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 8클래스 마법사는 연기기 외문제자가 되었다
4화. 비겁함은 전략입니다
적화문 비무까지 칠 일. 선우혁은 약한 외문제자들에게 강해지는 법이 아니라, 상대가 이기기 귀찮아지는 법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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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허문 외문제자들은 새벽에 모였다.
원래라면 그 시간에는 자는 척을 하거나, 수련하는 척을 하거나, 배고픈 척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적화문과의 비무가 칠 일 뒤로 잡힌 뒤, 모두가 갑자기 종문을 사랑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광산을 싫어하게 되었다.
사랑과 공포는 종종 비슷한 얼굴을 한다. 선우혁은 그 사실을 잘 알았다. 전생의 왕국군도 마왕을 사랑해서 싸운 것이 아니라, 마왕에게 잡아먹히기 싫어서 싸웠다. 결과만 놓고 보면 비슷했다.
그는 훈련장 중앙에 섰다.
손에는 목검이 아니라 낡은 붓이 들려 있었다. 어쩌다 보니 지휘봉처럼 보였다. 대마법사 시절에도 지팡이를 들고 전장을 지휘했으니, 아주 틀린 모양은 아니었다. 다만 그때 지팡이는 고대룡의 뼈였고, 지금 붓은 털이 세 가닥 빠져 있었다.
낙폭이 심했다.
유설하는 훈련장 한쪽에 서 있었다. 남궁린은 검을 품에 안고 있었다. 당소미는 약상자 옆에 앉아 있었다. 백하령은 산문 밖 마차에서 접선을 펼친 채 보고 있었다.
선우혁은 외문제자들을 둘러보았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강해지지 않을 겁니다.”
첫 문장부터 분위기가 죽었다.
좋다.
기대치를 낮추면 교육이 쉬워진다.
조문기가 손을 들었다.
발등 붕대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 붕대는 이제 그의 성격 일부처럼 보였다.
“그럼 왜 모인 거냐?”
선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강해지는 대신, 귀찮아질 겁니다.”
외문제자들이 서로를 보았다. 귀찮아진다. 무공 경지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청허문답기는 했다.
선우혁은 바닥에 선을 그었다.
“강한 상대는 자신이 이긴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곧장 들어옵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더럽힐 겁니다.”
남궁린은 말끝보다 먼저 발끝을 움직였다.
“검수의 길이 아니다.”
“맞습니다.”
“당당히 인정하지 마라.”
“하지만 남궁 소저는 검수고, 저분들은 광산 예정자입니다.”
외문제자 몇 명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은 훌륭한 설득 도구다.
선우혁은 붓으로 세 칸을 그었다.
“첫째. 발을 봅니다. 둘째. 숨을 끊습니다. 셋째. 상대가 화나게 만듭니다.”
유설하가 조용히 물었다.
“세 번째는 왜?”
“화난 사람은 직선이 됩니다.”
남궁린이 미간을 찌푸렸다.
“직선이 나쁘다는 뜻인가?”
“좋은 직선은 검법이고, 나쁜 직선은 함정에 빠지는 길입니다.”
그녀는 반박하려다 멈췄다.
정직한 사람에게는 예외를 붙여 주면 잠시 멈춘다. 선우혁은 새 기술을 얻은 기분이었다.
첫 훈련은 발 보기였다.
외문제자 둘을 세워 놓고, 서로의 검이 아니라 발끝만 보게 했다. 처음에는 다들 어색해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날아오는 칼을 본다. 하지만 칼은 손보다 늦고, 손은 어깨보다 늦고, 어깨는 발보다 늦다.
전장에서 거대한 주문을 준비할 때, 카일은 늘 발을 봤다.
누가 도망칠지.
누가 찌를지.
누가 배신할지.
마지막은 틀렸다. 용사의 발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아주 안정적으로 다가와 그의 가슴을 찔렀다. 선우혁은 그 기억을 밀어냈다.
지금은 청허문 훈련장이다.
마왕성은 아니다.
조문기가 상대의 발을 보다가 말했다.
“이게 정말 도움이 되나?”
“사형은 제 발등이 왜 다쳤는지 아직 기억 안 납니까?”
조문기의 얼굴이 굳었다.
다른 외문제자들이 조용히 그의 발등을 보았다.
훌륭한 교보재였다.
당소미가 약상자 위에 턱을 괴고 말했다.
“저 발등으로 수업료 받아도 되겠네.”
