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 오수완: 오늘도 수선 완료
3화. 악의 100개를 지나가기
백련서는 무해문의 첫 공개 검증을 회사 내부 익명 게시판과 선계 검증장으로 동시에 열어, 서율에게 악의 100개를 읽고도 한 사람도 미워하지 말라는 수행을 강요한다. 서율은 악의를 반격하거나 먹어 치우는 대신 출처 없는 말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며, 제자 재온의 기록을 지키고 무해문의 첫 공개 방어술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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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의 유리벽이 검게 물들었다.
처음에는 먼지인 줄 알았다. 아주 작은 점들이 유리 바깥에서 모여들었다. 점들은 빗방울처럼 늘어났고, 곧 말풍선의 모양을 흉내 냈다.
글자는 없었다.
하지만 의미는 있었다.
저 사람 때문에 일이 커졌다.
인턴 하나 살리겠다고 팀을 망쳤다.
무슨 문파 놀이냐.
한서율은 그것들이 자기 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공덕장이 손 안에서 차갑게 울렸다.
[첫 공개 검증 개시]
[수행명: 악의 100개를 읽고 한 사람도 미워하지 않기]
[실패 시: 제자 기록 오염]
민재온은 서율의 뒤에서 숨을 들이켰다.
"제자 기록이 뭐예요?"
"나도 몰라요."
서율은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근데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아요."
백련서는 유리 테이블 건너편에서 조용히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검증은 공정합니다."
서율은 그 말을 듣고 알았다.
공정이라는 단어는 때로 가장 불공정한 사람이 먼저 꺼낸다.
검은 말풍선 하나가 서율의 어깨에 닿았다.
차가웠다.
읽히지 않은 글자가 피부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눈으로 본 것도 아닌데, 머릿속에 문장이 생겼다.
도덕적인 척하는 사람이 제일 피곤하다.
서율의 목덜미가 굳었다.
그 말은 아팠다.
왜냐하면 조금은 맞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제까지 사람들의 사연을 콘텐츠로 만들던 사람이다. 오늘 갑자기 다른 척한다고 해서 과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백련서는 그 틈을 정확히 찔렀다.
공덕장이 숫자를 띄웠다.
[악의 1/100]
류하진이 문가에서 낮게 말했다.
"받아치지 마."
"그럼 맞고만 있으라고요?"
"미워하면 먹힌다."
"그럼 사랑하라고요?"
"그것도 먹힌다."
서율은 그를 노려봤다.
"도움 되는 말을 해요."
류하진은 아주 짧게 생각했다.
"말을 사람으로 착각하지 마."
그 말이 이상하게 남았다.
말을 사람으로 착각하지 말라.
검은 말풍선 두 개가 더 떨어졌다.
두 번째 말풍선은 민재온을 향했다.
괜히 신입 하나 때문에 분위기 이상해졌다.
재온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서율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말풍선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손이 닿기 전에 공덕장이 경고했다.
[주의]
[공격 대응 시 악의 귀속]
"귀속?"
백련서가 대답했다.
"악의는 주인이 필요하거든요. 누가 받아치면, 그 사람의 것이 됩니다."
서율은 이를 악물었다.
"참 편한 시스템이네요."
"인간 세상에도 많지 않나요? 화난 사람이 문제를 만든 사람처럼 보이는 구조."
그 말은 너무 정확해서 더 짜증났다.
재온은 겁먹은 숨을 들키지 않으려 입술을 눌렀다.
"제가 그냥 사과하면..."
"안 돼요."
서율은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이번엔 사과하면 재온 씨 기록에 붙을 거예요."
세 번째 말풍선이 내려왔다.
인턴이 벌써 정치질 배웠네.
재온의 손목에 금빛 실이 흔들렸다.
서율은 그 실을 보았다.
묶는 실이 아니라 길을 잃지 않게 하는 실.
그 실이 검게 물들기 전에, 어떻게든 해야 했다.
공덕장 화면 한가운데 작은 금빛 문이 열렸다.
문은 2화에서 재온의 사연을 지킬 때 생겼던 것과 비슷했다. 다만 이번에는 더 작고, 더 불안했다. 손가락 하나로 밀면 닫힐 것 같은 문이었다.
