 운은 오래 볼 수 없었다. 보면 머리가 어지러웠다.

범인의 몸은 이 길을 거부했다.

가슴이 눌리고, 귀가 먹먹해지고, 눈앞이 하얘졌다. 운은 이를 악물었다. 몸이 거부한다고 해서 발까지 멈출 필요는 없었다.

“왜 올라오느냐.” 백야가 물었다.

운은 숨을 고르며 답했다.

“제가 본 걸 끝까지 확인하려고요.”

“그뿐이냐.”

“그리고...”

그는 잠시 말을 골랐다.

“아까 장로님이 대부분은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랬지.”

“그럼 대부분이 아닌 경우가 뭔지 보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백야가 아주 작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산중턱의 얼음이 아주 얇게 금 가는 소리 같았다.

“좋은 욕심은 아니다.”

“범인은 좋은 욕심만 골라 가질 여유가 없습니다.”

중간쯤 올랐을 때 운은 토했다. 아침에 먹은 묽은 죽과 빗물이 섞여 나왔다. 그는 계단 옆에 손을 짚고 한참 숨을 몰아쉬었다. 백야는 기다렸다. 손을 잡아 주지는 않았다.

그것이 이상하게 고마웠다.

도와주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와줘서 올라간 길은 자기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 운은 그런 생각을 했다가 스스로 비웃었다. 범인이 수선자의 길 앞에서 자기 길을 따지고 있다니, 정신이 어지럽긴 한 모양이었다.

허리춤의 나무패가 다시 한 번 떨렸다.

이번에는 운도 느꼈다. 영기라기보다 아주 오래된 종소리 같았다. 몸 안에서 울리는 것이 아니라, 몸 바깥 어딘가에서 자신을 불러 세우는 울림.

백야가 멈췄다.

“느꼈느냐.”

“예.”

“무엇처럼 느껴졌느냐.”

“종소리 같습니다. 그런데 귀로 듣는 소리는 아닙니다.”

백야의 눈빛이 깊어졌다.

“영근이 없는 범인이 천명패의 울림을 듣는다.”

운은 그 말이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위험합니까?”

“대개 그렇다.”

“좋은 일은 아닙니까?”

“좋은 일과 위험한 일은 자주 같은 문으로 들어온다.”

운은 웃을 힘이 없어서 눈만 감았다가 떴다.

“그 문, 닫을 수 있습니까?”

백야는 산문 쪽을 보았다.

“이미 열렸다.”

산문 앞에 도착했을 때, 비는 그쳐 있었다. 아니, 산문 안쪽에는 애초에 비가 없었다. 구름은 발아래 흘렀고, 하늘은 너무 가까웠다. 운은 자신이 올라온 길을 돌아보았다. 청계진은 보이지 않았다. 범인의 마을은 구름 아래 숨어 있었다.

산문은 거대했다. 흰 돌기둥 두 개가 하늘을 받치고, 그 위에는 금색 문양이 둥글게 떠 있었다. 문양은 천명패의 희미한 무늬와 닮은 듯했다. 운은 오래 보지 못하고 시선을 내렸다. 눈이 아팠다.

외문 집사들이 달려 나왔다. 그들은 백야에게 예를 올리고, 산수 포박과 냉월초 오염 보고를 받았다. 운은 그 사이에서 젖은 범인으로 서 있었다. 누구도 그에게 앉으라고 하지 않았다.

그건 익숙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시선들이 그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왜 범인이 여기까지 왔는지, 왜 백야 장로가 직접 데려왔는지, 왜 그의 허리춤 낡은 패가 산문 앞에서 빛나는지 묻고 있었다.

백야는 눈을 내리깔고도 상대의 숨을 놓치지 않았다.

“이 아이의 영근을 재라.”

집사 하나가 당황했다.

“장로님, 범인을 바로 산문 비석에 세우는 것은 규정상...”

“규정은 안다.”

백야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집사는 더 말하지 못했다.

운은 검은 비석 앞에 섰다. 비석은 사람 키보다 컸고, 표면이 물처럼 매끄러웠다. 외문 후보들이 손을 얹는다는 영근 측정석이었다.

운은 손을 올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예상한 결과였다.

집사들의 표정에는 역시나 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때 허리춤의 나무패가 푸른빛을 냈다.

