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월드

웹소설 · 새벽배송 기사가 신선의 주문을 받았다

3화. 주소가 팔린 밤

반품상회가 현실 주소를 조회하자 강도윤은 숨는 대신 어머니 가게로 달려가 첫 반품 거절권을 쓰고, 자기 이름을 판 현실 채권자의 장부를 직접 회수하기로 한다.

당분간 전편 무료 공개 · 로그인 없이 바로 읽기

작가 마루룽

조회수 0회

새벽배송 기사가 신선의 주문을 받았다 3화 대표 삽화
새벽배송 기사가 신선의 주문을 받았다 3화 1쪽 삽화

도윤은 전화를 끊자마자 탑차 시동을 걸었다.

어머니 목소리는 살아 있었다. 그걸 확인했으니 안심해야 했다. 그런데 천로배송 앱은 안심을 허락하지 않았다.

`주의: 반품상회가 기사님의 현실 주소를 조회했습니다.`

조회했다는 말은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다. 도윤은 물류센터에서 배운 식으로 생각했다. 주소가 뜨면 다음은 출력이다. 출력되면 라벨이 붙는다. 라벨이 붙으면 물건은 움직인다.

사람도 물건처럼.

그는 액셀을 밟았다. 새벽의 강변북로는 비어 있었고, 비어 있어서 더 무서웠다. 차선이 너무 잘 보이면 도망갈 핑계가 줄어든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신규 기능: 반품 거절권 1회`

`사용 가능 조건: 현실 주소 훼손 직전`

도윤은 욕을 삼켰다.

"훼손 직전까지 기다리라는 거냐."

앱은 당연히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 가게는 상가 뒤 골목 끝에 있었다.

낮에는 분식 냄새와 세탁소 스팀 냄새가 섞이는 곳인데, 새벽에는 간판 불도 거의 꺼져 있었다. 도윤은 탑차를 가게 앞에 세웠다. 엔진을 끄기도 전에 셔터 쪽으로 뛰었다.

셔터는 닫혀 있었다.

잠금장치도 멀쩡했다.

하지만 가운데에 라벨이 붙어 있었다.

검은색 배송 라벨. 일반 택배 라벨 크기였지만, 적힌 글자는 종이가 아니라 물 위에 뜬 잉크처럼 흔들렸다.

`반품 예정`

`대상: 강도윤의 현실 주소`

`회수 사유: 채무 담보 가치 하락`

도윤은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라벨 모서리에 작은 눈이 있었다. 검은 상자에서 봤던 눈과 닮았지만 더 얇고, 더 배고픈 눈이었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조건 충족 전`

`무단 제거 시 주소 손상`

도윤은 라벨을 떼지 않았다.

대신 가게 문 옆의 작은 유리창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한참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가 불을 켜는 순간, 라벨의 눈이 가늘게 웃었다.

"도윤아?"

어머니가 문 너머에서 놀란 목소리를 냈다.

"문 열지 마."

"왜? 너 얼굴이라도 보게."

"그냥 잠깐만. 안에서 아무것도 만지지 마."

그 말이 끝나기 전에 라벨에서 검은 줄이 내려왔다. 줄은 셔터 틈으로 스며들어 가게 안쪽을 더듬었다. 도윤은 반사적으로 줄을 잡았다. 손바닥이 찢기는 감각이 왔다.

앱이 차갑게 떴다.

`현실 주소 훼손 진행률 12%`

조건이 시작됐다.

도윤은 웃음이 나올 뻔했다. 기다리라더니,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 가게를 뜯어 가는 방식이었다.

셔터 안쪽에서 어머니가 놀라 숨을 들이켰다.

"이게 뭐야? 문 밑에 뭐가 들어와."

도윤은 줄을 잡아당겼다. 힘으로는 끊어지지 않았다. 물속에서 만난 계약서 얼굴의 남자와 같은 냄새가 났다. 종이, 습기, 오래된 이자.

그는 휴대폰을 셔터에 대고 물었다.

"거절권 쓰면 어떻게 돼."

화면은 바로 답을 띄웠다.

`반품 거절권: 1회`

`효과: 현실 주소에 붙은 회수 라벨 무효화`

`대가: 다음 주문 자동 수락`

도윤의 목이 굳었다.