조문기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당소미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돈을 받을 사람의 담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두 번째 훈련은 숨 끊기였다.
강한 사람도 숨은 쉰다. 아주 강한 사람은 조금 다르게 쉬지만, 그래도 쉰다. 검을 휘두르기 전, 발을 내딛기 전, 몸의 힘이 모이는 순간. 그때 아주 작은 틈이 생긴다.
선우혁은 그 틈을 외문제자들에게 가르쳤다.
“상대가 들이마실 때 빠지고, 내쉴 때 붙습니다.”
외문제자 하나가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가슴을 보세요.”
남궁린은 눈빛으로 대련장의 거리를 재었다.
“상대의 검을 봐야 한다.”
“검만 보면 맞습니다.”
“검을 안 보면 베인다.”
“검을 너무 보면 속습니다.”
남궁린은 답답하다는 얼굴이었다. 선우혁은 이해했다. 그녀에게 검은 길이고, 원칙이고, 가문이었다. 그 길에서 옆을 보라는 말은 거의 모욕처럼 들릴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직접 시범을 보였다.
상대는 조문기였다. 조문기는 또 앞으로 나왔다. 정말 성실하게 실험체가 되어 주는 사람이다.
조문기가 목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선우혁은 검을 보지 않았다.
조문기의 어깨와 가슴을 봤다.
숨이 들어가는 순간, 한 발 물러섰다.
숨이 나오는 순간, 목검 손잡이를 톡 쳤다.
조문기의 목검이 흔들렸다.
선우혁도 휘청했다.
“보셨죠?”
그는 벽을 잡으며 말했다.
“이론은 좋습니다. 몸이 문제지.”
세 번째 훈련은 분노 유도였다.
유설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하지 마.”
“왜요?”
“너는 이미 충분히 잘해.”
당소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능 있어.”
남궁린까지 말했다.
“그건 인정한다.”
세 명이 동시에 인정한 첫 재능이 분노 유도라니. 선우혁은 가슴이 조금 아팠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전생에도 그는 적 마법사들을 화나게 하는 데 소질이 있었다. 물론 아군도 자주 화났다.
교육은 간단했다.
상대가 자랑하는 것을 정면으로 건드리지 말고, 아주 살짝 비틀어라. 검이 빠른 사람에게 “빠르긴 한데 발이 먼저 가네요”라고 말한다. 힘이 센 사람에게 “힘은 좋은데 땅이 더 아파 보입니다”라고 말한다.
외문제자들이 받아 적으려 했다.
“적지 마세요.”
선우혁은 붓 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왜요?”
“적화문에게 들키면 그냥 욕설집입니다.”
백하령이 멀리서 웃음을 참는 듯 접선을 입가에 댔다.
그녀의 호위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훌륭한 직업 정신이었다.
남궁린은 팔짱을 꼈다.
“검을 모욕하는 말은 쓰지 마라.”
선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검수만 모욕하겠습니다.”
“그것도 하지 마라.”
요구 조건이 많았다.
훈련 첫날 오후, 외문제자들은 이미 지쳐 있었다.
강해지지 않는 훈련인데 왜 힘든지 다들 이해하지 못했다. 선우혁은 이해했다. 약한 사람이 약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도 체력이 든다. 특히 자존심을 접는 동작은 근육보다 더 많이 아프다.
당소미는 쓰러진 제자들에게 약을 나누어 주었다.
무료는 아니었다.
“오늘은 종문 공동 비용으로 처리해.”
목운 장로가 지나가다 말했다.
당소미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요?”
목운 장로는 자기 말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뒤늦게 깨달은 얼굴이 됐다.
“적당히.”
“적당히가 제일 비싸요.”
목운 장로는 바로 후회했다.
선우혁은 그 장면을 보며 교훈을 얻었다. 계약 문구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전생의 악마 계약서도 대체로 그랬다. 인간 계약서가 더 무서운 경우도 많았지만.
유설하는 선우혁에게 물주머니를 건넸다.
“너도 쉬어.”
“저는 아직 괜찮습니다.”
그 순간 손목의 네 번째 별점이 찌릿했다.
선우혁은 웃으며 손목을 소매 안으로 숨겼다.
유설하가 그걸 봤다.
“거짓말.”
역시 봤다.
그녀의 눈은 너무 성실했다.
네 번째 별점은 안정되지 않았다.