비석이, 아주 작게, 금이 갔다.

소리는 크지 않았다.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정도였다. 그러나 산문 앞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들었다. 집사들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운은 손을 떼려 했지만, 손바닥이 비석에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비석 안쪽에서 푸른 선 하나가 올라왔다.

영근의 빛은 아니었다. 운은 직감했다. 이것은 자기 몸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나무패에서, 혹은 비석이 나무패를 알아보고 내는 반응이었다.

백야가 손을 뻗었다.

푸른 선이 멈췄다.

“그만.”

한마디에 비석의 떨림이 가라앉았다. 운의 손도 떨어졌다. 그는 뒤로 물러나려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집사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로님, 이건...”

“본 대로만 기록해라.” 백야가 말했다. “영근 반응 없음. 천명패 잔편 반응 있음. 산문 비석 균열.”

“균열까지 기록합니까?”

“장부란 그런 것이다.”

운은 그 말을 듣고 백야를 올려다보았다. 장부란 그런 것이다. 조노인이 하던 말과 닮았다. 갑자기 청계진 약포의 낡은 탁자와 젖은 붓, 투덜거리던 노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이곳까지 가져온 것은 냉월초 상자만이 아니었다.

범인의 방식도 함께 가져왔다.

백야가 운에게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내려갈 수 있다. 오늘 일은 종문이 처리한다. 조씨 약포에는 손실 책임을 묻지 않게 하겠다.”

운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은 안전한 길이었다. 청계진으로 돌아가면 조노인은 욕을 하다가도 약을 발라 줄 것이다. 소영은 상자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를 것이다. 며칠 지나면 사람들은 운이 산문까지 갔다 왔다고 떠들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범인으로 살 것이다.

운은 산문 안쪽을 보았다. 흰 전각들이 구름 위에 떠 있었다. 그곳에는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자신을 벌레처럼 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영근도 없는 범인이 천명패 잔편 하나 때문에 끌려왔다면, 이용하려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하나는 알았다.

오늘 산길에서 검은 모래를 처음 알아챈 것은 자신이었다. 수선자의 눈이 아니라 범인의 코와 발이 먼저 움직였다. 하늘 위 종문이 놓친 그림자를 땅에서 본 것이다.

그렇다면 범인에게도 쓸모가 있었다.

쓸모가 있다면, 운명이라는 장부에 빈칸 하나쯤은 요구할 수 있다.

“내려가면 저는 다시 백석정 아래까지만 갈 수 있습니까?”

백야가 답했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럼 안 내려갑니다.”

집사들이 술렁였다.

운은 무릎에 힘을 주고 일어섰다. 몸은 아직 떨렸지만, 목소리는 생각보다 흔들리지 않았다.

“저는 수선자가 아닙니다. 영근도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 것을 못 본 척하고 내려가면, 평생 백석정 아래에서 하늘 욕만 하며 살 것 같습니다.”

백야는 말없이 들었다.

“그게 싫습니다.”

긴 침묵이 지나갔다.

백야가 물었다.

“후회할 것이다.”

“내려가도 후회합니다.”

“죽을 수도 있다.”

“오늘도 죽을 뻔했습니다.”

“수선의 길은 오늘보다 길고, 더 잔인하다.”

운은 피 묻은 손으로 허리춤의 나무패를 쥐었다.

“그럼 장부를 길게 써야겠군요.”

백야는 이번에는 분명히 웃었다. 아주 짧았지만, 산문 앞의 모두가 보았다. 외문 집사들의 표정이 더 복잡해졌다. 백야 장로가 범인의 말에 웃었다는 사실은 오늘 산수 하나를 잡은 일보다 더 오래 소문날지도 몰랐다.

“좋다.”

백야는 대답 대신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한 번 짚었다.

“오늘부터 너는 천명선종 외문 후보가 된다.”

운은 숨을 멈췄다.

후보.

제자가 아니라 후보. 그러나 그 한 글자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컸다. 백석정 아래의 범인에서 산문 안의 후보로. 아직 아무것도 얻지 못했지만, 적어도 문턱은 넘었다.

집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름은 운으로 기록합니까?”

백야는 운을 보았다.

“운은 가볍다 했지.”

운은 산수의 조롱을 떠올렸다. 이름이 가볍다는 말. 그때는 대꾸하지 못했다. 지금도 대단한 대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백야가 산문 위 구름을 보았다.