자동 수락.

그러니까 지금 어머니 가게를 지키면, 다음엔 선택권 없이 더 깊은 곳으로 끌려간다. 앱은 늘 돈을 주고, 그 돈보다 조금 큰 문을 연다.

셔터 안쪽에서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났다.

도윤은 고민을 끝냈다.

"사용."

거절권은 버튼처럼 눌리지 않았다.

도윤의 팔에 남아 있던 검은 줄 자국이 먼저 빛났다. 피부 밑에서 금색 문자가 떠올랐고, 손목을 따라 손바닥으로 모였다. 그는 라벨 위에 손바닥을 눌렀다.

차가웠다.

라벨의 눈이 도윤을 보았다.

`반품은 구매자의 권리입니다.`

도윤은 이를 악물었다.

"사람을 물건으로 샀으면 계약부터 틀렸어."

금빛 문자가 라벨을 가로질렀다.

`거절`

한 글자였다.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강했다. 라벨의 눈이 찢어지고, 검은 줄이 셔터 틈에서 튕겨 나왔다. 안쪽에서 어머니가 비명을 삼켰다.

도윤은 라벨을 붙잡아 완전히 떼어 냈다.

종이는 손 안에서 젖은 재처럼 부서졌다.

`현실 주소 훼손 중단`

`반품 거절권 소모`

가게 문이 벌컥 열렸다.

어머니는 잠옷 위에 카디건만 걸친 채 서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은 분명히 뭔가를 보았다. 바닥에 남은 금빛 글자, 셔터 틈에서 사라지는 검은 줄, 도윤 손바닥의 화상 자국.

"너 또 무슨 일에 휘말린 거야."

도윤은 평소처럼 둘러대려 했다. 배송 중에 이상한 놈을 만났다, 사기 문자 같다, 잠을 못 자서 그렇다. 입까지 올라온 말들이 전부 너무 가벼웠다.

"엄마 주소가 팔렸어."

그는 결국 제일 짧은 말을 골랐다.

어머니의 얼굴에서 핏기가 더 빠졌다.

"누가."

도윤은 대답 대신 라벨 조각을 휴대폰 카메라에 비췄다. 앱이 남은 재를 스캔했다.

`출력 경로 확인 중`

`현실 발주자 존재`

도윤의 눈이 차가워졌다.

현실 발주자.

물밑 귀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가게 안으로 도윤을 끌어들였다.

안쪽은 멀쩡해 보였다. 냄비, 테이블, 냉장고, 벽에 붙은 메뉴판. 그런데 계산대 아래 장부 서랍이 열려 있었다. 잠금쇠는 부서지지 않았다. 열쇠로 연 것처럼 매끈하게 열려 있었다.

어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서랍을 닫으려 했다.

도윤은 먼저 서랍 안을 보았다.

대출 서류 사본이 하나 사라져 있었다. 어머니가 숨기듯 보관하던 종이. 도윤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하던 빚의 얼굴.

"사채 쪽?"

어머니는 바로 부정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도윤은 숨을 길게 뱉었다. 화를 내고 싶었지만, 지금 화를 어머니에게 쏟으면 가장 쉬운 상대에게만 칼을 휘두르는 꼴이었다.

"이름."

"도윤아."

"그 사람 이름."

어머니는 결국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름을 내놓았다. 한 번 입 밖으로 꺼내자, 그 이름은 가게 바닥에 떨어진 동전처럼 오래 굴렀다.

"명진캐피탈. 박기문."

휴대폰이 바로 반응했다.

`현실 발주자 후보 확인`

`박기문`

`명진캐피탈 비공식 채권 관리인`

도윤은 어머니가 보지 못하게 화면을 살짝 돌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금빛 글자를 희미하게 보고 있었다.

"그 화면, 나도 조금 보여."

도윤은 멈칫했다.

"보여?"

"글자는 흐린데, 네가 위험하다는 건 보여."

어머니는 계산대 모서리를 붙잡았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쓰러지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너 돈 들어온 거, 그거 평범한 돈 아니지."

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거짓말할 시간은 지나갔다. 사실을 전부 말할 시간도 없었다. 골목 밖에서 차 한 대가 천천히 멈췄다. 헤드라이트가 가게 유리문을 하얗게 찔렀다.