[무해문 임시 방어식]
[이름 미정]
[조건: 악의를 보관하지 않고 통과시킬 것]
서율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름부터 정해 주는 거 아니었어?"
공덕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네 번째 말풍선이 내려왔다.
쟤는 결국 관심받고 싶은 거다.
서율은 문장을 읽었다.
그리고 그 문장이 자기 안에 자리를 잡으려는 것을 느꼈다. 억울함이 올라왔다. 해명하고 싶었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때 류하진의 말이 떠올랐다.
말을 사람으로 착각하지 마.
서율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 말은 누구의 얼굴도 아니다.
누구의 전체도 아니다.
그 순간 금빛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말풍선은 서율의 가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문을 지나 회의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말풍선은 검은 물이 되었다가 증발했다.
공덕장이 반응했다.
[악의 4/100]
[미귀속]
백련서의 눈이 가늘어졌다.
"흥미롭네요."
"그 말 되게 싫어요."
"진심인데요."
"그래서 싫어요."
서율은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말풍선을 지나보냈다.
느린 일이었다.
악의는 빠르게 꽂히는데, 지나보내는 일은 느렸다. 읽히는 순간 반응하고 싶은 몸을 붙잡아야 했다. 말이 아니다. 얼굴이 아니다.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 그렇게 세 번을 속으로 말해야 겨우 문이 열렸다.
열 번째를 넘겼을 때, 서율의 손끝이 떨렸다.
공덕장이 알렸다.
[악의 10/100]
[방어식 안정도 12%]
류하진은 문가에서 은빛 선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개입하지 않았다. 아니, 못 하는 것 같았다. 은빛 선은 검은 말풍선에 닿을 때마다 미끄러졌다.
"하진 씨는 못 잘라요?"
"저건 말이다. 말은 자르면 더 퍼진다."
"오늘 도움 되는 말 자주 하네요."
"오늘 네가 자주 위험하니까."
서율은 대답할 힘이 없어서 그냥 한쪽 입꼬리만 올렸다.
열한 번째 말풍선이 내려왔다.
이번에는 팀장을 향한 말이었다.
팀장은 멍한 얼굴로 유리벽을 보고 있었다.
그도 이제 일부가 보이는 듯했다. 목 뒤에 연결된 붉은 실이 떨렸다. 실은 천장 안쪽으로 이어져 있었고, 백련서의 그림자와 맞물려 있었다.
검은 말풍선은 팀장에게 말했다.
저 사람도 어쩔 수 없었겠지.
서율은 순간 멈칫했다.
이상했다.
그건 악의가 아니라 변명처럼 보였다.
류하진은 검은 코트 자락을 한 번 정리했다.
"조심해. 미움만 악의가 아니다."
백련서가 웃었다.
"맞아요. 검증은 다양한 감정을 다룹니다. 분노, 조롱, 동정, 합리화. 다 반응을 만들죠."
서율은 팀장을 보았다.
그가 한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재온의 점심을 끊으려 했고, 책임이라는 말로 서율을 누르려 했다.
그러나 그가 완전히 악마인 것도 아니었다.
그 사실이 오히려 어려웠다.
서율은 금빛 문을 향해 말했다.
"이건 그 사람 사정일 수는 있는데, 면죄부는 아니야."
말풍선이 문 앞에서 흔들렸다.
그리고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악의 11/100]
팀장의 목 뒤 붉은 실이 아주 조금 얇아졌다.
민재온이 그것을 보았다.
"팀장님 실이..."
"네."
서율은 짧게 답했다.
"저 사람도 묶여 있나 봐요."
재온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제가 미워하면 안 되는 건가요?"
서율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미워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 말이 피해자에게 더 큰 짐이 될 때가 있다. 미워하지 않는 착한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는 것도 또 다른 폭력이었다.
서율은 검은 말풍선을 하나 더 지나보낸 뒤 말했다.
"미워할 수는 있어요."
재온이 놀라 보았다.
"근데 그 미움이 재온 씨 밥을 다시 빼앗아 가면, 그때는 잠깐 내려놓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재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게 가능해요?"
"몰라요."
서율은 솔직했다.
"나도 지금 배우는 중이라."
공덕장이 조용히 반짝였다.
