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월드

웹소설 · 오수완: 오늘도 수선 완료

1화. 오늘 죽지 않고 귀가하기

번아웃에 빠진 콘텐츠 기획자 한서율은 퇴근길 지하철에서 설치한 적 없는 선계 앱 '공덕장'을 받고, 첫 미션 '오늘 죽지 않고 귀가하기'를 수행한다. 조회수와 공덕이 연결된 세계에서 그녀는 알고리즘이 요구하는 자극 대신, 한 사람을 조용히 살리는 선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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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루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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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완: 오늘도 수선 완료 1화 대표 삽화
오수완: 오늘도 수선 완료 1화 1쪽 삽화

한서율은 지하철 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다가, 잠깐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다.

눈 밑은 푸르렀고, 입술은 말라 있었다. 목에는 회사 출입증이 아직 걸려 있었다. 퇴근길마다 빼야지 생각했지만, 늘 집에 도착한 뒤에야 목이 아파서 알아차렸다.

오늘도 그랬다.

오전 회의 네 개. 오후 보고서 세 개. 저녁에는 갑자기 잡힌 캠페인 수정안.

팀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서율 씨가 제일 감이 좋잖아."

감이 좋다는 말은 편리했다. 누군가의 야근을 예쁘게 포장할 때 잘 어울렸다.

서율은 손잡이를 붙잡고 눈을 감았다.

지하철은 한강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창밖은 검었다. 터널 벽의 조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지나갈 때마다, 유리 속 서율의 얼굴도 끊겼다 이어졌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앱 알림이었다.

설치한 적 없는 아이콘. 검은 바탕에 금빛 원. 원 안에는 작은 산과 물결이 겹쳐 있었다.

앱 이름은 세 글자였다.

공덕장.

서율은 피곤한 눈으로 화면을 보았다.

[첫 수행이 도착했습니다.]

[오늘 죽지 않고 귀가하기]

그녀는 작게 웃었다.

"진짜 별게 다 오네."

광고라고 생각했다.

요즘 앱들은 사람의 피로까지 잘 찾아냈다. 수면 관리, 명상, 루틴 체크, 감정 기록. 서율이 지난주에 검색한 단어들이었다.

죽지 않고 귀가하기.

문구는 자극적이었지만, 마케팅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너무 정확하다는 점이었다.

오늘 서율은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냥 사라지고 싶다.

죽고 싶다는 말과는 조금 달랐다. 더 부드럽고, 더 비겁하고, 더 피곤한 말이었다.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않는 곳으로 천천히 접히고 싶다는 뜻에 가까웠다.

서율은 알림을 지우려 했다.

손가락이 화면에 닿는 순간, 휴대폰이 차갑게 식었다.

아니, 식은 것이 아니었다.

겨울 물에 담근 쇠처럼 서늘한 기운이 손끝에서 팔목까지 올라왔다.

화면 위에 금빛 글자가 한 줄 더 떠올랐다.

[거절 불가]

서율의 웃음이 멈췄다.

지하철 안내 방송이 흘렀다.

"이번 역은 청담, 청담역입니다."

그런데 방송 뒤에 아주 작은 다른 목소리가 겹쳤다.

수행자는 하차하십시오.

문이 열리자 사람이 쏟아졌다.

서율은 원래 내릴 역이 아니었다. 두 정거장을 더 가야 했다. 그러나 발이 먼저 움직였다.

피곤해서 판단력이 떨어진 건가.

아니면 앱이 진짜 발을 움직였나.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승강장으로 내려섰다. 밤 열두 시가 가까운 역은 묘하게 비어 있었다. 몇 사람은 통화를 했고, 몇 사람은 이어폰을 낀 채 걸었다. 다들 각자의 화면 안에 들어가 있었다.

서율의 휴대폰이 다시 진동했다.

[수행 조건]

[1. 플랫폼 끝 노란 선 안쪽 유지]

[2. 뒤돌아보지 않기]

[3. 울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외면하지 않기]

"이게 뭐야."

서율은 중얼거렸다.

그때 승강장 끝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았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와 광고 영상 음악 사이에 끼어, 그냥 지나치면 모를 정도였다.

서율은 고개를 돌리려 했다.

뒤돌아보지 않기.

조건 두 번째가 떠올랐다.

그녀는 몸을 돌리지 않고, 승강장 유리에 비친 반사를 보았다.

검은 유리 너머, 플랫폼 끝 노란 선 바깥에 한 학생이 서 있었다.

교복 치마. 축 처진 어깨. 손에는 찢어진 종이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학생의 뒤에, 사람 모양의 검은 연기가 붙어 있었다.

서율은 귀신을 믿지 않았다.

