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월드

웹소설 · 오수완: 오늘도 수선 완료

2화. 점심 먹고 돌아오기

한서율은 제자 후보 민재온과 함께 회사 밖으로 나가 점심을 먹으려 하지만, 천라문은 '번아웃 공감 챌린지'를 빌미로 재온의 사연을 수집하고 검은 허기실을 조여 온다. 서율은 인증과 확산 대신 조용한 한 끼를 지키는 수행을 완수하며 무해문의 첫 제자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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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루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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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완: 오늘도 수선 완료 2화 대표 삽화
오수완: 오늘도 수선 완료 2화 1쪽 삽화

점심시간의 회사 앞은 전쟁터였다.

사람들은 엘리베이터에서 쏟아져 나와 각자의 식당으로 흘러갔다. 누군가는 메뉴판을 보며 계산했고, 누군가는 메신저를 보며 걷다가 앞사람의 발뒤꿈치를 밟았다. 햇빛은 눈부셨지만, 얼굴들은 대부분 어두웠다.

한서율은 그 사이에서 민재온의 걸음을 맞췄다.

재온은 문서 폴더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왔는데도, 아직 회의실에서 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뭐 먹고 싶어요?"

서율이 물었다.

재온은 자동으로 대답했다.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괜찮다.

그 말이 다시 나왔다.

서율은 걸음을 멈췄다.

"오늘 우리 문파 금지어 하나 정합시다."

"문파요?"

"일단 임시 개설됐으니까요. 금지어는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재온은 당황해서 안경을 고쳐 썼다.

"그럼 뭐라고 해야 해요?"

"진짜 아무거나면 '결정하기 귀찮습니다'. 싫은 게 있으면 '그건 싫습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말하기."

재온은 한참 생각했다.

"그럼..."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따뜻한 거요."

공덕장이 서율의 주머니 안에서 작게 울렸다.

서율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따뜻한 것.

대단하지 않았다. 비싼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은 아무거나보다 훨씬 정확했다.

"좋아요. 따뜻한 걸로."

서율은 근처 국밥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때 재온의 손목에 감긴 검은 실이 꿈틀거렸다.

어젯밤 학생에게 붙어 있던 마념체와 비슷했지만, 결이 달랐다. 그때의 검은 연기는 사람을 끝으로 밀었다. 지금의 실은 사람을 계속 붙잡아 두었다. 움직이지 못하게, 먹지 못하게, 쉬지 못하게.

서율의 시야 한쪽에 공덕장이 떴다.

[제자 후보 상태]

[허기실 4겹]

[방치 시 식기 손상]

"식기?"

서율이 중얼거리자 뒤에서 류하진이 말했다.

"먹는 힘."

그는 당연하다는 듯 따라오고 있었다. 손에는 편의점 아이스커피가 들려 있었다.

서율은 눈을 가늘게 떴다.

"회사엔 어떻게 들어왔어요?"

"방문증."

"누가 줬는데요?"

"네 팀장이."

"왜요?"

"나를 백련서 쪽 모델로 착각했거든."

서율은 잠깐 하늘을 보았다.

이 세계는 생각보다 허술하고, 그래서 더 위험했다.

류하진은 재온의 손목을 보았다.

"허기실은 천라문이 좋아하는 실이다. 굶기지는 않아. 대신 계속 미루게 만들지."

"미루게요?"

"점심은 이따가. 잠은 조금만 더 버티고. 병원은 다음 주에. 울 일은 퇴근하고. 그렇게 사람의 기본을 뒤로 밀어 놓으면, 남는 자리에 문파가 들어간다."

재온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얼굴이었다.

서율은 알아들었다.

너무 잘 알아들었다.

그녀의 회사 책상에는 언제나 미뤄 둔 것들이 쌓여 있었다. 점심, 물, 병원 예약, 엄마 전화, 빨래, 잠, 울 시간.

공덕장이 새 수행을 띄웠다.

[동행 수행 진행 중]

[수행명: 점심 먹고 돌아오기]

[조건 1. 제자 후보가 직접 메뉴를 고를 것]

[조건 2. 식사 중 사연을 공개하지 않을 것]

[조건 3. 식사를 끝까지 방해받지 않을 것]

서율은 세 번째 조건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밥 먹는 게 이렇게 거창할 일인가."

류하진이 대답했다.

"가장 기본적인 건 늘 빼앗기기 쉬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온의 회사폰이 울렸다.

액정에는 팀장의 이름이 떠 있었다.

재온의 어깨가 굳었다.

"받지 마요."

서율은 피곤한 눈으로 화면이 아닌 사람을 먼저 보았다.