[제자 문답 발생]
[무해문 규율 후보: 미움은 소유물이 아니다]
서율은 화면을 보고 작게 말했다.
"이건 좀 괜찮네."
검은 말풍선이 점점 늘었다.
스무 개를 넘기자 회의실 안은 먹물 속처럼 어두워졌다. 유리벽 밖의 회사 풍경은 사라지고, 검은 점과 붉은 실과 금빛 문만 남았다.
백련서는 여전히 침착했다.
그녀는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두드릴 때마다 붉은 연꽃 문양이 커졌다. 말풍선들은 더 정교해졌다.
괜히 착한 척해서 일 키우는 사람.
회사 돈으로 자기 서사 만드는 사람.
인턴 데리고 무슨 구원자 놀이.
서율의 관자놀이가 아팠다.
모든 말이 조금씩 맞는 척했다.
그게 악의의 가장 성가신 점이었다. 완전히 틀린 말이면 웃고 넘기면 된다. 하지만 악의는 진실의 조각을 붙잡고 사람을 찢었다.
공덕장이 숫자를 띄웠다.
[악의 27/100]
서율의 금빛 문이 흔들렸다.
문 가장자리가 검게 물들었다.
류하진이 움직이려 했다.
백련서는 흰 소매 끝을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외부 개입은 검증 무효입니다."
류하진의 은빛 선이 멈췄다.
서율은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요."
그 말이 입에서 나온 순간, 재온이 뒤에서 조용히 말했다.
"금지어."
서율은 잠깐 멍해졌다.
재온이 금지어를 지적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한 얼굴로.
이 와중에.
서율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맞네요."
그 작은 웃음이 금빛 문을 다시 밝게 했다.
공덕장이 반응했다.
[제자 보조 발화]
[방어식 안정도 24%]
백련서의 미소가 처음으로 아주 조금 흐려졌다.
"좋은 호흡이네요."
"그 말도 싫어요."
"정확히 봐 드리는 건데."
"그래서요."
서율은 다시 말풍선을 지나보냈다.
서른.
서른하나.
서른둘.
검은 말들은 여전히 아팠지만, 조금씩 결이 보였다. 어떤 말은 질투였고, 어떤 말은 피로였고, 어떤 말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던진 것이었다.
그렇다고 착한 말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서율은 하나씩 금빛 문으로 보냈다.
미움이 아니라 분류였다.
반격이 아니라 반납이었다.
서른아홉 번째 말풍선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회의실 바닥에 작은 금빛 물길이 생겼다.
금빛 물길은 서율의 발끝에서 시작해 민재온의 발밑으로 흘렀다.
재온의 제자 기록을 감싼 검은 얼룩이 조금씩 씻겨 나갔다. 아직 완전히 깨끗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더럽혀지는 속도보다 씻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공덕장이 새 이름을 띄웠다.
[방어식 명명 가능]
"또 나보고 정하라고?"
서율이 중얼거리자 재온이 작게 말했다.
"반납문?"
"택배 같아요."
"그러면... 흘려보내기?"
류하진이 끼어들었다.
"선계식으론 유악귀원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절대 안 돼요."
서율과 재온이 동시에 말했다.
류하진은 조금 상처받은 얼굴이었다.
서율은 금빛 물길을 보았다.
악의를 없애는 것도 아니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자기 안에 보관하지 않고 지나가게 하는 것.
"흘려보내기."
그녀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공덕장이 금빛으로 밝아졌다.
[무해문 방어식]
[흘려보내기 1식 등록]
백련서가 손끝을 멈췄다.
그 순간, 검증장의 압력이 바뀌었다.
백련서는 더 이상 장난처럼 웃지 않았다.
"이름이 너무 순하네요."
"우리 문파 취향이에요."
"순한 이름은 사람을 방심하게 만들죠."
"무서운 이름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요."
백련서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검은 말풍선들이 형태를 바꿨다. 이제는 익명 게시판이 아니라, 실제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팀장의 목소리.
동료의 목소리.
예전 클라이언트의 목소리.
그리고 서율 자신의 목소리.
너도 했잖아.
그 말이 내려온 순간, 금빛 문이 크게 흔들렸다.
서율은 숨을 멈췄다.