믿을 시간이 없었다는 편이 더 정확했다. 월세와 카드값과 기획안 마감이 있는 사람에게 귀신은 비효율적인 공포였다.

그런데도 그 검은 연기는 귀신보다 더 분명했다.

학생의 귀에 입을 대고 있었다.

아무도 너를 기다리지 않는다.

소리가 아니라 의미가 흘러왔다. 서율은 그 말을 들은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붙은 포스트잇처럼 읽었다.

학생의 발끝이 노란 선을 넘었다.

공덕장 화면이 번쩍였다.

[위험도: 하]

[방치 시 사망 확률: 74%]

하?

서율은 순간 화가 났다.

"이게 하라고?"

혼잣말이었는데, 옆에 있던 남자가 그녀를 힐끗 보았다.

서율은 숨을 들이마셨다.

직접 달려가면 늦는다. 소리를 지르면 학생이 놀라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뒤돌아보면 조건 위반일지도 모른다.

기획안 고치듯 머리가 돌아갔다.

타깃은 학생. 메시지는 짧아야 한다. 부끄럽게 만들면 안 된다. 명령하면 반발한다. 살아야 할 이유를 설득하는 건 너무 늦다.

지금 필요한 건 이유가 아니라 시간이었다.

서율은 유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거기 학생."

학생의 어깨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나 좀 도와줄래요?"

서율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평온했다.

학생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도 발이 멈췄다.

서율은 휴대폰을 꼭 쥐었다. 화면에 금빛 원이 돌고 있었다.

"내가 지금 너무 어지러워서. 역무실까지 같이 가 줄 사람 찾고 있었어요."

학생의 손이 떨렸다.

"저요?"

"응. 딱 봐도 착하게 생겨서."

거짓말이었다.

서율은 학생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가끔 거짓말은 구명줄이 됐다.

검은 연기가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은 없었다. 눈도 입도 없는데, 이상하게 웃고 있다는 느낌이 났다.

공덕장 화면에 새 문구가 떠올랐다.

[마념체가 수행자를 인식했습니다.]

[추천 대응: 도주]

서율은 화면을 보고 다시 웃었다.

추천 대응이 도주라면, 이미 늦은 쪽이다.

그녀는 학생이 있는 방향을 직접 보지 않은 채 천천히 뒤로 걸었다. 유리에 비친 학생도 망설이다가 한 발 물러났다.

노란 선 안쪽.

작은 한 발이었다.

검은 연기의 어깨가 일그러졌다.

"언니, 진짜 괜찮아요?"

학생이 물었다.

언니.

그 말이 이상하게 서율의 가슴에 걸렸다. 회사에서는 이름보다 직책으로 불렸고, 집에서는 부모님에게 괜찮다는 말만 했다. 누군가가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는 일은 오래 없었다.

"괜찮진 않은데, 아직 쓰러지기 전 단계."

"119 부를까요?"

"그건 조금 부끄러워서. 역무실 정도로 합의 보자."

학생은 울음이 덜 마른 얼굴로 억지로 웃었다.

검은 연기가 둘 사이로 파고들었다.

너도 곧 무너진다.

이번에는 서율에게 속삭였다.

너는 누굴 구할 힘이 없다.

맞는 말이었다.

서율은 힘이 없었다. 돈도 없고, 수면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남을 구할 자격 같은 것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 도움이 됐다.

서율은 학생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그냥 말했다.

"나 혼자 가면 좀 무서울 것 같아."

학생이 고개를 들었다.

"같이 가자."

검은 연기가 흔들렸다.

그들은 승강장 끝에서 멀어졌다.

한 발, 또 한 발.

노란 선과 열차 바람과 검은 연기가 조금씩 뒤로 밀렸다. 서율은 계속 유리 반사만 보았다. 뒤돌아보지 않는 조건은 아직 유효할지도 몰랐다.

학생은 종이를 구겨 쥐고 있었다.

"성적표예요?"

서율이 물었다.

학생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요. 학원비 영수증."

짧은 대답이었다.

그 안에는 너무 많은 것이 있었다.

서율은 모른 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파고들지도 않았다.

"비싼 종이네."

"네?"

"그 정도면 찢기도 아깝잖아. 나중에 복수할 때 증거로 써야지."

학생이 멍하니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울음과 웃음이 섞여 소리가 이상했다.

검은 연기가 그 웃음에 닿자, 가장자리부터 연해졌다.

공덕장에 금빛 숫자가 떴다.

[타인의 자멸 충동 지연]

[공덕 +3]

서율은 숫자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 목숨이 3점?"

너무했다.

하지만 그 3점이 손목 안쪽에서 아주 작게 따뜻해졌다.

역무실은 닫혀 있지 않았다.