재온은 이미 통화 버튼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업무일 수도 있어서..."

"점심시간이에요."

"인턴은 보통..."

"사람입니다."

재온은 멈췄다.

아주 짧은 침묵이었다. 하지만 검은 실 하나가 느슨해졌다.

휴대폰은 계속 울렸다. 진동이 재온의 손바닥을 때릴 때마다, 실이 다시 조이려 했다.

공덕장이 경고했다.

[방해 1차]

[응답 시 수행 조건 흔들림]

서율은 재온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지 않았다.

그건 다른 종류의 폭력이 될 수 있었다.

대신 말했다.

"재온 씨가 정해요. 지금 받을지, 밥 먹고 전화할지."

재온은 화면을 오래 보았다.

벨소리가 끊겼다.

그녀는 숨을 내쉬었다.

"밥 먹고 전화할게요."

검은 실 하나가 더 풀렸다.

서율의 손목에서 금빛 기운이 작게 돌았다.

류하진은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방금 문파 하나치고는 꽤 정확한 지시였다."

"문파 하나는 아니고 사람 둘이에요."

"그게 문파의 시작이지."

국밥집 앞에는 줄이 길었다.

서율은 잠깐 고민했다. 재온이 따뜻한 것을 원한다고 했으니, 국밥은 맞았다. 하지만 줄이 너무 길면 기다리는 동안 회사폰이 또 울릴 것이다.

그때 건물 로비 쪽 대형 화면이 바뀌었다.

흰 배경에 붉은 꽃 모양 로고가 떠올랐다. 글자는 평범한 광고였지만, 서율의 눈에는 그 뒤에 숨은 선계 문자가 보였다.

천라문 산하 복지 식당.

오늘의 무료 도시락.

대신 사연 제출.

서율은 눈을 찌푸렸다.

"저거 보이나요?"

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료 도시락 이벤트요? 아침에 메일도 왔어요. 번아웃 챌린지 사전 참여자한테 점심 제공한다고."

류하진은 컵을 흔들었다.

"사연을 먹고 사는 식당이네."

"식당이 그런 것도 해요?"

"선계에선 다 한다. 약방은 병을 모으고, 객잔은 외로움을 모으고, 문파는 결핍을 모은다."

서율은 광고 화면을 보았다.

붉은 로고 뒤로 백련서의 웃음이 겹쳐 보였다.

무료.

그 단어는 늘 조심해야 했다.

누군가의 비용이 보이지 않을 때, 비용은 대개 가장 약한 사람에게 붙었다.

재온은 광고를 보고 있었다.

"저거면 빨리 먹고 들어갈 수 있긴 한데..."

"안 돼요."

서율의 대답은 빨랐다.

재온이 놀랐다.

"왜요?"

"무료 점심이 아니라, 사연 선불이에요."

"사연이요?"

"재온 씨가 지금 힘든 이유, 울 것 같은 이유, 밥도 못 먹고 뛰어다니는 이유. 그걸 내면 도시락 하나 주겠다는 거예요."

재온의 얼굴이 서서히 굳었다.

그녀는 문서 폴더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런 건... 다들 하는 거 아닌가요."

"다들 한다고 괜찮은 건 아니죠."

서율은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라고 느꼈다.

그녀도 그런 이벤트를 만들었다. 감정 사연을 모으고, 제목을 붙이고, 카드뉴스로 자르고, 가장 반응 좋은 문장을 광고 문구로 바꿨다.

그때는 몰랐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완전히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공덕장이 조용히 떴다.

[개인 수행 규칙 확인]

[남을 콘텐츠로 만들지 않기]

서율은 숨을 들이마셨다.

"돈은 제가 낼게요."

재온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가..."

"첫 제자 후보 복지예요."

"제자 후보 복지라는 말 너무 이상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국밥집 줄은 천천히 줄었다.

기다리는 동안 회사폰은 두 번 더 울렸다. 재온은 두 번 모두 받지 않았다. 두 번째 벨이 끊어졌을 때, 그녀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웃었다.

"저 지금 큰일 난 거 맞죠?"

"네."

서율은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근데 밥 먹고 큰일 나도 됩니다."

류하진이 옆에서 웃었다.

"명언 같진 않은데 쓸모는 있네."

서율은 그를 보았다.

"하진 씨는 안 먹어요?"

"나는 식기가 망가져서 인간 음식은 효율이 낮다."

"효율 얘기 금지."

"그럼 맛이 잘 안 난다."

"그건 조금 슬프네요."