오른쪽 옆구리, 왼쪽 허리, 등 아래의 세 별점은 이제 어느 정도 말을 들었다. 물론 말만 들을 뿐, 기분이 나쁘면 바로 통증으로 항의했다. 손목의 새 불씨는 더 심했다. 영기가 지나가면 간지럽고, 무리하면 뜨겁고, 가만히 두면 존재감을 주장했다.
사람으로 치면 관심 많은 막내였다.
선우혁은 약당 구석에 앉아 손목 위에 냉월초 즙을 발랐다.
당소미는 약상자 잠금쇠를 딸깍 닫았다.
“이건 자산이 아니라 염증에 가까워.”
“염증도 잘 쓰면 자산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런 말 하면 환자들 따라 해.”
“저도 환자입니다.”
“그래서 더 하지 마.”
그녀는 손목을 누르며 미간을 찌푸렸다.
“영기가 여기 왜 모여?”
“제가 묻고 싶습니다.”
“네가 만든 거잖아.”
“처음 만든 사람도 사용설명서를 다 아는 건 아닙니다.”
당소미는 그 말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너 진짜 오래 못 살 타입이야.”
선우혁은 잠깐 웃었다.
“한 번은 오래 살았습니다.”
당소미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바로 말을 바꿨다.
“오래 산 기분이 들었습니다.”
위험했다.
요즘 말이 자꾸 기억보다 먼저 나간다.
밤이 되자 백하령이 찾아왔다.
그녀는 늘처럼 조용히 나타났다. 마차 바퀴 소리도, 호위의 발걸음도 크지 않았다. 돈 많은 사람들은 소리도 잘 관리하는 모양이었다.
백하령은 작은 비단 주머니를 내밀었다.
“추가 투자예요.”
선우혁은 주머니를 받기 전에 물었다.
“이자율은요?”
백하령은 웃었다.
“선우 공자는 참 낭만이 없네요.”
“낭만은 이자율을 숨길 때 자주 쓰입니다.”
당소미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백하령은 주머니를 열었다. 안에는 미세한 은빛 모래와 깨끗한 백지부, 그리고 작은 청색 영석 조각이 들어 있었다.
“비무장 바닥에 쓸 수 있는 미세 영석분이에요. 발 밑 흐름을 민감하게 잡을 수 있죠.”
선우혁의 눈이 빛났다.
“좋은 물건이군요.”
“비싸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역시.
세상에는 공짜 점심도 없고, 공짜 영석분도 없다.
백하령은 접선을 접었다.
“비무가 끝난 뒤, 선우 공자가 만든 외문 훈련법의 독점 유통권을 백운상단이 갖는 걸로.”
선우혁은 잠깐 생각했다.
훈련법도 팔 수 있나?
이 세계는 생각보다 넓었다.
남궁린은 그 계약을 반대했다.
“검의 길을 상품으로 팔 수는 없다.”
백하령은 손끝으로 접선의 뼈대를 톡 두드렸다.
“이건 검의 길이 아니라 광산 회피 과정이에요.”
남궁린이 멈칫했다.
정확한 분류는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
유설하는 선우혁을 보았다.
“정말 팔 생각이야?”
“훈련법 전체는 안 됩니다. 외문제자들이 살아남는 데 필요하니까요.”
백하령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럼?”
“기초형은 청허문 내부. 보급형은 상단. 고급형은 저작권자 협의.”
“저작권자?”
“만든 사람 권리입니다.”
당소미가 바로 물었다.
“약값 먼저 빠져?”
“왜 모든 권리가 약값으로 시작합니까?”
“네 몸으로 만든 거잖아. 네 몸은 내 약으로 버티고.”
놀랍게도 논리 구조가 있었다.
백하령은 즐거운 얼굴이었다.
“좋아요. 선우 공자는 기술을 만들고, 당 소저는 비용을 붙이고, 저는 시장을 열죠.”
남궁린이 작게 중얼거렸다.
“검의 길이 점점 멀어진다.”
선우혁은 그녀를 위로했다.
“검은 아직 소저에게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참 정직한 위로 수용이었다.
둘째 날 훈련은 더 구체적이었다.
선우혁은 비무장을 가정해 바닥에 네모난 선을 그었다. 실제 비무장은 적화문과 백운상단이 함께 준비할 예정이라 했다. 바닥은 평평하고, 관중석은 낮고, 도망칠 곳은 적을 것이다.