너도 했잖아.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서율은 과거에 다른 사람의 피로를 포장했다. 사연을 카드뉴스로 만들었다. 누군가의 울음을 제목으로 바꿨다. 마감이 급하다는 이유로, 성과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공덕장이 경고했다.
[악의 42/100]
[자가 귀속 위험]
재온은 파일을 가슴 쪽으로 더 끌어안았다.
"문이 검게..."
서율은 대답하지 못했다.
백련서는 웃음의 온도를 한 치도 바꾸지 않았다.
"무해문이라고 했나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한서율 씨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문파를 만들 자격이 있나요?"
그 질문은 칼보다 깊게 들어왔다.
서율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자격.
그 단어는 늘 사람을 멈추게 했다. 자격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할까. 잘못한 적 있는 사람은 다른 잘못을 막을 수 없을까. 어제까지 몰랐던 사람은 오늘 알게 된 것을 지켜도 될까.
검은 말풍선이 서율의 가슴에 닿았다.
이번에는 금빛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 문장은 너무 무거웠다.
재온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려 했다.
서율은 손을 들어 막았다.
"괜찮..."
말하다가 멈췄다.
금지어.
그녀는 숨을 고쳤다.
"아프긴 한데, 내가 받을게요."
류하진의 눈이 흔들렸다.
"그건 받으면 안 된다."
"아니요."
서율은 검은 문장을 바라보았다.
"이건 악의만은 아니에요."
잘못의 기억이었다.
지나보낼 수 없는 것.
서율은 처음으로 금빛 문을 닫았다.
검증장 전체가 흔들렸다.
백련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포기인가요?"
"아니요."
서율은 가슴에 박힌 검은 문장을 손으로 눌렀다.
"분리요."
공덕장이 반응하지 않았다.
아직 시스템이 이해하지 못하는 선택지였다.
서율은 피곤한 눈으로 화면이 아닌 사람을 먼저 보았다.
"내가 한 일은 내가 가져갈게요. 근데 그걸 핑계로 재온 씨 기록을 더럽히는 건 안 됩니다."
검은 문장이 둘로 갈라졌다.
하나는 서율의 손 안에 남았다.
다른 하나는 썩은 물처럼 흘러내렸다.
류하진이 아주 작게 숨을 들이켰다.
"책임과 악의를 나눴어."
"그게 돼요?"
재온이 물었다.
류하진은 서율을 보았다.
"방금은 됐다."
공덕장이 뒤늦게 빛났다.
[예외 처리]
[자가 책임 보관]
[악의 미귀속]
백련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서율은 손 안의 검은 조각을 보았다.
무겁지만, 썩지는 않았다.
검증장은 잠깐 조용해졌다.
그 틈에 팀장이 입을 열었다.
"이게... 다 뭐죠?"
그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작았다.
서율은 팀장을 보았다. 목 뒤의 붉은 실은 아직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아까보다 훨씬 얇아졌다. 그는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고, 완전히 무고하지도 않았다.
서율은 흩어진 숨을 짧게 묶었다.
"팀장님이 저랑 재온 씨에게 한 건 없어지는 거 아닙니다."
팀장이 굳었다.
"하지만 지금 팀장님 목에도 뭔가 묶여 있어요."
그는 무의식적으로 목 뒤를 만졌다.
백련서가 부드럽게 끼어들었다.
"검증 중 외부 대상 설득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권장 안 하면 뭐요."
서율은 이제 조금 지쳐서 예의가 줄었다.
"감점?"
공덕장이 작게 울렸다.
[태도 점수 없음]
"좋네."
재온이 아주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이 회의실의 공기를 조금 바꿨다.
팀장은 자신의 목 뒤를 계속 만지고 있었다.
검은 말풍선 몇 개가 그에게 달려들었지만, 금빛 물길에 휩쓸려 바닥으로 흘러갔다.
공덕장 숫자는 60을 넘겼다.
[악의 63/100]
[흘려보내기 1식 안정도 49%]
서율의 호흡은 거칠어졌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회사 회의실에서 땀을 흘리는 일은 이상했지만, 지금 회의실은 더 이상 회의실만은 아니었다.
바닥은 검은 물과 금빛 물길이 엉킨 검증장이었다.