류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이 잠깐 멀어졌다. 서율은 그가 과거에 무엇을 잃었는지 아직 몰랐다. 다만 공덕 잔액이 음수라는 말과, 인간 음식의 맛이 잘 안 난다는 말은 같은 방향으로 서 있었다.

국밥집 문이 열렸다.

뜨거운 김이 밀려 나왔다.

재온의 배가 작게 울렸다.

그 소리에 재온은 얼굴을 붉혔다.

서율은 못 들은 척했다.

류하진도 못 들은 척했다.

그게 오늘 무해문이 처음 합의한 예의였다.

자리에 앉자 재온은 메뉴판을 오래 보았다.

서율은 기다렸다.

기다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회사에서는 결정을 빨리 내리는 사람이 유능했다. 침묵은 낭비였고, 망설임은 리스크였다.

하지만 재온은 지금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그건 작은 일이 아니었다.

"저는..."

재온이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순대 빼고 돼지국밥이요."

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런 것도 말해도 돼요?"

"먹을 사람이 말해야죠."

주문을 마치자 공덕장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조건 1 충족]

[제자 후보가 직접 메뉴를 선택했습니다.]

서율은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밥집에서 도 닦는 기분이네."

류하진은 창가 자리에 앉아 물잔을 굴렸다.

"도는 원래 밥상에도 있다."

"그런 말 갑자기 진지하게 하면 사기꾼 같아요."

"나는 원래 사기꾼들에게 많이 당했다."

서율은 그를 바라보았다.

류하진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식당 유리창 너머를 보았다.

붉은 실 하나가 바람도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국밥이 나왔다.

뚝배기에서 김이 올라왔다. 하얀 국물 위에 파가 떠 있었고, 고기는 얌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재온은 숟가락을 들고도 바로 먹지 못했다.

"왜요?"

서율이 물었다.

"사진..."

재온은 말끝을 흐렸다.

"회사 단톡에 올리면, 다들 어디냐고 물어볼 것 같아서요. 안 올리면 또 같이 안 움직인다고 할 것 같고."

서율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안 올려요."

"그래도..."

"조건 2."

서율은 휴대폰을 뒤집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식사 중 사연 공개하지 않기."

재온도 천천히 휴대폰을 뒤집었다.

그 순간 식당 천장 모서리에서 붉은 실이 내려왔다.

실 끝에는 작은 눈동자들이 달려 있었다. 카메라 렌즈 같기도 했고, 벌레 알 같기도 했다.

서율은 그걸 보자마자 입맛이 떨어졌다.

공덕장이 진동했다.

[방해 2차]

[관찰식귀 접근]

류하진이 젓가락 대신 손가락을 들었다.

"손대면 소란 난다."

"그럼요?"

"먹어."

서율은 그를 보았다.

"그게 대응이에요?"

"이번 수행은 그거잖아."

먹는 것.

별것 아닌 동작이었다.

서율은 숟가락을 들었다. 뜨거운 국물을 조금 떠서 입에 넣었다. 혀가 데일 뻔했고, 배 속이 천천히 풀렸다.

금빛 기운이 아주 작게 돌았다.

재온은 아직 망설이고 있었다.

"뜨거워요?"

서율이 물었다.

"조금요."

"천천히 먹어요."

"늦으면..."

"늦어요. 그래도 먹어요."

재온은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 입에 넣었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아무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늘이 열리지도 않았고, 공덕장이 폭죽처럼 터지지도 않았다.

다만 재온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검은 실 하나가 풀려 식탁 아래로 떨어졌다.

떨어진 실은 김에 닿자 잿빛으로 변했다.

관찰식귀의 눈동자들이 일제히 깜박였다.

서율은 알았다.

이것들이 원하는 것은 굶주린 얼굴이었다.

우는 얼굴, 흔들리는 손, "저도 사실 힘들었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그런데 재온은 지금 그냥 밥을 먹고 있었다.

콘텐츠가 되지 않고.

식당 문이 열렸다.

팀장이 들어왔다.

그는 숨을 조금 몰아쉬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국밥집까지 직접 찾아올 만큼 급한 일은 대개 급한 일이 아니었다. 급한 척하는 통제였다.

"서율 씨."

식당 안 몇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팀장은 재온을 보고 표정을 바꿨다.

"재온 씨도 여기 있었네. 회의 자료 수정해야 하는데 연락이 안 돼서."

재온의 손이 숟가락 위에서 멈췄다.

검은 실이 다시 살아났다.

서율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식사 중입니다."

"알아요. 근데 이건 급해서."

"얼마나 급한데요?"

팀장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백 이사님이 바로 보신대."

식당 유리창 바깥에 붉은 꽃 문양이 떠올랐다.