“구름은 가볍기에 오른다. 그러나 푸른 구름은 하늘의 색을 품는다.”

그는 집사의 붓끝을 향해 말했다.

“청운.”

집사가 멈칫했다.

“청운으로 기록해라.”

운은, 아니 청운은, 그 이름을 속으로 한 번 불러 보았다. 낯설었다. 너무 컸고, 너무 높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싫지는 않았다.

범인의 이름은 장부 한 귀퉁이에 적힌 소리였다.

청운이라는 이름은 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길은 분명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외문 후보 명패는 나무로 되어 있었다. 청계진 약포의 장부패보다 조금 단단하고, 조금 차가웠다. 앞면에는 천명선종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뒷면에는 새 이름이 적혔다.

청운.

집사는 그 이름을 적으며 아직도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규정상 한 달 뒤 첫 시험을 통과해야 정식 외문 제자가 된다. 통과하지 못하면 명패는 회수된다.”

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 과목은 무엇입니까?”

집사는 그의 질문이 의외라는 듯 보았다.

“체력, 목검 삼식, 기초 호흡.”

“기초 호흡은 영근이 없어도 가능합니까?”

“대개 불가능하다.”

“대개가 많군요.”

집사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백야가 옆에 있어 꾸짖지는 못했다.

백야는 대답 대신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한 번 짚었다.

“기초 호흡은 내가 본다.”

이번에는 집사들이 거의 숨을 삼켰다. 청운도 놀랐다. 장로가 외문 후보의 호흡을 본다는 말의 무게를 아직 정확히 몰랐지만, 주변 반응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왜 저입니까?” 청운이 물었다.

백야는 답했다.

“네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 말은 이상하게 마음을 편하게 했다.

“네가 본 것을 종문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네가 천명패 잔편을 지녔다면, 그냥 내려보낼 수 없다.”

“감시입니까?”

“보호이기도 하다.”

“둘 다군요.”

“그렇다.”

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달콤한 말보다 나았다. 감시와 보호. 장부에 적기 쉬운 말이었다.

그날 저녁, 청운은 외문 숙소의 가장 끝방에 배정되었다. 방 안에는 이미 세 명의 후보가 있었다. 그들은 젖은 범인이 백야 장로와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말을 잃었다.

그중 키가 크고 눈매가 날카로운 소년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너, 영근도 없다며.”

“그렇다더군.”

“그런데 왜 여기 있지?”

청운은 젖은 옷을 벗어 걸며 말했다.

“나도 아직 장부 정리가 안 됐다.”

소년은 미간을 찌푸렸다.

“장난하나?”

“그럴 힘은 없다.”

다른 후보 하나가 작게 웃었다. 눈매 날카로운 소년은 그를 노려보다가 다시 청운을 보았다.

“강림이다. 중품 금영근.”

자기소개라기보다 선전포고에 가까웠다.

청운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청운. 영근 없음.”

방 안이 조용해졌다. 강림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비웃을 줄 알았는데, 그는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청운이 거짓으로라도 하품 영근이라 하지 않은 점을 재는 듯했다.

“영근 없이 한 달 뒤 시험을 보겠다고?”

“응.”

“떨어질 텐데.”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왜 해?”

청운은 침상 위에 명패를 올려놓았다. 나무패 두 개가 나란히 놓였다. 하나는 천명선종 외문 후보 명패. 하나는 정체 모를 천명패 잔편.

“백석정 아래로 돌아가기 싫어서.”

강림은 더 묻지 않았다.

그 대답이 우습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이 깊었다. 외문 숙소는 청계진 약포보다 조용했지만, 청운은 잠들지 못했다. 몸이 아픈 탓도 있었고, 산문 안의 공기가 아직 낯선 탓도 있었다. 무엇보다 허리춤의 천명패 잔편이 자꾸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낡은 나무패였다. 가까이 보면 문양이 있었다. 탑인지, 검인지, 연꽃인지 알 수 없는 문양. 청운은 낮에 산문 비석에 생긴 금을 떠올렸다.

“너 때문에 일이 커진 거냐.”

나무패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나무가 대답하면 그건 더 큰 문제다.

청운은 피식 웃었다. 웃음이 나오자 어깨 통증이 늦게 몰려왔다. 그는 이를 악물고 숨을 삼켰다.