유리벽 바깥에는 회사 동료들의 흐릿한 그림자가 보였다. 그들은 실제로는 각자의 책상에 앉아 있을 것이다. 익명 게시판을 보고 있거나, 점심 후 졸음을 참고 있거나, 아무것도 모르고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그림자들이 모두 악의의 주인처럼 보였다.
서율은 그 생각을 멈췄다.
말을 사람으로 착각하지 마.
그녀는 다시 문을 열었다.
예순넷.
예순다섯.
예순여섯.
검은 말들이 금빛 문을 지나갔다.
그때 백련서가 손가락을 세웠다.
"검증 난이도를 조정하겠습니다."
류하진은 문가의 그림자 속에서 시선을 들었다.
"역시 공정하군."
"검증 대상이 성장했으니까요."
백련서가 웃었다.
"성장에는 더 큰 검증이 필요하죠."
검은 말풍선들이 하나로 뭉쳤다.
이번에는 서율도, 재온도, 팀장도 향하지 않았다. 그것은 회의실 천장으로 올라갔다가, 비처럼 쏟아졌다.
모두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비였다.
재온은 팀장을 보았다.
팀장은 재온을 피했다.
서율은 백련서를 보았다.
류하진은 그림자를 넓혔다.
검은 비는 피부에 닿자 작은 질문으로 변했다.
저 사람이 정말 내 편일까?
저 사람도 나중에 나를 팔지 않을까?
저 사람은 나를 도와주며 자기 서사를 만들고 있는 것 아닐까?
서율의 금빛 문이 흔들렸다.
이번 말들은 악의라기보다 의심이었다.
그리고 의심은 때때로 생존에 필요했다.
서율은 무조건 흘려보내면 안 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진 씨."
"말해."
"의심은 어떻게 처리해요?"
류하진은 잠깐 침묵했다.
"버리면 당하고, 품으면 썩는다."
"그럼요?"
"확인해."
서율은 재온을 돌아보았다.
"재온 씨. 지금 나 의심돼요?"
재온의 눈이 커졌다.
그 질문은 회의실 안을 더 조용하게 만들었다.
재온은 당황했다.
"그걸... 지금 말해도 돼요?"
"해야 할 것 같아요."
서율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무해문 규율 후보. 의심은 몰래 키우지 말고 확인하기."
공덕장이 희미하게 반응했다.
재온은 한참 망설였다.
검은 비는 계속 내렸다.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조금은요."
서율의 가슴이 따끔했다.
"왜요?"
"저를 도와주신 건 고마운데... 제가 또 누군가의 의미가 되는 건 무서워요. 선배가 저를 첫 제자라고 부를 때, 저는 그게 좋으면서도 무서웠어요."
서율은 그 말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맞아요."
그녀는 인정했다.
"나도 방금 뿌듯했어요. 재온 씨가 내 문파 첫 제자라는 게."
재온의 눈이 흔들렸다.
"그래서 조심해야겠네요."
서율은 금빛 문을 다시 열었다.
"재온 씨가 내 서사가 아니라, 재온 씨 삶이어야 하니까."
검은 비 한 줄기가 금빛 물길로 바뀌었다.
[의심 확인]
[제자 기록 보호]
백련서는 처음으로 손을 멈췄다.
"그걸 공개적으로 말하게 하다니."
"시킨 게 아니라 물어봤어요."
"그 차이를 믿나요?"
"믿지는 않아요."
서율은 숨을 몰아쉬었다.
"계속 확인할 거예요."
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끄덕임이 금빛 실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단단하지만 조이지 않는 실. 이상한 균형이었다.
류하진은 그 실을 바라보다가 눈을 내렸다.
아주 오래전의 표정이었다.
서율은 물어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공덕장 숫자는 80을 넘겼다.
[악의 81/100]
[흘려보내기 1식 안정도 71%]
검증장이 흔들렸다.
검은 말풍선들은 이제 급해졌다. 형태가 무너지고, 문장 대신 감정 덩어리로 떨어졌다. 조롱, 지루함, 피로, 억울함, 냉소.
서율은 하나씩 문을 통과시켰다.
완벽하게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전부 용서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 안에 집을 짓지 못하게 했다.
구십.
구십하나.
구십둘.
백련서의 붉은 연꽃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아흔셋 번째 악의가 내려왔다.