백련서.

서율은 국물 위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다. 피곤했지만, 어제보다 덜 흔들렸다.

"자료는 제가 돌아가서 보겠습니다."

"지금 필요하다니까."

"그럼 백 이사님이 점심 끝날 때까지 기다리시면 됩니다."

팀장의 얼굴이 굳었다.

재온은 숨을 삼켰다.

공덕장이 작은 경고를 띄웠다.

[조건 3 위협]

팀장은 웃지 않았다.

"서율 씨, 선 넘지 맙시다."

선.

그 말이 나오자 식당 바닥에 붉은 선이 생겼다. 팀장의 발밑에서 시작된 선은 테이블 다리 사이를 지나 재온의 발목으로 향했다.

서율은 그것을 보았다.

아마 예전의 자신은 못 봤을 것이다.

아니, 봤어도 모른 척했을 것이다.

"선은 지금 그쪽이 긋고 있어요."

팀장이 눈썹을 찌푸렸다.

"뭐라고요?"

류하진이 아주 작게 말했다.

"말로 끊지 마. 말은 저쪽 장기다."

"그럼요?"

"행동으로."

서율은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재온 씨. 한 숟가락만 더."

재온은 팀장을 보았다.

팀장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류하진은 조용히 웃고 있었다.

재온은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국물이 흔들렸다.

하지만 흘리지 않았다.

그녀는 한 숟가락을 더 먹었다.

붉은 선이 중간에서 끊어졌다.

서율의 손목에서 금빛 기운이 테이블 위로 번졌다.

팀장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이 스쳤다.

식당 천장의 관찰식귀들이 흔들렸다.

그것들은 카메라 렌즈처럼 재온의 얼굴을 찾았다. 울거나 겁먹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표정. 그들이 수집할 수 있는 표정.

하지만 재온은 국물을 삼켰다.

눈에는 눈물이 맺혔지만, 울음은 아니었다.

뜨거워서 난 눈물이었다.

서율은 그게 이상하게 통쾌했다.

공덕장이 알렸다.

[조건 2 유지]

[사연 비공개]

팀장은 목소리보다 먼저 눈치를 살폈다.

"재온 씨, 회사 생활 그렇게 하면 곤란해."

재온의 손목에서 검은 실이 다시 조였다.

서율은 입을 열려 했다.

그때 재온이 먼저 말했다.

"네."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곤란할 것 같아요."

팀장의 입꼬리가 올라가려 했다.

재온은 이어 말했다.

"그래도 밥은 먹고 가겠습니다."

식당이 조용해졌다.

서율은 숟가락을 쥔 채 멈췄다.

류하진도 멈췄다.

공덕장 화면에 금빛 원이 크게 돌았다.

[제자 후보 자율 발화]

[허기실 2겹 해제]

팀장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팀장의 뒤편 유리창이 붉게 물들었다.

백련서의 모습이 비쳤다. 실제로 그곳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유리 속에서만 웃고 있었다. 흰 정장, 붉은 입술, 흐트러짐 없는 머리.

그녀는 입술을 움직였다.

서율은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뜻은 읽혔다.

좋아요.

그 한마디가 식당 안 공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공덕장이 떨렸다.

[천라문 홍보 장로가 관전 중입니다.]

류하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벌써 직접 보네."

"유명해진 건가요?"

"표적이 된 거지."

서율은 유리창 속 백련서를 보았다.

백련서는 재온이 아니라 서율을 보고 있었다. 마치 새로 발견한 채널을 평가하는 사람처럼.

그 시선이 서율을 불쾌하게 했다.

어제까지는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했다.

오늘은 아니었다.

서율은 일부러 유리창을 보지 않고 재온에게 말했다.

"고기 건져 먹어요. 안 먹으면 밑에 가라앉아요."

재온은 눈물을 닦고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행동이었다.

그러나 백련서의 그림자가 유리창에서 잠깐 일그러졌다.

오수완: 오늘도 수선 완료 2화 15쪽 삽화

식사는 계속됐다.

그 말이 이상하게 대단했다.

팀장은 몇 번 더 말을 꺼내려 했지만, 식당 아주머니가 먼저 그를 막았다.

"주문하실 거 아니면 비켜요. 점심시간에 통로 막으면 안 돼."

팀장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서율은 속으로 그 아주머니에게 공덕을 주고 싶었다. 공덕장이 그런 기능을 지원하는지 몰랐지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재온은 밥을 반쯤 먹었다.

그때 회사 단톡방 알림이 재온의 뒤집힌 휴대폰을 흔들었다.

한 번.

두 번.

다섯 번.

열 번.