야간 근무자가 컵라면을 먹다가 두 사람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서율은 어지럽다는 말과 학생이 위험해 보였다는 말을 섞어 설명했다.

학생은 처음에는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는 말은 편리했다. 무너지는 사람을 조용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서율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괜찮으면 더 좋아요. 괜찮은 김에 어른 한 명 더 불러요."

역무원이 보호자 연락처를 물었다.

학생은 한참 망설이다가 번호를 말했다. 통화가 연결되는 동안, 그녀는 서율의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

검은 연기는 역무실 문 밖에서 서성였다.

들어오지 못했다.

문 위 형광등이 이상하게 밝았다. 아니, 형광등이 아니라 서율의 손목에서 새어 나온 금빛 때문이었다.

공덕장 알림이 다시 떠올랐다.

[첫 수행 진행률: 62%]

아직 끝이 아니었다.

서율은 휴대폰을 노려봤다.

"이제 뭐가 남았는데."

화면에는 짧은 문장이 떠올랐다.

[수행자는 귀가해야 합니다.]

그 말이 왜 이렇게 무서운지, 서율은 그때 알았다.

밖으로 나가야 했다.

역무실을 나서자 승강장은 더 비어 있었다.

막차가 가까웠다. 사람들은 줄어들었고, 광고 화면만 환하게 빛났다. 화면 속 모델은 무표정하게 영양제를 들고 있었다.

서율은 계단으로 향했다.

그때 광고 화면이 꺼졌다.

검은 화면 위로 흰 글자가 떠올랐다.

너도 저장되고 싶었잖아.

서율의 발이 멈췄다.

마념체가 광고판 안에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사람 모양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수많은 댓글과 알림과 읽지 않은 메시지가 엉겨 붙은 덩어리였다.

너도 누가 알아봐 주길 바랐잖아.

서율은 이를 악물었다.

맞았다.

그녀는 알아봐 주길 바랐다. 오래 버틴 것, 잘 참은 것, 무너지지 않은 것. 누군가가 대단하다고 말해 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화면에 붙으니 너무 초라해 보였다.

공덕장이 떨렸다.

[마념체가 수행자의 결핍을 매개로 침투합니다.]

[추천 대응: 인증하기]

"인증?"

화면 아래에 촬영 버튼이 생겼다.

[수행 기록을 업로드하면 방어막이 생성됩니다.]

서율은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켰다.

화면에는 지친 자신의 얼굴이 잡혔다.

엉망이었다.

머리는 눌렸고, 눈은 붉었고, 목에는 회사 출입증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 누가 봐도 멋진 인증샷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덕장은 친절하게 문구 예시를 띄웠다.

[오늘도 버틴 나, 칭찬해]

[무너질 뻔한 밤에도 나는 누군가를 살렸다]

[수행자 한서율의 첫 공덕 기록]

서율은 손가락을 멈췄다.

그럴듯했다.

잘 팔릴 문장들이었다. 짧고, 감정적이고, 저장하기 좋았다. 서율은 그런 문장을 만들어 먹고살았다.

그런데 그 문장을 올리면, 방금 그 학생은 이야기의 소품이 된다.

서율은 촬영 버튼을 닫았다.

공덕장이 붉게 변했다.

[인증하지 않으면 방어막이 생성되지 않습니다.]

"알아."

[추천 경로를 따르십시오.]

"싫어."

검은 화면 속 마념체가 웃었다.

너는 아무것도 못 한다.

서율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래도 남의 불행으로 나를 포장하진 않아."

그 순간 광고판이 깨진 것처럼 금이 갔다.

계단 위에서 누군가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느린 박수였다. 놀리는 것 같기도 했고, 정말 감탄한 것 같기도 했다.

서율은 고개를 들었다.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계단 난간에 기대 서 있었다. 키가 컸고, 얼굴은 이상하게 선명했다. 배우나 모델처럼 보였지만, 새벽 지하철역에서 그런 사람을 마주치면 멋지다기보다 수상했다.

남자는 잠깐 웃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첫 수행에서 인증을 거부하는 사람은 오랜만이네."

서율은 한 발 물러났다.

"누구세요?"

"류하진."

"그걸 물은 게 아닌데요."

"전직 수선자. 현직 무직에 가까운 배우."

서율은 피곤해서인지 그 말이 더 수상하게 들리지도 않았다.

"그 앱 아세요?"

류하진은 그녀의 주머니를 가리켰다.

"공덕장. 선계가 인간 세상에 뿌린 장부지. 좋은 일을 하면 점수를 주고, 점수가 쌓이면 힘을 준다는 아주 그럴듯한 사기."

"사기요?"

"공덕은 모으는 순간 빚이 돼."