이번에는 말풍선이 아니었다.
거울이었다.
검은 거울 속에는 한서율이 보였다. 그러나 지금의 서율이 아니라, 회의실에서 남의 사연을 잘라 제목으로 만들던 서율이었다. 피곤한 얼굴로 웃으며, 더 세게, 더 공감되게, 더 울리게라고 말하던 사람.
서율은 거울을 피하지 않았다.
재온은 옆에서 조용히 섰다.
류하진도 움직이지 않았다.
백련서는 흰 소매 끝을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마지막 구간입니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 제일 어렵죠."
서율은 검은 거울을 보았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기.
그 말은 너무 쉽게 면죄부처럼 들렸다. 그래서 서율은 다른 말을 골랐다.
"미워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녀는 거울 속 자신에게 말했다.
"도망가지 않는 거야."
거울 속 서율이 고개를 들었다.
"네가 한 일은 내가 기억할게. 대신 그걸로 오늘 해야 할 일을 멈추진 않을게."
검은 거울에 금이 갔다.
공덕장이 울렸다.
[악의 93/100]
[자가 책임 보관 안정]
아흔넷.
아흔다섯.
아흔여섯.
말들은 이제 힘을 잃었다.
서율도 힘을 잃었다.
그녀는 테이블을 짚고 버텼다. 손목의 금빛 문은 아직 열려 있었지만, 문 가장자리는 깨져 있었다. 금빛 물길도 가늘어졌다.
재온이 손을 내밀었다.
"잡아도 돼요?"
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온의 손이 서율의 손등 위에 닿았다.
금빛 실이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갔다.
공덕장 검은 바탕 위로 작은 금문자를 떠올렸다.
[제자 보조 허용]
서율은 작게 웃었다.
"허락해 주셔서 고맙다."
공덕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흔일곱.
검은 말풍선이 내려왔다.
너는 결국 실패할 거다.
서율은 숨을 들이마셨다.
"가능성 있지."
그 말풍선은 당황한 듯 흔들렸다.
"그래도 지금은 아니야."
금빛 문이 열렸다.
말풍선이 지나갔다.
아흔여덟.
재온도 곧 도망갈 거다.
서율은 재온을 보았다.
재온도 서율을 보았다.
이번에는 서율이 혼자 답하지 않았다.
재온은 겁먹은 숨을 들키지 않으려 입술을 눌렀다.
"도망가고 싶으면 말하고 도망갈게요."
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말풍선이 힘을 잃고 흘러갔다.
아흔아홉.
류하진은 너를 이용한다.
이번에는 류하진의 눈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서율은 그를 보았다.
"그럴 수도 있죠?"
류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때 확인할게요."
은빛 그림자가 그의 발밑에서 흔들렸다.
검은 말풍선은 금빛 문을 지나 사라졌다.
마지막 하나가 남았다.
백련서가 직접 손을 들었다.
붉은 연꽃이 활짝 열렸다.
그 안에서 가장 짙은 검은 말풍선이 내려왔다.
그 말은 글자도,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냥 확신이었다.
아무도 바뀌지 않는다.
그 확신은 무거웠다.
서율은 한순간 숨을 쉬지 못했다.
아무도 바뀌지 않는다.
그 말은 세상에서 가장 피곤한 주문이었다. 변하려는 사람을 멈추게 하고, 도와주려는 사람을 비웃고, 상처받은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라고 속삭이는 주문.
서율도 오래 믿었다.
사람은 안 바뀐다.
회사는 안 바뀐다.
나는 안 바뀐다.
그래서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어제 지하철 플랫폼에서 학생은 한 발 물러났다.
오늘 재온은 점심을 먹고, 사연 제출을 거절하고, 스스로 제자가 되겠다고 했다.
팀장은 아직 서툴지만 목 뒤의 실을 만졌다.
류하진은 아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만, 은빛 선을 거두지 않았다.
서율은 금빛 문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바뀌지 않는 건 아니야."
그녀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다만 아주 조금씩 바뀌어서, 네가 못 알아보는 거겠지."
마지막 검은 말풍선이 금빛 문 앞에서 멈췄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지나갔다.
[악의 100/100]
검증장이 무너졌다.