휴대폰은 마치 작은 벌레처럼 테이블 위에서 떨었다.

공덕장이 경고했다.

[방해 3차]

[집단 시선 유입]

재온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저... 봐야 할 것 같아요."

서율은 고개를 저었다.

"밥 다 먹고."

"근데 다들 저 때문이라고 하면..."

"그건 밥 다 먹고 들어도 늦지 않아요."

재온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서율을 보았다.

늦어도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처음 듣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서율의 말이 끝나자 휴대폰 화면 위로 검은 물방울이 맺혔다.

단톡방 알림이 스스로 벌어졌다. 뒤집어 둔 화면 위에서 검은 말풍선들이 솟았다. 글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의미는 느껴졌다.

쟤 때문에 늦어졌다.

인턴이 벌써 저러면 곤란하다.

누가 데리고 나갔냐.

서율의 목덜미가 차가워졌다.

그 말들은 재온에게 향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서율에게도 익숙했다.

집단의 시선.

그것은 마념체보다 조용했고,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류하진은 은빛 기운이 손목 아래로 짧게 번졌다.

"이번 건 네가 먹으면 안 된다."

"먹는다고요?"

"악의는 반응을 먹고 자란다. 인지영근은 특히 조심해야 해. 읽는 순간 네 술식으로 바뀌거나, 네 안에서 썩는다."

서율은 휴대폰을 보았다.

검은 말풍선들은 정말로 먹음직스러운 형태로 변하고 있었다. 이상한 표현이지만 그랬다. 달콤하고 자극적이고, 혀끝을 찌르는 맛처럼 보였다.

그녀가 가장 잘 아는 콘텐츠의 맛이었다.

공덕장이 새 문구를 띄웠다.

[비상 수행 제안]

[악의 10개를 씹지 않고 지나가기]

서율은 웃었다.

"오늘 식사 예절 빡세네."

서율은 휴대폰을 뒤집은 채 손바닥으로 덮었다.

검은 말풍선들이 손등 위로 기어 올라오려 했다. 차갑고 끈적했다.

그녀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어제의 무반응 10초와 비슷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어제는 자기 안으로 들어오려는 말을 견뎠다.

오늘은 다른 사람에게 향한 말을 대신 먹지 않는 일이었다.

하나.

검은 말풍선 하나가 터졌다.

둘.

재온은 숟가락을 꼭 쥐고 있었다.

셋.

팀장은 식당 밖에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넷.

백련서의 붉은 시선은 유리창에 남아 있었다.

다섯.

서율은 검은 말풍선을 읽지 않았다.

여섯.

읽히려는 의미를 국밥집의 소음으로 덮었다.

일곱.

뚝배기 끓는 소리.

여덟.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

아홉.

재온이 숨을 삼키는 소리.

열.

검은 말풍선들이 식탁 아래로 흘러내렸다.

공덕장이 조용히 빛났다.

[수행 성공]

[악의 미섭취]

류하진은 낮게 감탄했다.

"그건 꽤 희귀한 재능이다."

재온은 밥을 거의 다 먹었다.

서율은 속으로 박수를 쳤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때때로 아주 조용했다. 누군가 지붕에서 떨어지는 것을 붙잡는 장면이 아니라, 누군가의 숟가락이 마지막 밥알까지 닿도록 기다리는 일이었다.

재온은 국물을 조금 남기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다 못 먹었어요."

"많이 먹었어요."

"근데 남겼는데..."

"배부르면 그만 먹는 것도 수행이에요."

류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다."

서율은 그를 보았다.

"진짜요?"

"과하게 취하는 것도 집착이니까."

"갑자기 정상적인 조언을 하네요."

"가끔 한다."

재온은 작게 웃었다.

그 웃음과 함께 손목의 검은 실이 마지막 한 겹만 남기고 풀렸다.

공덕장이 울렸다.

[조건 1 충족]

[조건 2 충족]

[조건 3 진행 중]

아직 끝이 아니었다.

서율은 식당 밖을 보았다.

팀장은 사라져 있었다.

그 대신 붉은 실 여러 가닥이 길 건너편 대형 화면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대형 화면에는 번아웃 챌린지 광고가 떠 있었다.

이번에는 그냥 광고가 아니었다.

식당 안 사람들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서율의 휴대폰도, 재온의 휴대폰도, 심지어 류하진의 오래된 폴더폰까지 울렸다.

"폴더폰도 울려요?"

서율이 놀라 묻자 류하진은 폰을 꺼냈다.

"이건 선계 통행패다."

"생긴 건 폴더폰인데요."

"위장이 허술한 편이지."