도망칠 곳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그는 영석분을 아주 조금 뿌렸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얇게. 바닥의 기운 흐름이 달라졌다. 외문제자들이 움직일 때 발밑에 작은 푸른 흔적이 생겼다.
“이걸 보고 상대의 다음 발을 읽습니다.”
외문제자 하나가 놀랐다.
“이건 진법 아닙니까?”
“기초 보조진입니다.”
“진법이면 반칙 아닌가요?”
선우혁은 상대의 빈틈을 먼저 훑었다.
“비무장 바닥의 먼지가 우연히 영기에 반응하는 겁니다.”
유설하가 이마를 짚었다.
남궁린은 하늘을 보았다.
당소미는 감탄했다.
“말이 된다.”
“당 소저가 인정해 주니 좀 불안하군요.”
백하령은 접선 뒤에서 웃었다.
“상품성이 있네요.”
외문제자들은 서로를 보았다.
이제 그들도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강해지는 것보다 귀찮아지는 것이 빠르다는 사실을.
조문기는 가장 빠르게 적응했다.
그 사실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선우혁도 조금 놀랐다. 조문기는 성격이 나빴지만, 성격이 나쁘다는 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법을 이미 안다는 뜻이기도 했다. 방향만 조금 바꾸면 훌륭한 전술 자산이 된다.
조문기는 상대의 발을 보고, 숨을 끊고, 적당히 거슬리는 말을 던졌다.
“너 지금 오른발에 힘 들어갔다.”
상대가 움찔했다.
“아니면 말고.”
상대가 화났다.
조문기는 그 틈에 빠졌다.
선우혁은 박수를 쳤다.
“좋습니다. 재능이 있군요.”
조문기는 뿌듯해하다가 바로 얼굴을 굳혔다.
“칭찬 맞나?”
“대체로요.”
남궁린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저건 검수의 방식이 아니다.”
유설하는 검집 끝으로 바닥을 가볍게 눌렀다.
“하지만 살아남는 방식이긴 해.”
남궁린은 유설하를 보았다.
“너까지?”
유설하는 담담했다.
“검수전은 검수전이고, 외문전은 외문전이야.”
그 말은 남궁린에게 꽤 충격이었는지, 그녀는 한참 검집만 내려다보았다.
선우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좋다.
청허문은 조금씩 현실에 오염되고 있다.
문제는 훈련이 잘될수록 소문도 커진다는 점이었다.
셋째 날 아침, 산문 밖에 구경꾼들이 생겼다. 근처 마을 사람들, 떠돌이 수련자, 백운상단 하급 상인들, 그리고 신분을 숨긴 다른 종문 제자들까지. 망해 가던 청허문이 갑자기 관심의 중심이 된 것이다.
관심은 기회이자 위험이다.
전생의 카일은 그걸 잘 알았다. 대마법사가 되면 모든 왕국이 선물을 보낸다. 그리고 선물 상자 안에는 종종 독, 감시 마법, 결혼 제안이 들어 있다. 셋 다 비슷하게 귀찮았다.
선우혁은 산문 밖을 보며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퍼졌군요.”
백하령이 대답했다.
“제가 조금 도왔어요.”
“왜요?”
“관심은 가격을 올리니까요.”
역시.
선우혁은 그녀를 믿지 않기로 다시 결심했다. 물론 이미 여러 번 결심했다. 결심은 자주 새로 해도 손해가 없다.
유설하는 눈썹 하나만 움직인 채 상대를 재었다.
“저 안에 적화문 눈도 있을 거야.”
“있겠죠.”
“괜찮아?”
선우혁은 웃었다.
“보고 따라 하면 좋죠.”
“왜?”
“겉만 보면 그냥 비겁해 보이거든요.”
당소미는 장부에 보이지 않는 값을 먼저 계산했다.
“속도 비겁하잖아.”
“구조적으로 다릅니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날 밤, 첫 방해 공작이 들어왔다.
방해꾼은 영리했다. 정문으로 오지 않았고, 담을 넘지도 않았다. 약당 뒤편 물길을 따라 들어왔다. 청허문은 낡았고, 물길은 오래됐고, 야간 경계는 배고팠다.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다.
다만 하나를 몰랐다.
선우혁은 물길을 가장 먼저 의심했다.
전생의 암살자들도 자주 물길로 들어왔다. 사람은 정문을 지키고, 마법사는 천장을 지키고, 왕은 자기 침실만 지킨다. 그러면 물길이 남는다. 인간은 생각보다 반복적이다.