그때 문밖에서 낮은 발소리가 멈췄다.

“깨어 있느냐.”

백야의 목소리였다.

청운은 곧장 일어났다.

문을 열자 백야가 서 있었다. 노인은 작은 약병 하나를 던졌다. 청운은 겨우 받았다.

“상처에 발라라.”

“감사합니다.”

“감사는 시험을 통과한 뒤에 해라.”

백야는 돌아서려다 멈췄다.

“오늘 네가 한 일은 용기가 아니다.”

청운은 말없이 들었다.

“무지와 계산과 운이 섞인 결과다. 착각하지 마라. 같은 일을 다시 하면 죽는다.”

그 말은 차가웠다. 그러나 청운은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오늘 자신이 영웅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 정확히 말해 주었다.

“예.”

“그래도 네 계산은 쓸 만했다.”

백야는 그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청운은 닫힌 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그것은 칭찬보다 오래 남는 평가였다.

약을 바르자 상처가 시렸다. 청운은 입술을 깨물고 소리를 참았다. 같은 방 후보들은 자는 척했지만, 모두 깨어 있었다. 강림도 마찬가지였다.

“백야 장로가 직접 약을 줬나?”

“그런 것 같다.”

“너 진짜 뭐냐?”

청운은 붕대를 감으며 답했다.

“범인이었지.”

“지금은?”

그 질문에 청운은 잠시 멈췄다.

지금은 무엇인가.

수선자는 아니다. 외문 제자도 아니다. 영근도 없다. 그러나 더 이상 백석정 아래 범인만도 아니다. 후보. 증인. 감시 대상. 천명패 잔편의 주인일지도 모르는 자.

이름도 바뀌었다.

“아직 정리 중이다.”

강림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더 묻지 않았다.

청운은 침상에 앉아 첫 호흡을 해 보았다. 기초 호흡법은 아직 배우지 못했다. 그는 그냥 평소처럼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산문 안의 공기는 무거웠다. 들이쉴 때마다 가슴 안쪽이 조금 따끔거렸다.

이것이 영기일까.

수선자에게는 힘이 되는 것이 범인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 청운은 그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지만, 적어도 위험은 정직했다. 모르는 척하면 더 크게 물어뜯는다.

그는 천명패 잔편을 손에 쥐고 다시 숨을 들이쉬었다.

아무 빛도 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오늘 그는 하늘을 오른 것이 아니다. 겨우 문턱에 발을 걸쳤을 뿐이다.

문턱에서 해야 할 일은 빛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는 것이다.

새벽이 오기 전, 청운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다시 청계진 산길에 있었다. 비가 내렸고, 냉월초 잎이 물길을 따라 흘렀다. 검은 모래가 잎맥을 타고 움직였다. 그는 그것을 잡으려 했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러다 물길 아래에서 거대한 탑의 그림자가 떠올랐다.

탑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 있었다. 뒤집힌 하늘처럼, 발밑 깊은 곳에서 금빛 문양이 회전했다. 그 중심에 낡은 나무패가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말했다.

너는 하늘을 훔친 것이 아니다.

하늘이 잃어버린 것을 주운 것이다.

청운은 눈을 떴다.

온몸이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외문 숙소 밖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첫 새벽종.

강림이 벌떡 일어났다. 다른 후보들도 허둥지둥 옷을 챙겼다. 청운은 몸을 일으키다 어깨 통증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일어났다.

방문을 열자 차가운 새벽 공기가 밀려왔다. 멀리 연무장의 돌바닥이 푸른 어둠 속에 놓여 있었다. 후보들이 하나둘 뛰어나갔다.

강림이 문 앞에서 돌아보았다.

“영근 없음.”

“청운이다.”

“그래, 청운. 뛸 수 있나?”

청운은 잠깐 자기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느리게는.”

강림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느리면 맞는다.”

“그럼 맞으면서 가야지.”

청운은 연무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범인의 첫 수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연무장에는 목진 교두가 서 있었다. 그는 후보들을 훑어보다 청운에게서 시선을 멈췄다. 소문은 이미 돌았을 것이다. 영근 없는 범인, 백야 장로가 데려온 후보, 산문 비석에 금을 낸 아이.

목진 교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달린다.”

후보들의 얼굴이 굳었다.