그가 계단 아래를 보았다.

마념체가 광고판에서 몸을 빼내고 있었다.

"그리고 빚쟁이가 왔네."

서율은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가 무거웠다. 마념체가 광고판에서 흘러나오자 공기가 끈적해졌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목 안에 누군가의 한숨이 쌓이는 것 같았다.

류하진은 천천히 내려왔다.

그는 손에 아무 무기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계단 조명이 그를 지나갈 때마다, 그의 그림자가 칼처럼 길어졌다.

"뒤로 세 걸음."

서율은 반사적으로 물었다.

"왜요?"

"살고 싶으면."

"아까부터 다들 자꾸 죽지 말래."

"오늘 네 운세가 그런 모양이지."

서율은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마념체가 덮쳐 왔다.

류하진의 손가락이 공중을 그었다. 얇은 은빛 선이 나타났다. 선은 부적도 검도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영상 편집 프로그램에서 화면을 잘라낸 것처럼, 공간의 한 부분이 싹둑 접혔다.

마념체의 팔이 잘려 나갔다.

그러나 검은 조각들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작은 알림창처럼 흩어져 서율 쪽으로 날아왔다.

[너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네가 사라져도 회사는 돌아간다]

[괜찮다는 말밖에 못 하는 인생]

서율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말들은 정확했다.

너무 정확해서 무기 같았다.

서율은 귀를 막고 싶었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알림창들이 그녀의 주변을 돌며 점점 가까워졌다.

류하진은 검은 코트 자락을 한 번 정리했다.

"읽지 마."

"이미 읽혔는데요."

"그럼 반응하지 마."

"그게 제 직업인데요."

콘텐츠 기획자에게 반응하지 말라는 말은 거의 숨 쉬지 말라는 말이었다. 좋은 반응, 나쁜 반응, 조회수, 체류 시간, 저장 수, 공유 수. 서율의 하루는 남의 반응을 읽는 일로 시작해서, 남의 반응을 유도하는 일로 끝났다.

마념체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화면들이 더 가까이 왔다.

그때 공덕장이 다시 켜졌다.

[비상 수행 제안]

[수행명: 무반응 10초]

[보상: 기초 영기 1식]

서율은 어이없어 웃었다.

10초.

인생을 바꾸기에는 너무 짧고, 알림을 무시하기에는 너무 길었다.

류하진이 힐끗 그녀를 보았다.

"할 수 있나?"

서율은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하나.

마념체가 속삭였다.

너는 실패작이다.

둘.

셋.

서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넷.

알림창 하나가 볼을 스쳤다. 차가웠다. 피부가 찢어진 것도 아닌데 눈물이 났다.

다섯.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율 씨가 제일 감이 좋잖아."

여섯.

어머니의 목소리가 겹쳤다.

"요즘 일은 괜찮니?"

일곱.

자기 목소리도 들렸다.

괜찮아.

거짓말이었다.

여덟.

서율은 손을 꽉 쥐었다. 손목 안쪽의 금빛 점이 따뜻해졌다. 아까 학생을 역무실로 데려갔을 때 받은 공덕 3점이었다.

아홉.

그 작은 온기가 알림창 하나를 녹였다.

열.

서율이 눈을 떴다.

주변의 검은 알림창들이 동시에 멈췄다. 글자가 흐려지고, 문장들이 의미를 잃었다.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그냥 검은 먼지가 되었다.

공덕장이 금빛으로 빛났다.

[수행 성공]

[기초 영기 1식 획득]

류하진이 낮게 웃었다.

"요즘 사람치고는 꽤 하네."

서율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요즘 사람이라서 한 겁니다."

오수완: 오늘도 수선 완료 1화 15쪽 삽화

마념체가 처음으로 비명을 질렀다.

소리는 없었다. 대신 승강장의 광고판들이 동시에 깨졌다. 화면 속 영양제 모델, 금융 앱, 여행 상품, 자기계발 강의가 모두 검게 번졌다.

류하진은 손가락으로 은빛 선을 다시 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선이 짧았다. 그의 얼굴이 아주 잠깐 일그러졌다. 서율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힘 빠졌어요?"

"눈치가 빠르네."

"기획자는 예산 줄어드는 냄새에 민감해서요."

"나는 예산이 아니라 수명 쪽인데."

류하진은 가볍게 말했지만,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마념체가 두 사람 사이를 향해 몸을 키웠다. 검은 연기 속에 수많은 얼굴이 떠올랐다. 울던 학생, 야근하던 서율, 광고 속 사람들, 댓글을 달던 익명의 누군가들.

공덕장이 빠르게 문구를 띄웠다.

[합동 수행 가능]

[대상: 추방 수선자 류하진]

[주의: 대상의 공덕 잔액은 음수입니다.]