물길 옆에는 작은 청진부가 붙어 있었다.
청진부가 푸르게 떨렸다.
선우혁은 약당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소미가 물었다.
“왜?”
“손님입니다.”
“밤손님?”
“돈 안 내는 쪽.”
당소미의 표정이 바로 차가워졌다.
그녀에게 침입자는 종문 문제보다 결제 문제에 가까웠다. 어쨌든 좋은 반응이었다.
유설하는 이미 검을 잡고 있었다. 남궁린도 청월검을 들었다.
선우혁은 손목을 만졌다.
네 번째 별점이 뜨겁게 반응했다.
귀찮은 밤이 시작됐다.
침입자는 셋이었다.
검은 야행복, 붉은 실로 묶은 손목, 허리춤의 작은 쇠침. 적화문이라고 크게 써 붙인 건 아니었지만, 세상에는 굳이 이름표가 필요 없는 악취가 있다.
그들은 약당 뒤편 창고로 향했다.
목표는 영석분과 백지부였다.
백하령의 투자품.
선우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훔쳐 갈 물건을 정확히 아는 걸 보니, 구경꾼 중에 눈이 있었거나 백운상단 쪽 정보가 샜다. 어느 쪽이든 나중에 백하령이 웃으며 누군가를 말려 죽일 것이다.
지금은 당장 막는 게 먼저다.
유설하가 먼저 움직였다. 검이 밤공기를 가르며 첫 침입자의 길을 막았다. 남궁린은 두 번째를 정면으로 눌렀다. 청월검이 푸르게 울었다.
세 번째가 창고로 뛰었다.
선우혁은 따라가려다 바로 포기했다.
몸이 느리다.
그래서 몸 대신 바닥을 썼다.
그는 미리 붙여 둔 발판부를 발동했다. 창고 앞 돌바닥의 영석분이 푸르게 빛났다. 세 번째 침입자의 발이 아주 잠깐 미끄러졌다.
크게 넘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한 박자 늦었다.
당소미가 약병을 던졌다.
병이 침입자의 이마에 맞았다.
“약값 추가.”
전투 구호치고는 참신했다.
침입자들은 강했다.
적어도 청허문 외문제자보다는 강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있었다. 바닥은 이상하게 미끄러웠고, 돌 틈에서 푸른 빛이 튀었고, 갑자기 약병이 날아왔다. 무엇보다 선우혁이 계속 말을 걸었다.
“오른쪽 발이 무겁습니다.”
침입자가 움찔했다.
“아, 왼쪽인가?”
침입자가 화났다.
“지금 그걸 신경 쓰면 늦습니다.”
정말 늦었다. 유설하의 검집이 그의 손목을 쳤다. 쇠침이 바닥에 떨어졌다.
남궁린은 두 번째 침입자를 몰아붙였다. 그녀의 검은 여전히 정직했다. 하지만 청월검의 우회선 덕분에 붉은 기운이 올라올 때마다 푸른 빛이 한 번씩 눌렀다.
선우혁은 그걸 보고 안도했다.
검이 아직 버틴다.
남궁린도 아주 조금 달라졌다. 정면으로만 밀지 않고, 한 번 멈추고, 상대 발을 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봤다.
그녀가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발을 보니 더 잘 보인다.”
선우혁은 웃었다.
“축하합니다. 타락의 첫걸음입니다.”
“말하지 마라.”
그래도 검은 더 정확해졌다.
세 번째 침입자는 도망치려 했다.
방향은 물길. 들어온 곳으로 나가려는 판단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선우혁은 이미 그곳에 가장 싼 부적을 붙여 두었다. 가장 싼 부적은 대체로 가장 무시당한다. 그래서 좋다.
침입자가 물길 입구에 발을 올리는 순간, 부적이 발동했다.
청결부.
원래는 먼지를 털어 내는 부적이다. 선우혁은 그 방향을 살짝 비틀어 바닥의 물기를 한쪽으로 몰았다. 물길 입구가 갑자기 미끄러운 진흙처럼 변했다.
침입자가 넘어졌다.
꽤 멋없게.
외문제자 몇 명이 뒤늦게 달려와 그를 덮쳤다. 이들은 어제 배운 그대로 움직였다. 강하게 제압하지 않았다. 귀찮게 붙잡았다. 팔을 잡고, 다리를 걸고, 소매를 밟고, 한 명은 정말로 모래를 뿌렸다.