서율은 자신의 휴대폰을 보았다.

화면 위에 붉은 꽃 모양 팝업이 떠 있었다. 읽을 필요도 없이 의미가 들어왔다.

지금 가장 힘든 점을 적으면 무료 쿠폰.

사연이 선정되면 특별 보상.

친구를 태그하면 추가 공덕.

재온의 손가락이 떨렸다.

"저 이거 아침에..."

"누르지 마요."

"근데 이미 사전 동의가..."

서율은 재온의 화면을 보았다.

정말로 동의 버튼이 눌린 상태였다. 작은 체크 표시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 아마 오전에 회의 자료를 정리하며, 별생각 없이 눌렀을 것이다.

공덕장이 경고했다.

[사연 자동 제출 60초 전]

서율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재온의 검은 실이 마지막으로 조여들었다. 실 끝이 휴대폰 화면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곧 재온의 메모, 메신저, 초안, 잠깐 쓴 사직서 같은 것들이 모두 사연으로 뽑힐 것이다.

"이건 사기잖아요."

서율은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류하진은 유리창 밖을 보았다.

"선계 약관은 늘 합법과 사기 사이에 있다."

"해지 방법은요?"

"보통은 더 큰 공덕으로 산다."

"돈으로 막는다는 거네요."

"비슷하다."

서율은 이를 악물었다.

공덕 잔액 10.

아침 물 한 잔까지 합쳐도 11.

백련서의 제안은 300.

그 차이가 갑자기 현실적인 압박으로 느껴졌다.

재온은 겁먹은 숨을 들키지 않으려 입술을 눌렀다.

"그냥 올라가도 괜찮아요."

서율은 재온을 보았다.

재온은 웃고 있었다. 괜찮다는 웃음. 익숙하고 싫은 웃음.

서율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금지어."

재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서율은 휴대폰을 들었다.

"괜찮다고 말하면 안 되는 순간이 있어요."

공덕장이 금빛으로 떴다.

[개인 수행 규칙을 적용하시겠습니까?]

서율은 바로 눌렀다.

남을 콘텐츠로 만들지 않기.

그 규칙이 화면 위에 금빛 선으로 떠올랐다.

서율은 그것을 처음 썼을 때, 그냥 다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규칙은 문장이 아니라 칼이었다.

아주 작고 무딘 칼.

그래도 실은 끊을 수 있을지 모른다.

서율은 재온의 휴대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류하진이 막았다.

"직접 만지면 네 정보도 같이 빨린다."

"그럼 어떻게 해요?"

"제자가 직접 거절해야 한다."

"아직 제자 아닌데요."

"그래서 후보지."

서율은 재온을 보았다.

재온은 이미 울고 있었다.

"저 못 해요."

"할 수 있어요."

"저 진짜 이런 거 못 해요. 거절하면 사람들이 저를 싫어해서..."

"싫어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재온이 더 울었다.

서율은 일부러 거짓 위로를 하지 않았다.

"근데 재온 씨 사연은 재온 씨 거예요."

재온의 눈물 사이로 금빛이 비쳤다.

"누가 가져가려 하면, 싫다고 해도 돼요."

공덕장이 두 사람 사이에 작은 문 모양 인장을 띄웠다.

[무해문 임시 규칙 공유]

재온은 자신의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자동 제출까지 30초.

붉은 꽃 팝업은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 싫었다. 고통을 예쁜 틀에 넣으면, 고통이 덜 잔인해 보였다.

재온은 손가락을 화면 위에 올렸다.

검은 실이 그녀의 손목을 파고들었다.

서율은 옆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했다.

기다렸다.

기다리는 것은 힘을 빼는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선택을 빼앗지 않기 위해, 자기 조급함을 붙잡아 두는 일이었다.

류하진은 문가에서 붉은 실들을 주시했다.

식당 아주머니는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세상은 아직도 평범했다.

재온은 안경 너머로 서율의 표정을 살폈다.

"싫어요."

목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화면이 흔들렸다.

"제 얘기, 올리기 싫어요."

검은 실 하나가 끊어졌다.

재온은 울면서도 손가락을 움직였다.

동의 철회.

사연 삭제.

알림 차단.

버튼들은 붉게 저항했지만, 금빛 문 인장이 하나씩 눌렀다.

마지막으로 재온이 화면을 껐다.

붉은 꽃 팝업이 산산조각 났다.

식당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천장의 관찰식귀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동자처럼 보이던 것들은 사실 마른 콩알만 한 붉은 벌레였다. 그것들은 김이 오른 뚝배기 근처에 닿자 검게 타들어 갔다.