앱이 울렸다.

`채권 회수원 접근`

`현실 위험도: 높음`

차에서 내린 남자는 둘이었다.

한 명은 두꺼운 점퍼를 입었고, 다른 한 명은 서류 가방을 들었다. 평범한 용역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 기분 나빴다. 귀신이나 신선이면 이상하다고라도 할 수 있는데, 이쪽은 너무 현실적이었다.

점퍼 남자가 가게 문을 두드렸다.

"사장님. 새벽에 죄송합니다. 서류 확인만 하고 가겠습니다."

어머니가 움찔했다.

도윤은 문 앞으로 섰다.

"무슨 서류."

서류 가방 남자가 웃었다.

"아드님 계셨네. 잘됐습니다. 연대 확인이 필요해서요."

"난 서명한 적 없는데."

"세상에 서명한 적 없는 빚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 말이 끝나자 그의 가방 틈에서 검은 라벨 냄새가 났다. 도윤은 알았다. 이 사람들은 반품상회의 주문을 모르는 채로 쓴 게 아니다. 적어도 냄새는 알고 있다.

도윤은 가게 문을 잠갔다.

점퍼 남자의 손이 유리문에 닿았다.

손가락 끝에서 검은 줄이 나왔다. 일반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윤에게는 너무 선명했다. 줄은 방금 찢은 라벨의 남은 끄트머리와 같았다.

어머니가 도윤의 팔을 붙잡았다.

"경찰 부를게."

"불러. 그런데 문은 열지 마."

도윤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거절권은 사라졌다. 남은 건 배송기사 등급 2단계와 반품상회가 물고 간 주소 흔적뿐. 그는 탑차 적재함에 있는 빈 검은 상자를 떠올렸다. 두 번째 배송 뒤 그냥 평범한 상자가 됐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평범한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밖의 남자가 웃었다.

"문 열고 얘기하시죠. 어머님 가게에도 좋고, 기사님 팔에도 좋습니다."

도윤은 팔의 검은 자국을 봤다.

저들이 알고 있다.

그럼 더 빨리 움직여야 했다.

도윤은 뒷문으로 뛰었다.

어머니가 놀라 따라오려 했지만, 그는 손을 들어 막았다.

"앞문만 보고 있어. 열면 안 돼."

"너는?"

"배송기사잖아."

이 말이 위로가 되는지 협박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도윤은 뒷문을 열고 골목으로 나갔다. 탑차까지는 열 걸음. 짧은 거리였지만, 서류 가방 남자가 이미 골목 모퉁이에 서 있었다.

"빠르시네."

"배송이라."

도윤은 뛰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남자가 가방을 열자 검은 서류들이 새처럼 날아올랐다. 종이는 칼처럼 얇았고, 끝에 작은 글자가 달려 있었다.

`연대`

`담보`

`상환`

`포기`

도윤은 몸을 낮춰 첫 종이를 피했다. 두 번째 종이는 팔을 긁었다. 피가 났고, 피 위로 글자가 달라붙으려 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탑차 문을 열었다.

적재함 안의 검은 상자는 그대로 있었다.

빈 상자인 줄 알았던 옆면에 금빛 눈이 희미하게 떠 있었다. 완전히 잠든 게 아니었다. 도윤이 손을 대자 눈이 열렸다.

`기사 보조함`

`현재 기능: 임시 보관`

도윤은 웃을 틈도 없이 상자를 들었다.

서류 가방 남자가 뒤따라오며 손을 뻗었다.

"그건 저희 회수품입니다."

"배송 완료된 빈 상자야."

"빈 상자도 담보가 될 수 있죠."

도윤은 상자 뚜껑을 열었다. 안쪽은 비어 있지 않았다. 어둠이 들어 있었다. 그냥 어두운 게 아니라, 물밑 플랫폼으로 이어지는 깊은 어둠.

날아오던 계약서들이 상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남자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임시 보관 성공`

`현실 채권 문서 6장 확보`

점퍼 남자는 앞문을 두드리다 말고 골목으로 뛰어왔다.