검은 말풍선들은 더 이상 말풍선이 아니었다. 물방울처럼 바닥에 떨어져 금빛 물길에 섞였다. 유리벽 바깥의 회사 풍경이 돌아왔다. 형광등, 회의실 예약 화면, 복도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범했다.
평범함이 조금 무서웠다.
공덕장이 길게 울렸다.
[첫 공개 검증 완료]
[제자 기록 보호 성공]
[무해문 방어식: 흘려보내기 1식]
[공덕 +21]
서율은 숫자를 보고 말했다.
"100개 읽었는데 21점?"
류하진이 대답했다.
"선계 장부는 원래 정신노동을 박하게 친다."
"현실이랑 닮았네요."
재온이 작게 웃었다.
팀장은 아직 목 뒤를 만지고 있었다.
백련서는 천천히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그 박수 소리는 1화에서 류하진이 했던 박수와 달랐다. 칭찬이라기보다, 평가를 마친 사람이 다음 단계를 여는 소리였다.
"합격입니다."
백련서는 웃음의 온도를 한 치도 바꾸지 않았다.
서율은 의자에 거의 기대듯 섰다.
"축하처럼 안 들리네요."
"축하가 아니라 판정이니까요."
백련서는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렸다. 붉은 실들이 그녀의 손가락으로 모였다가, 아주 얇은 문서 모양으로 접혔다.
"무해문은 이제 비공식 문파가 아니라, 관찰 대상 문파가 됐습니다."
"그게 더 좋은 건가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보이게 됐다는 뜻이죠."
보이게 됐다.
서율은 그 말이 무겁게 느껴졌다.
보이면 보호받을 수도 있다.
보이면 공격받을 수도 있다.
백련서는 재온을 보았다.
"민재온 씨의 기록은 오늘 보호됐습니다. 하지만 다음 검증부터는 본인이 더 많이 감당해야 할 거예요."
재온은 떨렸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서율이 그녀를 보자, 재온은 작게 덧붙였다.
"무섭지만요."
서율은 미소를 참지 못했다.
금지어 대신 진짜 말.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점수보다 더 큰 성과 같았다.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모두가 그를 보았다.
팀장은 목 뒤를 만지던 손을 내렸다. 붉은 실은 아직 있었다. 다만 전보다 얇아져 있었다.
"아까 식당에서... 제가 좀 심했습니다."
재온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서율도 대신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졌다.
이번 침묵은 압박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자기 말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재온은 겁먹은 숨을 들키지 않으려 입술을 눌렀다.
"사과는 나중에 듣겠습니다."
팀장의 얼굴이 당황으로 굳었다.
"지금은 못 듣겠어요."
그 말은 작았지만 또렷했다.
서율의 공덕장이 조용히 반짝였다.
[제자 경계 설정]
팀장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예전 같으면 "그래도 사과하는데 받아야지"라는 말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나오지 않았다.
서율은 그 사실을 보았다.
팀장도 보았다.
그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붉은 실이 한 번 더 얇아졌다.
백련서는 그 장면을 흥미롭게 보았다.
"작은 문파치고는 규율이 빠르게 생기네요."
"작으니까 빨리 보이는 거죠."
서율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큰 데는 이상한 게 너무 많아서 뭐가 규율인지도 모르잖아요."
백련서는 웃었다.
"한서율 씨, 천라문에 있었으면 정말 잘했을 텐데."
"그 말이 제일 싫어요."
"왜요?"
"아마 맞을 것 같아서."
백련서의 눈이 즐겁게 빛났다.
"자기 객관화가 빠르네요."
"그것도 싫고요."
류하진이 문가에서 말했다.
"검증 끝났으면 길을 열어."
백련서는 그제야 류하진을 정면으로 보았다.
"추방자 류하진."
회의실 공기가 차가워졌다.
서율은 그 호칭을 처음 들었다.
류하진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백련서는 웃음의 온도를 한 치도 바꾸지 않았다.
"아직도 남의 문파 뒤에 숨어 있나요?"
은빛 선이 류하진의 손끝에서 번쩍였다.
서율은 반사적으로 말했다.
"하진 씨."
그가 멈췄다.
백련서의 미소가 깊어졌다.
"좋은 고삐네요."