서율은 류하진을 보았다.

"빚이 많나 봐요?"

"말했잖아. 공덕은 빚이라고."

"그럼 같이 갚죠."

류하진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서율은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계약서 말고, 오늘은 동행 기록으로."

공덕장은 잠시 멈춘 듯했다.

마치 예상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듯, 금빛 원이 느리게 돌았다.

[동행 기록은 보상이 낮습니다.]

"알아."

[인증 기록보다 확산성이 떨어집니다.]

"알아."

[수행자의 성장 효율이 저하됩니다.]

"그럼 건강한 거네."

류하진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너, 선계 장부랑 말싸움하는 타입이구나."

"앱 약관이랑도 싸워 봤어요."

서율은 화면 아래 작은 버튼을 눌렀다.

[동행 기록 시작]

두 사람의 발밑에 금빛 원이 생겼다. 화려하지 않았다. 광고처럼 번쩍이지도 않았다. 누군가 오래된 종이에 조용히 선을 그은 듯한 빛이었다.

마념체가 그 빛을 싫어했다.

검은 몸이 뒤로 물러났다.

류하진은 문가의 그림자 속에서 시선을 들었다.

"네가 왼쪽으로 걸어. 나는 오른쪽."

"무슨 술식인데요?"

"그냥 길 만들기."

"그런 건 설명이 부족한데요."

"선협은 원래 그런 장르야."

"요즘 독자들은 안 봐줘요."

"그럼 네가 설명해."

서율은 숨을 고르고 왼쪽으로 걸었다.

두 사람 사이에 좁은 길이 생겼다.

길은 승강장 바닥 위에 그어진 얇은 금선이었다.

서율이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금선은 조금씩 앞으로 뻗었다. 류하진이 반대편에서 같은 속도로 걸었다. 두 사람의 보폭이 맞을 때마다, 선은 더 밝아졌다.

마념체는 그 사이로 들어오지 못했다.

서율은 갑자기 이해했다.

혼자 버티는 수행이 아니라, 같이 걷는 수행.

그것은 강하지 않았다. 빠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틈을 만들었다.

사람이 무너질 때 필요한 건 대단한 구원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을 만큼의 틈일 때가 있었다.

공덕장이 알렸다.

[무해한 보행 1식이 생성되었습니다.]

"무해한 보행?"

류하진은 검은 코트 자락을 한 번 정리했다.

"네 수행법 이름이 정해진 모양이네."

"구려요."

"선계 기준으론 신선해."

"그게 더 싫어요."

마념체가 금선 바깥에서 몸을 비틀었다. 수많은 알림창이 다시 떠올랐지만, 이번에는 문장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서율은 걸었다.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 사실 하나가, 이상하게도 아주 큰 술식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출구까지 걸었다.

역 밖의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택시 몇 대가 지나갔고, 편의점 간판이 푸르게 빛났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범했다.

마념체는 계단 아래에서 더 올라오지 못했다.

류하진은 뒤돌아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은빛 선이 출구 바닥에 박히고, 검은 연기는 잠시 움찔하더니 터널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공덕장이 길게 울렸다.

[첫 수행 완료]

[오늘 죽지 않고 귀가하기]

[보상: 공덕 +7]

[보상: 기초 영기 1식 유지]

[부가 기록: 타인의 생존 가능성 상승]

서율은 숫자를 보고 말했다.

"학생 구한 게 3점이고, 집 가는 게 7점?"

류하진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선계 장부는 언제나 자기 보존을 더 높게 쳐."

"착하네요."

"착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어야 계속 뜯어 가니까."

"역시 사기 앱이네."

공덕장이 바로 반응했다.

[명예훼손 경고]

서율은 피식 웃었다.

살짝 웃은 것뿐인데, 몸 안에서 금빛 기운이 아주 작게 돌았다.

정말로 뭔가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류하진은 편의점 앞에서 멈췄다.

"집 어디야?"

서율은 주소를 말하지 않았다.

"처음 만난 수상한 남자한테 집 주소를 말하는 취향은 없어요."

"정상적인 판단이다."

"그럼 물어보질 마세요."

"정상인지 확인한 거야."

서율은 그를 노려봤다.

류하진은 편의점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흘끗 보았다. 어딘가 지친 얼굴이었다. 무명 배우라고 했지만, 그 얼굴에는 너무 오래 산 사람의 피곤함이 있었다.

"공덕장은 네가 앱을 지운다고 사라지지 않아."

"예상했어요."

"알림도 계속 올 거고."

"그것도 예상했어요."

"따르면 빨리 강해져. 대신 많이 잃지."

"안 따르면요?"

류하진은 잠시 생각했다.