그 손에는 쇠파이프가 있었다. 도윤은 상자를 안은 채 뒤로 물러났다. 싸움은 자신 없었다. 물속 신선도, 계약서 얼굴도, 현실 용역도 결국 때리는 순간은 똑같이 아프다.

그는 상자를 방패처럼 들었다.

쇠파이프가 상자 모서리에 부딪혔다.

둔탁한 소리 대신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점퍼 남자의 팔이 잠깐 굳었다. 상자 눈이 그를 봤다.

`보관 불가 품목`

`폭력`

상자가 쇠파이프의 그림자를 삼켰다. 실제 쇠파이프는 그대로였지만, 휘두르려는 힘이 빠져나간 듯 남자의 팔이 축 늘어졌다.

도윤은 그 틈에 몸을 밀었다.

도망이 아니라 가게 앞쪽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머니가 혼자 남아 있었다.

가게 앞에서는 어머니가 경찰과 통화 중이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도윤은 숨을 크게 쉬었다. 그러나 안도할 시간은 없었다. 유리문 위쪽에 또 다른 라벨이 생기고 있었다.

이번 라벨은 흰색이었다.

`합의 방문`

`서명 시 즉시 종료`

어머니의 눈이 그 라벨을 보았다. 흐릿하게라도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뒤로 물러났다.

도윤은 문 앞에 섰다.

서류 가방 남자가 다가왔다. 방금 문서를 빼앗기고도 그는 웃음을 되찾았다.

"어머님은 끝내고 싶으실 겁니다. 사람은 오래 무서워하는 것보다 빨리 사인하는 쪽을 고르거든요."

도윤은 그 말이 맞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오늘 사인 안 해."

"아드님이 결정할 일이 아니죠."

"맞아."

도윤은 문 안쪽의 어머니를 보았다.

"엄마, 결정해. 내가 막을게."

새벽배송 기사가 신선의 주문을 받았다 3화 15쪽 삽화

어머니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경찰은 오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골목에 도착할 경찰이 라벨을 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조금 전보다 똑바로 섰다.

"서명 안 합니다."

짧은 말이었다.

흰 라벨이 흔들렸다. 남자의 웃음도 같이 흔들렸다.

도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상자를 열어 라벨을 비췄다. 흰 라벨에서 검은 실이 빠져나와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합의 강요 흔적 확보`

`현실 발주자 연결률 43%`

43%.

아직 부족했다. 박기문까지 가려면 더 직접적인 증거가 필요했다.

서류 가방 남자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눈빛이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는 돈 받으러 온 사람이었고, 이제는 주문을 망칠까 봐 겁먹은 사람이었다.

도윤은 상자를 닫았다.

"가방 열어."

남자는 웃지 않았다.

"기사님이 착각하시네요. 배송기사는 문 앞에 두고 가는 사람이지, 안쪽을 뒤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부터 반품도 해."

도윤은 앞으로 걸었다.

점퍼 남자가 다시 막으려 했지만, 팔은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상자가 삼킨 것은 쇠파이프의 그림자였지만, 그에게는 공포가 더 크게 남은 듯했다.

서류 가방 남자는 가방을 뒤로 숨겼다.

도윤은 힘으로 빼앗지 않았다. 대신 앱을 켰다.

`임시 보관함`

`확보 문서 6장`

`연결 추적 가능`

그는 문서 하나를 눌렀다. 종이 위에 박힌 작은 도장이 확대됐다.

`명진캐피탈 외근관리`

도장 아래에 더 작은 글자가 있었다.

`P.K.M`

박기문.

앱이 바로 다음 문구를 띄웠다.

`현실 발주자 연결률 71%`

71%는 충분하지 않았다.

앱은 냉정했다. 발주자와 연결하려면 원본 장부가 필요했다. 사본, 도장, 라벨 조각만으로는 반품상회와 현실 사이의 계약을 끊을 수 없었다.

서류 가방 남자는 그 사실을 아는 얼굴이었다.

"원본은 안전한 곳에 있습니다."

"어디."

"기사님 같은 분이 못 가는 곳."

그 말에 휴대폰 내비게이션이 저절로 열렸다.

지도는 명진캐피탈 사무실을 가리키지 않았다. 상가 건물 옥상, 정확히는 옥상 위에 표시된 붉은 문. 도로도, 계단도 아닌 위치였다.