그 말에 류하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서율은 피곤한 머리로도 알았다. 백련서는 방금 일부러 건드렸다. 류하진이 공격하면, 검증장과는 다른 규칙으로 엮을 생각이었을 것이다.
서율은 한 걸음 앞으로 섰다.
"우리 문파 사람한테 고삐 같은 표현 쓰지 마세요."
말하고 나서, 그녀는 조금 놀랐다.
우리 문파 사람.
류하진도 놀란 것 같았다.
"나는 네 문파 사람이 아닌데."
"그럼 협력자."
"그것도 아닌데."
"그럼 밥은 안 먹지만 따라다니는 수상한 사람."
재온이 작게 웃음을 참았다.
류하진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협력자로 하지."
공덕장이 즉시 반응했다.
[임시 협력자 등록 가능]
류하진이 화면을 보더니 낮게 말했다.
"하지 마."
서율은 피곤하게 웃었다.
"안 해요. 본인 동의 없이 등록 안 합니다."
그 말에 류하진의 표정이 아주 잠깐 풀렸다.
정말 아주 잠깐이었다.
백련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붉은 연꽃 문양이 그녀의 뒤에서 접혔다. 검은 말풍선 폭풍도 사라졌다. 회의실은 다시 투명한 유리와 비싼 의자와 차가운 테이블의 공간이 되었다.
"오늘 검증 기록은 선계 장부에 남습니다."
"공개된다면서요?"
"일부만요."
백련서는 서율을 보았다.
"사람들은 모든 과정보다 결과를 좋아하니까."
서율은 그 말이 불길했다.
공덕장이 늦게 알림을 띄웠다.
[외부 노출 예정]
[요약 기록 생성 중]
"요약?"
서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또 남의 일을 요약해서 팔겠다는 건가요?"
백련서는 미소 지었다.
"서율 씨도 잘 알잖아요. 요약은 중립이 아니에요. 누가 자르느냐가 곧 권력이죠."
그 말이 끝나자 회의실 벽에 짧은 장면들이 떠올랐다.
서율이 말풍선에 흔들리는 장면.
재온이 우는 장면.
팀장이 사과하려다 멈춘 장면.
류하진이 은빛 선을 세운 장면.
각각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어 붙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서율은 눈을 가늘게 떴다.
"요약 기록도 검증 대상인가요?"
백련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답이었다.
공덕장이 새 수행을 띄웠다.
[후속 수행 감지]
[요약 기록의 순서를 직접 정하십시오]
[제한 시간: 다음 공개 전]
서율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젠 편집까지 하라고?"
류하진은 문가의 그림자 속에서 시선을 들었다.
"인지영근에게 맞는 수행이다."
"직업병을 수련법으로 만들지 마세요."
재온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배, 그건... 잘하실 것 같아요."
서율은 재온을 보았다.
재온은 당황해서 손을 흔들었다.
"아니, 안 좋은 뜻이 아니라요."
"알아요."
서율은 벽에 떠오른 장면들을 보았다.
누가 자르느냐가 권력이라면,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 자르느냐도 선택일 것이다.
백련서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다음 공개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붉은 꽃잎 하나가 남았다.
꽃잎은 종이처럼 얇고, 칼처럼 날카로웠다.
백련서가 나가고 나서야 회의실 안의 모두가 숨을 쉬었다.
서율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퇴근하고 싶다."
재온이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아직 오후 업무 시작도 안 했어요."
"그 말 너무 잔인해요."
류하진은 붉은 꽃잎을 집어 들지 않고 바라만 보았다.
"요약 기록은 조심해. 선계에서 기록은 검보다 오래 남는다."
"그걸 왜 이제 말해요."
"네가 방금 배울 순서였으니까."
"교육 방식 진짜 별로네요."
공덕장이 조용히 떴다.
[오늘의 수선 기록]
[무해문 방어식: 흘려보내기 1식]
[후속 수행: 요약 기록 편집]
[문파 상태: 관찰 대상]
서율은 화면을 보다가, 회의실 유리벽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어제보다 더 피곤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선명했다.
그녀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말했다.
"일단 물부터 마시죠."
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류하진은 문을 열었다.
복도 바깥, 회사 전체의 화면들이 동시에 붉게 반짝였다.
공개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