"느리게 강해져. 대신 네가 뭘 잃는지 직접 고를 수 있어."

서율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빠르게 강해지는 이야기는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빠른 것에 너무 오래 시달렸다. 빠른 회의, 빠른 피드백, 빠른 수정, 빠른 소비, 빠른 잊힘.

느리게 강해지는 쪽이 오히려 낯설고 좋아 보였다.

서율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수행자 프로필이 생성되었습니다.]

이름: 한서율

영근: 인지영근

경지: 무경

공덕 잔액: 10

특성: 무해한 보행

서율은 화면을 멍하니 보았다.

"인지영근은 뭐예요?"

류하진이 눈썹을 올렸다.

"희귀한데 귀찮은 체질."

"설명 참."

"사람들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읽고, 그 반응을 술식으로 바꾸는 영근이다. 선계에서는 선전문, 유혹문, 천라문 같은 데서 탐내지."

"천라문?"

류하진의 표정이 아주 조금 차가워졌다.

"대형 문파. 인간 세상에서는 플랫폼, 광고회사, 팬덤 운영사, 자기계발 브랜드 같은 얼굴로 숨어 있어."

서율은 자기 회사 건물을 떠올렸다.

유리벽. 회의실. 성과표. 캠페인 대시보드.

"설마 우리 회사도요?"

"아직은 몰라."

"아직은?"

"오늘부터 알게 되겠지."

그 말과 동시에 공덕장 화면이 바뀌었다.

[추천 문파: 천라문]

[가입 시 즉시 공덕 +300]

서율은 화면을 닫았다.

"추천 알고리즘이 너무 속 보이네요."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서율은 잠들지 못했다.

창밖으로 새벽 도시가 흘렀다. 강남대로의 간판들은 반쯤 꺼져 있었고, 도로 위에는 배송 오토바이와 청소차가 드문드문 지나갔다.

그 평범한 풍경 사이로 이상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빌딩 옥상에 걸린 금빛 부적. 횡단보도 위를 지나가는 희미한 구름다리. 새벽 카페 앞에 앉아 있는, 사람보다 그림자가 긴 노인.

서율은 눈을 비볐다.

보이면 피곤해질 것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안 보인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택시 기사님이 라디오를 틀었다.

"최근 청년층 번아웃 관련 상담 건수가..."

서율은 라디오를 끄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신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다.

오늘 죽지 않고 귀가하기.

그 문장을 적었다.

그리고 밑에 한 줄을 더 썼다.

남을 콘텐츠로 만들지 않기.

손목의 금빛 점이 작게 반짝였다.

공덕장이 조용히 알렸다.

[개인 수행 규칙이 등록되었습니다.]

서율은 처음으로 앱이 조금 마음에 들 뻔했다.

아주 조금이었다.

집은 좁았다.

원룸 문을 열자, 쌓아 둔 택배 박스와 빨래 건조대가 그녀를 맞았다. 책상 위에는 마시다 만 커피가 세 개 있었다. 하나는 어제 것, 하나는 그제 것, 하나는 기억나지 않는 날의 것이었다.

서율은 가방을 내려놓고 바닥에 앉았다.

갑자기 온몸의 힘이 빠졌다.

살아 돌아왔다.

그 사실이 뒤늦게 무거워졌다.

그녀는 울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눈물이 났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고, 그래서 정확한 이유는 없었다.

공덕장이 조심스럽게 울렸다.

[오늘의 수행 기록을 저장하시겠습니까?]

서율은 오래 화면을 보았다.

저장.

공개.

인증.

비슷하지만 다른 단어들이었다.

그녀는 공개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대신 비공개 저장을 눌렀다.

[비공개 기록은 공덕 전환율이 낮습니다.]

"그래."

[정말 저장하시겠습니까?]

"그래."

[기록 저장 완료]

서율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날 밤, 아니 새벽.

그녀는 오랜만에 회사 알림을 모두 껐다.

공덕장 알림도 같이 끄려 했지만, 그건 꺼지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잠은 짧았다.

그래도 깊었다.

서율은 알람보다 먼저 깼다. 방 안에는 아침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몸이 납처럼 무거웠을 텐데, 오늘은 손목 안쪽이 따뜻했다.

그녀는 이불 속에서 손을 들어 보았다.

금빛 점 하나.

아주 작고, 누르면 사라질 것 같은 점.

하지만 어젯밤의 일이 꿈이 아니었다는 증거였다.

휴대폰에는 회사 메신저 알림이 쌓여 있었다.

[서율 씨, 어제 수정안 공유 부탁]

[오전 회의 자료 어디까지 됐나요?]

[오늘 캠페인 톤 다시 봐야 할 듯]

그 아래 공덕장 알림이 있었다.