재온의 손목에 남은 마지막 검은 실이 풀렸다.

그 자리에는 아주 얇은 금빛 실이 남았다.

서율의 공덕장이 울렸다.

[점심 먹고 돌아오기 완료]

[제자 후보의 사연 보호]

[무해문 적합도 상승]

서율은 긴장이 풀려 의자에 기대앉았다.

"밥 한 끼 먹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죠."

류하진이 대답했다.

"빼앗긴 걸 되찾는 일이라서."

재온은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저거... 아직도 보이는 거죠?"

"네."

서율은 숨기지 않았다.

"무서워요?"

재온은 한참 생각했다.

"무서운데요."

그녀가 작게 웃었다.

"안 보였을 때도 무서웠던 것 같아요."

서율은 그 말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았다.

보이지 않던 공포가 이름을 얻는 순간, 사람은 오히려 조금 숨을 쉴 수 있었다.

계산은 서율이 했다.

그녀의 카드가 결제 단말기에 닿는 순간, 공덕장이 조용히 말했다.

[문파 운영비 지출]

"야."

서율은 흩어진 숨을 짧게 묶었다.

류하진이 웃었다.

"이제 장부가 생겼네."

"현실 카드값은 누가 보전해 주는데요?"

"수행자가."

"문파 해산할까요?"

재온이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그 웃음에 식당 문 앞의 붉은 기운이 한 번 더 밀려났다.

밖으로 나오자 햇빛이 조금 더 높아져 있었다. 점심시간이 절반쯤 지나 있었다. 회사로 돌아가면 분명히 시끄러울 것이다.

하지만 재온의 걸음은 아까보다 분명했다.

공덕장이 두 사람 앞에 금빛 창을 띄웠다.

[무해문 첫 제자 등록 가능]

[대상: 민재온]

[등록 조건: 자발적 동의]

서율은 재온을 보았다.

"이건 진짜로 재온 씨가 정해야 해요."

재온은 안경을 밀어 올렸다.

"제자가 되면 뭐 해야 해요?"

서율은 잠깐 고민했다.

"일단 밥을 제때 먹습니다."

재온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거 어렵네요."

"맞아요."

"또요?"

"힘들 때 괜찮다고만 말하지 않기."

"그것도 어렵고요."

"남의 사연을 함부로 공유하지 않기."

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율은 웃었다.

"저보다 낫네요."

류하진은 뒤에서 말했다.

"문파 규율치고는 이상하게 현실적이군."

"현실에서 살아야 하니까요."

재온은 금빛 창을 보았다. 그녀에게도 이제 일부가 보이는 듯했다.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빛의 윤곽을 따라 눈동자가 움직였다.

"저는 대단한 사람은 못 돼요."

"무해문은 그런 사람 안 뽑아요."

"네?"

"대단해지려고 사람 망치는 문파는 이미 많잖아요."

재온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들어갈게요."

공덕장이 울렸다.

[민재온 등록]

[무해문 첫 제자]

[문파 등급: 임시]

서율은 그 문구를 보고 묘하게 뿌듯했다.

너무 작아서 웃길 정도로.

금빛 실이 재온의 손목에서 서율의 문파 인장으로 이어졌다.

그 실은 묶는 실이 아니었다. 끌어당기지도 않았고, 명령하지도 않았다. 그저 서로가 너무 멀어질 때, 길을 잃지 않도록 희미하게 방향을 알려 주는 실처럼 보였다.

류하진은 그것을 보고 표정을 감췄다.

서율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왜요?"

"오래전에 본 적 있는 방식이라서."

"좋은 거예요?"

"원래는."

"원래는?"

류하진은 대답 대신 회사 건물 위를 보았다.

유리벽에 붉은 꽃 문양이 다시 떠올랐다. 백련서는 아직 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공덕장이 갑자기 차갑게 변했다.

[외부 문파가 무해문을 인식했습니다.]

[천라문 관계도: 적대 관심]

서율은 단어 선택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적대 관심은 또 뭔데."

류하진은 은빛 기운이 손목 아래로 짧게 번졌다.

"가장 피곤한 종류의 관심."

"차단 안 돼요?"

"되면 내가 이렇게 살겠냐."

재온은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저 때문에..."

서율은 출입증 줄을 엄지로 문질렀다.

"금지어."

재온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스스로 고쳤다.

"무섭지만, 같이 갈게요."

회사로 돌아가는 길은 짧았다.

짧은데도 여러 번 멈췄다. 재온은 회사폰을 꺼내 알림 설정을 바꿨다. 점심시간 자동 방해금지. 팀 단톡 미리보기 끄기. 사연 이벤트 메일 수신 거부.