`다음 주문 자동 수락 대기`

도윤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거절권의 대가가 오고 있었다.

어머니가 문 안쪽에서 물었다.

"너 어디 가야 하는 거니."

도윤은 화면을 보다가, 서류 가방 남자를 보았다.

"장부 가지러."

남자의 얼굴이 처음으로 하얗게 질렸다.

경찰차 사이렌이 멀리서 들렸다.

현실의 소리였다. 그래서 도윤은 그 소리를 붙잡고 싶었다. 경찰이 오면 이 사람들은 물러날 것이다. 어머니도 당장은 안전해진다.

하지만 라벨은 경찰이 보고 난 뒤에도 다시 붙을 수 있다. 주소가 팔린 이상, 오늘 막은 건 배송 한 번일 뿐이다. 원본 장부를 끊어야 했다.

앱이 진동했다.

`자동 수락 발동`

`주문명: 채권자 장부 회수`

`픽업지: 명진캐피탈 옥상문`

`제한 시간: 42분`

`보상: 현실 주소 보호 7일`

7일.

평생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었다. 겨우 7일. 그런데 지금 도윤에게는 그 7일이 너무 컸다.

도윤은 어머니를 보았다.

"경찰 오면 다 말해. 내가 협박받았다고. 저 사람들 얼굴 봤다고."

"너는?"

"7일 벌어올게."

어머니는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유리문 안쪽에서 손바닥을 댔다. 도윤도 바깥쪽에서 손을 맞댔다. 유리 한 장 사이였지만, 그게 지금은 가장 안전한 거리였다.

"다치지 마."

"노력할게."

"노력 말고 약속."

도윤은 잠깐 웃었다.

"배송 완료하고 돌아올게."

그 말은 약속처럼 들렸고, 동시에 저주처럼 들렸다. 그래도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차가 골목 입구에 들어왔다. 서류 가방 남자는 뒤로 물러났다. 점퍼 남자는 평범한 사람처럼 얼굴을 바꿨다. 도윤은 그들이 경찰 앞에서 어떤 말을 할지 알았다. 돈 얘기, 서류 얘기, 민사 얘기.

그런 말들이 어머니를 다시 지치게 할 것이다.

그래서 더 빨리 끝내야 했다.

도윤은 탑차에 올랐다.

내비게이션은 이상한 길을 안내했다.

목적지는 상가 건물 옥상이지만, 차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앱은 골목, 지하 주차장, 폐쇄된 램프, 옥상 물탱크 뒤 계단을 순서대로 띄웠다. 현실 지도 위에 비경 지도가 얇게 겹쳐졌다.

도윤은 탑차를 몰며 상자를 조수석에 올려놓았다.

"이번에도 말 좀 해 주면 안 되냐."

상자의 눈은 잠시 떠올랐다.

`보조함은 배송 판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도움 안 되는 말만 배웠네."

상자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때 백리연의 잔영이 룸미러에 비쳤다. 이번에는 물속이 아니라 거울 안이었다. 얼굴은 전보다 옅었지만, 목소리는 선명했다.

"채권자의 장부는 숫자가 아니라 이름으로 묶인다."

도윤은 핸들을 움켜쥐었다.

"뜯어오면 풀립니까?"

"읽으면 묶인다."

도윤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요."

"읽지 말고 회수해. 배송기사가 내용물을 훔쳐보면 책임이 붙는다."

"이번엔 제 집 주소가 걸렸는데도?"

거울 속 백리연은 잠시 침묵했다.

"그래서 어렵다."

도윤은 더 묻지 않았다. 백리연의 답은 늘 친절하지 않았지만, 틀린 적도 없었다. 읽지 말고 회수. 말은 쉽다. 문제는 장부라는 게 보통 펼쳐져 있다는 점이었다.

명진캐피탈 건물이 보였다.

낮에는 유리문과 대출 광고판이 있는 평범한 사무실 건물이다. 새벽에는 간판 불이 꺼져 있었고, 옥상 위에만 붉은 빛이 깜박였다.

내비게이션은 주차장 입구가 아니라 건물 뒤편 쓰레기 적재장으로 도윤을 안내했다.