[일일 수행 제안]

[아침에 물 한 잔 마시기]

[보상: 체력 회복 +1]

서율은 멍하니 화면을 보다가 웃었다.

"진짜 사소하네."

그래도 물을 마셨다.

찬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손목의 금빛 점이 아주 작게 돌았다.

[수행 완료]

서율은 컵을 내려놓았다.

세상이 갑자기 쉬워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물 한 잔을 마신 자신을 비웃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첫 변화였다.

출근길은 평소와 같았다.

사람들은 빽빽했고, 모두가 각자의 화면을 보고 있었다. 서율은 어젯밤 학생을 떠올렸다. 이름도 묻지 못했다. 아니, 묻지 않은 것이 맞았다.

그 아이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제 밤은 넘겼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순간이 있다는 걸, 서율은 처음 알았다.

회사 로비에 들어서자 이상한 감각이 목덜미를 스쳤다.

엘리베이터 옆 디지털 사이니지에 회사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광고 배경에 희미한 문양이 겹쳐 보였다.

천라문.

글자를 배운 적도 없는데 읽혔다.

서율은 걸음을 멈췄다.

공덕장이 자동으로 켜졌다.

[천라문 산하 법인 감지]

[주의: 인지영근 보유자는 스카우트 대상입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안에는 팀장이 서 있었다.

"서율 씨, 마침 잘 만났다."

그는 평소처럼 웃었다.

그런데 서율의 눈에는 그 웃음 뒤로 얇은 붉은 실이 보였다. 실은 팀장의 목 뒤에서 회사 천장 위 어딘가로 이어져 있었다.

"오늘 오전에 아주 좋은 기회가 있어."

그는 손끝의 긴장을 천천히 풀었다.

"서율 씨한테 딱 맞는 프로젝트야."

회의실에는 낯선 여자가 앉아 있었다.

흰 정장. 붉은 립스틱. 머리카락은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녀는 노트북을 열어 둔 채 서율을 보고 웃었다.

"한서율 씨죠?"

"네."

"백련서입니다. 천라 커뮤니케이션즈 전략이사."

공덕장이 진동했다.

[경고]

[천라문 홍보 장로 백련서]

서율은 표정을 관리했다.

홍보 장로.

현대 사회에서 그보다 무서운 직함은 드물었다.

백련서는 화면을 돌려 보여 주었다. 화면에는 캠페인 제목이 떠 있었다.

청년 번아웃 공감 챌린지.

해시태그는 자극적이었다. 무너진 책상, 눈물 셀카, 퇴근길 절망, 익명의 사연 제보. 서율이 어제라면 잘 만들었을 법한 기획이었다.

백련서는 웃음의 온도를 한 치도 바꾸지 않았다.

"우리는 진짜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싶어요."

서율은 물었다.

"그 다음에는요?"

"확산하죠. 위로가 되도록."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공덕장이 화면 위에 분석 문구를 띄웠다.

[예상 효과: 공감 12%, 비교심 31%, 자멸 충동 8%, 체류 시간 상승]

서율은 손끝이 차가워졌다.

백련서가 웃었다.

"서율 씨 감각이면, 이 캠페인 아주 크게 만들 수 있어요."

팀장은 기대에 찬 얼굴로 서율을 보았다.

"이번 거 잘하면 서율 씨도 드디어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위로.

서율은 그 단어를 곱씹었다.

위로 올라간다는 말은 이상했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뜻처럼 들릴 때가 많았다.

백련서는 흰 소매 끝을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물론 보상도 충분합니다."

서율의 휴대폰 화면이 저절로 켜졌다.

[천라문 특별 제안]

[가입 보상: 공덕 +300]

[부가 혜택: 인지영근 성장 가속]

[계약 조건: 공개 수행 기록 권한 위임]

300.

어젯밤 사람을 살리고, 마념체를 피하고, 겨우 집에 돌아와 받은 것이 10이었다. 그런데 이 계약 하나면 300.

효율적이었다.

서율은 효율이라는 단어를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더 싫었다.

"이 캠페인에서 사람들은 뭘 얻나요?"

백련서가 대답했다.

"공감."

"회사와 문파는요?"

회의실 공기가 아주 잠깐 멈췄다.

백련서의 눈이 가늘어졌다.

"문파?"

서율은 속으로 욕했다.

입이 먼저 살아 있었다.

백련서는 웃음을 유지했다.

그러나 회의실 유리벽 바깥의 풍경이 바뀌었다. 빌딩 숲이 사라지고, 붉은 실이 얽힌 거대한 누각이 비쳤다. 수많은 사람들이 실 끝에 매달려 울고, 웃고, 인증하고 있었다.