남궁린의 얼굴이 무너졌다.
“저건 너무하다.”
유설하는 눈썹 하나만 움직인 채 상대를 재었다.
“하지만 잡았어.”
남궁린은 침묵했다.
현실은 오늘도 검도를 조금 이겼다.
선우혁은 벽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손목의 네 번째 별점이 뜨거웠다. 방금 부적들을 연결할 때, 그 불씨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통증은 있었지만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자산인가.
염증인가.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쓸 수는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당소미가 화낼 것이다.
붙잡힌 침입자들의 허리춤에서 붉은 쇠침이 나왔다.
검은 쇠못보다 작고, 얇고, 더 은밀했다. 표면에는 붉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 글자도 문양도 아닌, 뒤틀린 회로 같은 흔적. 선우혁은 그것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이건 부수는 물건이 아니다.
오염시키는 물건이다.
영석분에 섞거나 백지부에 찔러 넣으면, 비무 당일 보조진이 역으로 터졌을 것이다. 그러면 외문제자들은 자기 발판에 걸려 넘어지고, 청허문은 웃음거리가 된다.
아주 악질적이다.
그리고 익숙하다.
전생의 궁정 마법사들이 결투 전에 상대 지팡이에 미세 저주를 심던 방식과 닮았다. 같은 뿌리인지, 누군가 흉내 낸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선우혁은 쇠침을 천으로 감쌌다.
유설하가 물었다.
“알아?”
그는 잠깐 침묵했다.
“싫어하는 방식입니다.”
“그 말, 전에도 했어.”
“그랬습니까?”
“검은 쇠못 때도.”
유설하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선우혁은 웃어 보였다.
“싫어하는 게 많은 편이라.”
그녀는 믿지 않았다.
당연했다.
점점 거짓말의 재고가 줄어들고 있었다.
백하령은 새벽 전에 도착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묻자, 그녀는 웃기만 했다. 정보상에게 정보원을 묻는 건 약사에게 장부를 태우라는 말과 비슷하다. 대체로 안 된다.
그녀는 붙잡힌 침입자와 붉은 쇠침을 보았다.
“적화문이 너무 급했네요.”
“알고 있었습니까?”
선우혁이 물었다.
백하령은 접선을 접었다.
“의심했죠. 확신은 지금 생겼고요.”
“확신을 만들기 위해 저희 창고를 미끼로 쓴 건 아니겠죠?”
백하령의 미소가 아주 조금 깊어졌다.
대답이 늦었다.
선우혁은 한숨을 쉬었다.
“백 소저.”
“네.”
“동맹이라면 미끼 사용 전에 알려 주셔야 합니다.”
“거래처라면요?”
“수수료를 받습니다.”
백하령은 이번엔 진짜로 웃었다.
“좋아요. 이번 건 수수료를 드리죠.”
당소미는 장부에 보이지 않는 값을 먼저 계산했다.
“약값에서 빠져?”
“당 소저는 정말 한결같네요.”
“돈은 흔들리면 안 돼.”
남궁린은 그 대화를 듣고 머리를 짚었다.
“밤새 적을 잡고도 돈 이야긴가.”
유설하는 눈썹 하나만 움직인 채 상대를 재었다.
“청허문이니까.”
설명이 너무 정확했다.
침입자들은 말을 아꼈다.
입을 다물고 버티는 건 훈련된 사람의 태도다. 하지만 선우혁은 입을 열게 할 생각이 없었다. 말은 거짓말할 수 있다. 물건은 비교적 덜 한다. 물론 마법 물건은 가끔 더 지독하게 거짓말하지만, 그것도 읽는 법이 있다.
그는 붉은 쇠침을 청진부 위에 올렸다.
청진부가 바로 떨렸다.
방향은 산 아래가 아니었다.
서쪽.
적화문 본산 방향도 아니었다. 흑석광산 쪽도 아니었다. 서쪽 숲. 버려진 사당이 있는 곳이었다.
백하령은 접선을 반쯤 접고 웃음을 숨겼다.
“그쪽은 오래된 무연사예요.”
“무연사?”
“주인 없는 사당. 장문인이 비경 조사를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렀다는 기록이 있어요.”
목운 장로의 얼굴이 굳었다.
“그건 종문 내부 기록이다.”
백하령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서 비싸게 샀죠.”
목운 장로는 말을 잃었다.