`차량 정차`

`도보 배송 전환`

도윤은 상자를 들고 내렸다.

쓰레기 적재장 뒤에는 원래 벽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앱 화면으로 보면 벽 한쪽에 좁은 문이 있었다. 현실 눈으로는 곰팡이 얼룩, 앱으로 보면 붉은 문양.

그는 손바닥을 댔다.

문이 열렸다.

안쪽은 건물 계단이 아니었다. 옥상으로 바로 이어지는 긴 철제 사다리였다. 사다리 사이로 밤하늘이 보였고, 그 밤하늘 사이에 물속 플랫폼에서 본 광고판 같은 것들이 떠 있었다.

`빠른 대출`

`당일 승인`

`인생 재고 정리`

도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장난처럼 보이게 만든 말들이 사람을 천천히 밀어 넣는다. 그 말들 뒤에 박기문이 있다면, 오늘은 꼭 얼굴을 봐야 했다.

사다리를 오르는 동안 팔의 라벨 상처가 뜨거워졌다.

`제한 시간: 31분`

옥상문 앞에는 신발이 많았다.

사람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낡은 구두, 운동화, 슬리퍼, 아이 운동화까지 종류가 달랐다. 신발마다 작은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도윤은 읽지 않으려 눈을 피했다.

읽으면 묶인다.

문 옆에는 초인종 대신 카드 단말기가 있었다. 화면에는 금액이 떠 있었다.

`입장료: 미납 이자 1건`

도윤은 상자를 단말기 위에 올렸다.

"배송기사입니다. 픽업 왔습니다."

단말기가 잠깐 멈췄다.

`픽업 권한 확인`

`반품상회 분쟁 중`

`임시 입장`

문이 열렸다.

안쪽에서 종이 냄새와 커피 냄새, 그리고 오래된 한숨 냄새가 섞여 나왔다.

도윤은 상자를 품에 안고 들어갔다.

옥상 안쪽은 사무실이었다.

정확히는 사무실처럼 꾸민 제단이었다. 책상은 제단처럼 높았고, 파일 박스는 촛대처럼 줄지어 서 있었다. 가운데 회전의자에 앉은 남자가 천천히 돌아섰다.

박기문은 사진보다 말랐다. 눈 밑은 검고, 손가락에는 금반지가 많았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목에 걸린 사원증이었다.

사원증에는 회사 이름 대신 다른 글자가 적혀 있었다.

`반품상회 외부 발주처`

박기문은 도윤을 보자 웃었다.

"강 기사님. 직접 오셨네요."

도윤은 대답하지 않고 상자를 내려놓았다.

"채권자 장부."

"급하시네. 보통은 왜 우리 엄마한테 그랬냐부터 묻던데."

"그건 장부 받고 물어볼게."

박기문의 웃음이 조금 넓어졌다.

"순서 아는 사람이 제일 귀찮죠."

책상 위에 장부가 있었다.

두꺼운 가죽 표지, 모서리에 금속 장식, 표지 중앙에 검은 눈. 열려 있지는 않았다. 도윤은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박기문은 장부 위에 손을 얹었다.

"이건 물건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가져가면 당신 어머님 빚이 없어질까요? 아니요. 이름이 빈칸으로 바뀔 뿐입니다. 빈칸은 더 비싸게 팔려요."

도윤은 상자를 열었다.

"그래서 회수하러 왔어."

"누구에게?"

그 질문에 앱이 먼저 답했다.

`수령지: 미정`

`회수 우선`

박기문이 웃음을 터뜨렸다.

"수령지도 모르는 배송을 한다고요?"

도윤은 장부를 보며 손가락을 천천히 폈다.

"문 앞에 놓기 전에, 물건이 뭔지는 확인하지."

"읽지 말라던데요."

도윤의 눈빛이 흔들렸다.

박기문은 그 틈을 정확히 찔렀다.

장부가 스스로 열리려 했다.

도윤은 눈을 감았다.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름들이 속삭였다. 어머니 이름, 도윤 이름, 골목 시장 사람들 이름. 읽지 않으려 할수록 더 선명하게 귀로 들어왔다.

그는 상자를 장부 위에 덮었다.

박기문의 손이 빨랐다. 금반지가 달린 손가락이 상자 뚜껑을 막았다. 손이 닿은 순간 상자 눈이 떠졌다.