팀장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서율만 보았다.

백련서는 흰 소매 끝을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보이는군요."

공덕장이 빠르게 경고를 띄웠다.

[인지영근 노출]

[도주 권장]

서율은 어젯밤 류하진의 말을 떠올렸다.

따르면 빨리 강해져. 대신 많이 잃지.

안 따르면 느리게 강해져. 대신 네가 뭘 잃는지 직접 고를 수 있어.

서율은 노트북 화면을 밀어냈다.

"저는 이 프로젝트 못 합니다."

팀장의 얼굴이 굳었다.

"서율 씨."

"사람들 아픈 얘기를 모아서 체류 시간 늘리는 일, 못 하겠습니다."

백련서는 조용히 박수를 쳤다.

어젯밤 류하진의 박수와 비슷했지만, 온도는 전혀 달랐다.

"흥미롭네요."

그녀는 서율의 명함을 집어 들었다.

"그럼 한서율 씨는 무엇을 하실 건가요?"

서율은 대답하지 못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질문은 어제부터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죽지 않고 귀가한 다음, 물 한 잔을 마신 다음, 회사에 와서 계약을 거절한 다음.

그 다음은 뭘까.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공덕장 알림이었다.

[자체 문파 개설 조건 일부 충족]

[조건 1: 독자 수행 규칙 보유]

[조건 2: 동행 수행 기록 보유]

[조건 3: 제자 1명 필요]

서율은 화면을 보며 멈췄다.

제자.

말도 안 되는 단어였다.

그 순간 회의실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막내 인턴 민재온이었다. 늘 조용히 웃고, 회의록을 제일 빨리 정리하고, 아무도 퇴근 시간을 묻지 않는 아이.

재온은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회의 중인데..."

그녀의 손에는 출력물이 들려 있었다. 제목이 보였다.

청년 번아웃 공감 챌린지 사연 모집안.

재온의 손목에는 아주 희미한 검은 실이 감겨 있었다.

서율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온 씨."

재온이 놀란 눈으로 보았다.

"점심 먹었어요?"

회의실 사람들은 모두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순간에 점심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서율은 물었다.

재온은 당황해서 대답했다.

"아니요. 아직..."

"그럼 나가요."

팀장이 날카롭게 말했다.

"한서율 씨, 지금 장난합니까?"

서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수행합니다."

공덕장이 금빛으로 빛났다.

[제자 후보와 동행 수행 가능]

[수행명: 점심 먹고 돌아오기]

[보상: 미정]

백련서가 처음으로 웃지 않았다.

"그 작은 선택으로 우리 제안을 거절하겠다고요?"

"네."

"후회할 텐데요."

"아마요."

서율은 가방을 들었다.

"근데 오늘은 점심부터 먹으려고요."

재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왜인지는 몰라도, 그 한마디가 그녀를 붙잡은 듯했다.

서율은 문을 열었다.

회의실 밖 복도 끝에 류하진이 서 있었다. 그는 어째서 회사 안에 들어와 있는지 모를 태연한 얼굴로 커피를 들고 있었다.

입모양만 말했다.

느리게 잘하네.

서율은 그를 무시했다.

조금 웃었지만, 무시한 셈 치기로 했다.

오수완: 오늘도 수선 완료 1화 30쪽 삽화

회사 건물 밖으로 나오자 햇빛이 따가웠다.

재온은 서율의 옆에서 조용히 걸었다. 검은 실은 아직 손목에 남아 있었지만, 조금 느슨해져 있었다.

"저 때문에 괜찮으세요?"

재온이 물었다.

서율은 잠시 생각했다.

괜찮지 않았다.

팀장은 화가 났을 것이고, 백련서는 그녀를 눈여겨봤을 것이고, 천라문이라는 이상한 문파는 이제 서율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 배운 것이 있었다.

괜찮다는 말은 너무 쉽게 사람을 가둔다.

그래서 서율은 솔직하게 말했다.

"괜찮진 않은데, 같이 먹으면 덜 망할 것 같아요."

재온이 작게 웃었다.

공덕장이 두 사람 사이에 금빛 문구를 띄웠다.

[문파명 입력 대기]

서율은 걸음을 멈췄다.

"문파명?"

류하진이 뒤에서 말했다.

"정해야 열려."

서율은 하늘을 보았다.

거창한 이름은 싫었다. 사람을 부추기는 이름도 싫었다. 강해지라고 소리치는 이름은 더 싫었다.

그녀는 천천히 입력했다.

무해문.

공덕장이 울렸다.

[무해문 임시 개설]

[첫 제자 후보 등록]

[다음 수행: 한 사람을 콘텐츠로 만들지 않고 지키기]

서율은 웃었다.

오늘도 수선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