선우혁은 서쪽을 보았다.
장문인.
비경.
검은 쇠못.
붉은 쇠침.
그리고 마나 냄새.
판이 생각보다 넓다.
귀찮다.
하지만 흥미롭다.
이 둘은 늘 같이 온다.
유설하는 무연사로 가자고 했다.
남궁린도 동의했다. 적의 흔적이 있다면 바로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 아주 남궁린다웠다. 당소미는 반대했다. 밤새 싸웠고, 환자도 있고, 약값도 정산해야 한다는 주장. 아주 당소미다웠다.
백하령은 웃으며 기다렸다. 어느 쪽이든 자신에게 정보가 남으니 급할 게 없다는 얼굴이었다.
선우혁은 결론을 냈다.
“지금은 안 갑니다.”
남궁린이 바로 물었다.
“왜?”
“저쪽이 우리를 끌어내고 싶어 할 가능성이 큽니다.”
“함정이라는 뜻인가?”
“함정이 아니어도 함정처럼 다루는 게 좋습니다.”
유설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무 전까지는 방어가 우선이야.”
남궁린은 못마땅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도 밤새 청월검을 쓰며 검의 한계를 느꼈다. 정면으로 달리는 것만으로는 닿지 않는 적이 있다.
선우혁은 붉은 쇠침을 작은 상자에 넣었다.
“무연사는 표시해 둡시다. 하지만 먼저 비무장 대비입니다.”
당소미는 소매에 묻은 약초 가루를 털었다.
“그리고 치료.”
“그건 조금 뒤에.”
“지금.”
그녀의 손이 선우혁의 손목을 잡았다.
아팠다.
당소미는 소매에 묻은 약초 가루를 털었다.
“열 올랐어.”
이번엔 변명하기 어려웠다.
선우혁은 강제로 누웠다.
대마법사였던 자가 외문 약당 침상에 눕는 일은 이제 익숙해질 법도 했다. 하지만 익숙해진다는 건 슬픈 일이다. 그는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이 세계의 천장은 왜 이렇게 자주 낡았을까.
당소미는 손목에 약포를 감았다.
“오늘은 수련 금지.”
“오늘은 이미 새벽입니다.”
“말장난 금지.”
“그럼 호흡만.”
“호흡은 살아 있으려고 하는 것만.”
유설하가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나도 동의.”
남궁린도 말했다.
“몸을 망치며 이기는 건 옳지 않다.”
백하령은 접선을 접고 말했다.
“투자 대상이 망가지면 곤란하죠.”
선우혁은 네 사람을 차례로 보았다.
약사.
감시자.
검수.
투자자.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걱정받을 수도 있구나. 그는 조금 웃었다.
“알겠습니다. 오늘은 가만히 있겠습니다.”
당소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
“최대한.”
네 사람이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믿음이 바닥이었다.
하지만 바닥도 기반이긴 하다.
가만히 있겠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선우혁은 실제로 침상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머릿속으로 진법을 돌렸다. 이건 가만히 있는 것에 포함된다. 적어도 몸은 가만히 있었다.
네 별점.
외문 보조진.
붉은 쇠침의 오염 회로.
적화문의 세 판 비무.
상대가 외문전에 자신을 지목한 이유는 뭘까. 그들은 선우혁의 몸이 약하다는 걸 안다. 동시에 그가 영맥과 검을 건드린다는 것도 안다. 제거하고 싶은가. 아니면 관찰하고 싶은가.
둘 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손목을 살짝 움직였다.
네 번째 별점이 작게 반응했다. 통증은 줄었고, 대신 아주 가는 흐름이 느껴졌다. 손목은 도구를 다루는 자리다. 붓, 부적, 검이 아니라 지팡이. 전생의 지팡이를 잡던 자리.
어쩌면 이 별점은 단순 저장점이 아니다.
출력점.
그는 눈을 떴다.
“아.”
당소미가 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 표정 하지 마.”
“무슨 표정입니까?”
“또 뭔가 하려는 표정.”
유설하가 문밖에서 말했다.
“나도 보여.”
남궁린도 덧붙였다.
“검수도 아니지만 보인다.”
선우혁은 억울했다.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들켰다.
그날 오후, 선우혁은 침상 위에서 수업을 했다.
이건 합의의 결과였다.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말은 한다. 당소미는 처음에 반대했지만, 선우혁이 움직이는 것보다는 말하는 게 덜 위험하다는 유설하의 판단에 결국 물러났다.