`보관 대상 확인`

`채권자 장부`

박기문은 이를 드러냈다.

"보관하면 끝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안에 들어간 이름은 다 기사님 책임이 됩니다."

도윤은 눈을 감은 채 이를 악물었다.

"내가 읽은 건 네 목소리뿐이야."

그는 손바닥의 상처를 장부 표지에 눌렀다.

"그리고 네가 지금 책임을 떠넘기려 했다는 것."

앱이 울렸다.

`발주자 악의 확인`

장부가 상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박기문은 처음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책상 뒤쪽 벽이 열리며 수십 개의 라벨이 쏟아졌다. 라벨마다 주소가 적혀 있었다. 도윤은 읽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하나는 보였다.

어머니 가게 주소.

도윤은 그 라벨만 손으로 낚아챘다. 잡는 순간 손바닥이 타들어 갔지만 놓지 않았다. 상자 안쪽에서 물살 소리가 커졌다.

`현실 주소 보호 대상 확인`

`보호 기간 갱신 가능`

박기문이 달려들었다.

도윤은 택배 상자를 발로 밀었다. 별것 아닌 동작이었다. 그런데 옥상 사무실 바닥이 물처럼 흔들리며 박기문의 발목을 잡았다.

백리연의 잔영이 벽 유리에서 잠깐 비쳤다.

"지금."

도윤은 라벨을 상자 안으로 던졌다.

상자가 닫혔다.

옥상 사무실 전체가 흔들렸다. 파일 박스들이 쓰러지고, 카드 단말기들이 동시에 삐 소리를 냈다. 박기문은 바닥에 무릎을 짚은 채 도윤을 노려보았다.

"그 장부, 네가 감당 못 해."

"그래서 배송하려고."

"수령인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휴대폰이 켜졌다.

`수령지 생성 중`

`반품상회 분쟁 품목`

`임시 수령인: 천로배송 감사 창구`

도윤은 그 문구가 뭘 의미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박기문에게 두고 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제한 시간이 12분 남았다.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현실 경찰인지, 이쪽의 경보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도윤은 상자를 들고 문으로 뛰었다.

박기문의 목소리가 등 뒤를 따라왔다.

"네 주소만 팔린 줄 알아?"

도윤은 멈추지 않았다.

그 말은 미끼였다. 듣는 순간 돌아보게 만드는 말. 읽지 말라고 했던 장부와 같은 방식이었다. 그는 철제 사다리를 거의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손바닥이 아팠고, 팔의 검은 줄 자국이 다시 꿈틀거렸다.

탑차에 도착하자 내비게이션이 목적지를 바꿨다.

`배송지: 한강 잠수교 하부`

`예상 소요: 11분`

방금 나온 곳으로 다시 물밑을 향하라는 뜻이었다. 도윤은 운전석에 앉아 짧게 욕을 뱉었다.

그때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경찰 왔다. 그 사람들 갔어. 너는?"

도윤은 시동을 걸었다.

"장부 찾았어."

"도윤아."

"7일만 벌고 올게."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이번엔 밥 얘기 안 할게. 살아서 와."

새벽배송 기사가 신선의 주문을 받았다 3화 30쪽 삽화

탑차는 다시 한강 쪽으로 달렸다.

조수석의 상자는 무거웠다. 아까보다 훨씬 무거웠다. 안에 종이 한 권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읽지 않은 이름들이 전부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도윤은 라디오를 켜지 않았다. 광고도, 음악도, 사람 목소리도 지금은 위험했다. 대신 창문을 조금 열었다. 새벽 공기가 들어왔다. 매연과 강바람, 식은 도시 냄새.

휴대폰 화면에 새 알림이 떴다.

`채권자 장부 회수 1단계 완료`

`현실 주소 보호: 7일`

`추가 조건: 장부 수령인 확인 전까지 내용 열람 금지`

그 아래로 작은 문구가 한 줄 더 생겼다.

`박기문이 두 번째 주소를 출력했습니다.`

도윤은 핸들을 세게 쥐었다.

두 번째 주소.

어머니가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바라기만 하면 늦는다.

잠수교 아래 물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도윤이 먼저 차를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