청운은 속으로 계산했다. 어깨 부상, 수면 부족, 영기 과민, 비탈길 후유증. 달리기에 좋은 조건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계산은 포기의 핑계가 아니라 손실을 줄이는 도구다.

그는 맨 뒤에 섰다.

종이 울렸다.

후보들이 뛰었다. 강림은 앞줄로 치고 나갔다. 발소리가 일정했다. 수선자의 자질이 있는 몸은 범인의 몸과 다르게 움직였다. 청운은 곧바로 뒤처졌다.

숨이 탔다.

연무장 한 바퀴도 돌기 전에 가슴이 아팠다. 산문 안의 공기가 폐를 긁는 것 같았다. 그는 속도를 더 늦췄다. 누군가 뒤에서 웃었다. 목진 교두의 죽봉 소리가 웃음을 끊었다.

“웃을 힘이 있으면 한 바퀴 더 돈다.”

웃던 후보가 조용해졌다.

청운은 그 말을 기억했다. 이곳에서는 비웃음도 체력으로 계산된다. 좋은 규칙이었다.

다섯 바퀴째, 그는 넘어졌다. 손바닥이 다시 찢어졌다. 피가 돌바닥에 묻었다. 그는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눈앞이 흔들렸다.

목진 교두가 다가왔다.

“포기하나.”

청운은 숨을 삼켰다.

“아직... 장부에 포기라고 쓰기엔 이릅니다.”

목진은 잠시 그를 보았다.

“그럼 일어나라.”

그날 오전, 청운은 꼴찌로 달리기를 끝냈다. 그러나 끝냈다. 그 차이는 작지만 컸다. 중간에 포기한 후보 둘은 연무장 밖으로 끌려나갔다. 외문 후보의 첫날은 친절하지 않았다.

목검 수련에서 청운은 더 형편없었다. 검을 든 손목이 흔들렸고, 어깨 상처 때문에 베기 각도가 자꾸 무너졌다. 강림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다가 혀를 찼다.

“그건 검이 아니라 빨래 방망이다.”

“빨래도 못 해 봤나 보네. 그렇게 휘두르면 옷 찢어진다.”

강림은 잠시 말을 잃었다. 주변 후보 몇 명이 웃음을 삼켰다.

목진 교두가 다가와 청운의 목검을 잡았다.

“힘을 빼라.”

“빼면 떨어뜨립니다.”

“그러니 네 몸이 검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목진은 청운의 손목을 아주 조금 돌려 주었다. 그 작은 변화만으로 목검의 무게가 달라졌다. 청운은 놀랐다. 힘을 더 쓰지 않았는데 덜 무거웠다.

“수선은 하늘의 힘을 훔치는 일이 아니다.” 목진이 말했다. “먼저 네 몸 안에서 새는 힘을 막는 일이다.”

그 말은 청운에게 바로 들어왔다. 장부와 같았다. 돈을 많이 벌기 전에 새는 돈부터 막아야 한다. 힘도 그렇다면, 범인에게도 시작점은 있었다.

그는 다시 목검을 들었다.

한 번.

두 번.

열 번.

형태는 여전히 나빴지만, 아까보다는 덜 새었다.

강림의 눈이 조금 달라졌다. 인정은 아니었다. 다만 관찰이었다.

청운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오후가 되어 단약전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연분홍빛 허리끈을 맨 소녀였다. 그녀는 냉월초 오염 건을 확인하러 왔다고 했다. 이름은 소정.

“당신이 냄새를 구분했다는 범인... 아니, 후보인가요?”

“청운입니다.”

소정은 실수를 바로잡으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소정이에요. 단약전 수련생입니다. 어제 폐기한 냉월초 잔편을 봤어요. 정말 흙 냄새만으로 알았나요?”

“흙 냄새와 저자의 얼굴로 알았습니다.”

“얼굴이요?”

“훔치러 온 사람은 물건을 봅니다. 회수하러 온 사람은 흔적을 봅니다.”

소정은 한참 그를 보았다.

“이상한 말을 설득력 있게 하네요.”

“장부를 오래 보면 그렇게 됩니다.”

소정은 작게 웃었다. 그리고 약병을 내밀었다.

“상처 보세요. 백야 장로님 약은 좋지만, 바르는 방식이 엉망이면 흉이 남아요.”