하나하나가 작은 반역이었다.

서율은 옆에서 지켜봤다.

공덕장이 각 항목을 조용히 기록했다.

[제자 기초 수행]

[경계 설정]

[공덕 +1]

재온이 숫자를 보고 눈을 깜박였다.

"이게 보여요."

"보이면 귀찮아져요."

"그래도..."

재온은 화면을 보며 말했다.

"제가 한 게 맞다고 확인받는 느낌이에요."

서율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였다.

류하진은 옆에서 말했다.

"장부의 가장 위험한 점이 그거다. 처음엔 확인처럼 보인다. 나중엔 허락처럼 느껴지지."

공덕장 화면이 잠깐 어두워졌다.

[허위 정보 신고 가능]

"너 진짜 쪼잔하다."

서율이 휴대폰에 말했다.

재온이 작게 웃었다.

무해문 첫 등교, 아니 첫 귀환은 그렇게 조금 우스웠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목 뒤의 붉은 실은 아까보다 굵어져 있었다. 실은 회사 천장 안쪽으로 이어져,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에 잡혀 있었다.

"둘 다 회의실로."

그는 짧게 말했다.

재온의 어깨가 움찔했다.

서율은 한 걸음 앞으로 섰다.

"자료 수정은 제가 맡겠습니다. 재온 씨는 오후 업무부터 정상 진행하고요."

"그걸 왜 서율 씨가 정합니까?"

"제가 데리고 나갔으니까요."

팀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책임지겠다는 뜻으로 들리네요."

서율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책임.

그 단어도 많이 남용됐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누를 때, 회사가 개인에게 비용을 넘길 때, 문파가 제자를 묶을 때.

그래도 이번에는 피하지 않기로 했다.

"네."

서율은 피곤한 눈으로 화면이 아닌 사람을 먼저 보았다.

"제 선택은 제가 책임집니다."

공덕장이 금빛으로 반응했다.

[문주 발화 감지]

서율은 화면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문주?"

류하진이 아주 즐겁다는 듯 웃었다.

"축하한다."

"축하하지 마세요."

회의실 문이 열렸다.

백련서가 안에 있었다.

그녀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이 순간까지 계산하고 기다린 사람처럼, 여전히 완벽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점심은 맛있었나요?"

서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재온도 대답하지 않았다.

백련서는 재온의 손목을 보았다. 검은 실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금빛 실을 보고, 그녀의 눈빛이 아주 조금 변했다.

"첫 제자까지."

팀장이 놀라 그녀를 보았다.

"이사님?"

백련서는 서류를 한 장 밀었다.

"한서율 씨에게 새 제안을 드리죠."

서율은 서류를 보지 않았다.

공덕장이 먼저 의미를 읽었다.

[천라문 협력 제안]

[무해문을 번아웃 챌린지 하위 커뮤니티로 편입]

[보상: 공덕 +500]

[조건: 제자 수행 기록 공개]

서율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우리 애 밥 먹인 지 10분 됐는데, 바로 팔라고요?"

백련서의 미소가 멈췄다.

재온이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우리 애.

서율도 말하고 나서야 그 표현을 깨달았다.

공덕장이 금빛으로 떨렸다.

[문파 결속 상승]

오수완: 오늘도 수선 완료 2화 30쪽 삽화

백련서는 서류를 거두지 않았다.

"거절해도 됩니다."

그녀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다만 거절한 문파는 공개 검증을 받게 돼요. 선계에도, 인간 세상에도 관객은 많거든요."

회의실 유리벽 바깥으로 회사 내부 익명 게시판이 떠올랐다. 글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검은 점들이 빗방울처럼 늘어났다. 악의가 모이는 소리였다.

서율의 공덕장이 울렸다.

[다음 수행 감지]

[악의 100개를 읽고 한 사람도 미워하지 않기]

[실패 시: 제자 기록 오염]

서율은 눈을 감고 싶었다.

하지만 감지 않았다.

재온은 옆에서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아직 떨고 있었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류하진은 문가에 서서 백련서를 바라보았다. 그의 그림자가 아주 길게 늘어났다. 은빛 선 하나가 그림자 끝에서 깜박였다.

백련서가 웃었다.

"어때요, 문주님."

그 호칭이 회의실 안에 내려앉았다.

서율은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공덕장 화면 한가운데, 작은 금빛 문이 열리고 있었다.

무해문.

임시 문파.

첫 공개 검증 대기.

서율은 아주 작게 웃었다.

"점심 먹었으니까."

그녀는 숨을 고르고 다음 반응을 기다렸다.

"이제 싸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