청운은 거절하려 했지만, 손바닥이 너무 아팠다. 그는 얌전히 손을 내밀었다. 소정은 상처를 보자마자 얼굴을 찡그렸다.

“이 손으로 목검을 들었어요?”

“들긴 했습니다. 검처럼 보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농담할 상태가 아닌데요.”

소정의 손끝에서 아주 희미한 약향이 났다. 청운은 그 향을 맡고 어제 냉월초의 쇳내를 떠올렸다. 두 냄새는 극명하게 달랐다. 하나는 살리는 냄새, 하나는 안쪽부터 썩히는 냄새.

그는 문득 알았다.

자신의 첫 재능은 하늘이 아니라 땅에 있었다.

저녁이 되자 청운은 다시 백야에게 불려 갔다. 작은 전각 안에는 운천도인도, 천현도인도 없었다. 백야 혼자 차를 마시고 있었다. 청운은 문턱 밖에서 예를 올렸다.

“들어와라.”

청운은 안으로 들어갔다. 전각 안 공기는 연무장보다 훨씬 맑았다. 그런데도 가슴이 덜 답답했다. 아마 백야가 조절해 둔 것일 것이다.

“첫날은 어땠느냐.”

“범인의 몸이 쓸모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틀렸다.”

청운은 고개를 들었다.

“쓸모없는 몸은 없다. 용도에 맞지 않는 방식이 있을 뿐이다. 너는 수선자의 몸이 아니다. 그러니 수선자의 방식으로만 배우면 먼저 부서진다.”

백야는 작은 죽간 하나를 내밀었다.

“기초납기결이다. 외문 제자들이 모두 배우는 호흡법이지. 너는 이것을 그대로 익히지 마라.”

“그럼 왜 주십니까?”

“틀리는 지점을 찾으라고 준다.”

청운은 죽간을 받아 들었다.

“수선법을 틀리게 배우라는 말씀입니까?”

“아니다. 네 몸이 어디서 거부하는지 적어라. 숨이 막히는 곳, 통증이 오는 곳,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곳. 전부.”

장부.

청운은 바로 이해했다.

“제 몸의 장부를 쓰라는 말씀이군요.”

“그래.”

백야의 눈빛이 조금 깊어졌다.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먼저 자기 몸의 거짓말을 잡아야 한다.”

청운은 죽간을 품에 넣었다.

그 말은 오늘 들은 어떤 말보다 오래 남았다.

범인인데 천명패가 나를 골랐다 1화 30쪽 삽화

밤, 청운은 외문 숙소의 작은 등불 아래 앉았다. 손바닥은 붕대로 감겨 있었고, 어깨는 욱신거렸다. 강림은 이미 잠든 척하고 있었고, 다른 후보들은 코를 골았다.

청운은 죽간을 펼쳤다.

첫 구절은 간단했다.

숨은 하늘에서 오지 않고 몸 안에서 열린다.

그는 한참 그 문장을 보았다. 예전의 운이라면 좋은 말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의 청운은 그 문장 옆에 작게 적었다.

`몸 안에서 열린다는 말은 아직 모른다. 다만 몸 안에서 막히는 곳은 많다.`

그는 숨을 들이쉬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적었다.

`첫 숨. 가슴 위쪽이 먼저 막힘.`

다시 들이쉬었다.

이번에는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둘째 숨. 어깨가 먼저 반응. 상처 때문인지 습관 때문인지 미정.`

세 번째 숨에서 허리춤의 천명패 잔편이 아주 작게 떨렸다.

청운은 붓을 멈췄다.

푸른빛은 없었다. 종소리도 없었다. 다만 나무패가, 마치 장부의 빈칸을 가리키듯, 손끝 아래에서 한 번 더 울렸다.

그는 새 줄을 열었다.

`셋째 숨. 내가 아닌 무언가가 먼저 대답함.`

창밖으로 천명선종의 밤구름이 흘렀다. 청계진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청운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아직 그곳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범인의 눈과 범인의 코와 범인의 장부가 그의 안에 남아 있었다.

그것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하늘에 맞설 때 쓸 수 있는 첫 번째 무기였으니까.

그리고 다음 새벽, 천명선종 외문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영근 없는 범인 하나가 들어왔다.

그런데 백야 장로가 그 범인에게 직접 숨 쉬는 법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