물론 당소미는 말값을 받을 수 있는지 잠깐 고민했다.
외문제자들은 약당 앞마당에 모였다.
선우혁은 창문을 열고 말했다.
“어젯밤 침입자 셋을 막은 건 누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외문제자들이 조용히 들었다.
“미리 깔아 둔 작은 불편함들이 겹쳐서 막은 겁니다. 적이 빠르고 강해도, 발이 미끄럽고, 길이 좁고, 눈앞에서 사람이 귀찮게 붙으면 늦습니다.”
조문기가 물었다.
“그러면 비무에서도 그렇게?”
“네. 비무장은 작고, 규칙은 많고, 시선은 많습니다. 아주 좋은 감옥입니다.”
남궁린이 창밖에서 말했다.
“비무장을 감옥이라 부르지 마라.”
“그럼 예쁜 감옥.”
“더 나쁘다.”
외문제자들이 웃었다.
분위기가 풀렸다.
이건 중요하다. 약한 사람은 두려움 때문에 굳는다. 웃음은 그 굳은 것을 조금 풀어 준다. 물론 너무 웃으면 맞지만, 그건 조절 문제다.
외문제자들은 다시 훈련했다.
이번에는 선우혁 없이도 움직였다. 유설하가 전체 자세를 잡아 주고, 남궁린이 검의 기본 선을 봐 주고, 당소미가 다친 사람을 빼냈다. 백하령의 호위는 조용히 구경하다가, 몇 번 발을 걸려 넘어질 뻔했다.
조문기는 훈련조 하나를 이끌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나름 잘했다는 점이다.
“너무 세게 막지 마. 네가 세면 이 훈련에 없겠냐?”
말투는 나빴지만 내용은 맞았다.
선우혁은 창문 너머로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요.”
당소미가 물었다.
“뭐가?”
“저 사람, 나쁜 성격을 생산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너도?”
“저는 원래 생산적입니다.”
당소미는 대답하지 않고 약탕을 내밀었다.
냄새가 지독했다.
선우혁은 얼굴을 찡그렸다.
“이걸 마시면 낫습니까?”
“아니. 네가 얌전해져.”
“독 아닙니까?”
“맛은 비슷해.”
그는 마셨다.
전생의 드래곤 독보다 덜했지만, 감정적으로는 더 치명적이었다.
저녁 무렵, 무연사에서 답장이 왔다.
정확히는 답장이 아니라 물건이었다. 산문 앞에 작은 검은 천 조각이 묶인 나뭇가지가 꽂혀 있었다. 누구도 오는 걸 보지 못했다. 가지 끝에는 붉은 쇠침과 같은 기운이 아주 약하게 남아 있었다.
도발.
혹은 초대.
남궁린은 바로 검을 잡았다.
“가자.”
유설하도 표정이 굳었다.
선우혁은 침상에서 내려오려다 당소미의 눈빛을 보고 다시 앉았다.
“안 갑니다.”
남궁린이 물었다.
“또 함정이라서?”
“네.”
“언제까지 피할 건가?”
“비무가 끝날 때까지.”
남궁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선우혁은 말을 이었다.
“지금 저쪽은 우리를 흩어 놓고 싶어 합니다. 무연사로 가면 비무 준비가 흔들리고, 산문 경계가 비고, 제 손목은 당 소저에게 잘립니다.”
당소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은 확실해.”
백하령이 천 조각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무시하면 또 움직일 거예요.”
“그래서 미끼를 던집니다.”
모두가 선우혁을 보았다.
그는 웃었다.
“상대가 우리를 끌어내고 싶다면, 끌려 나가는 척만 하면 됩니다.”
남궁린은 한숨을 쉬었다.
“또 비겁한가?”
“이번엔 신중하다고 해 주시죠.”
미끼는 조문기였다.
조문기는 당연히 반대했다.
“왜 나냐?”
선우혁은 진지하게 답했다.
“사형은 화난 표정이 자연스럽습니다.”
“칭찬이냐?”
“임무 적합성 평가입니다.”
조문기는 더 화났다. 아주 훌륭했다.
계획은 간단했다. 조문기가 몇몇 외문제자와 함께 산문 근처에서 일부러 무연사 이야기를 크게 떠든다. 당장 밤에 몰래 갈 것처럼. 실제로는 가지 않는다. 대신 물길과 담장, 약당 뒤편에 청진부와 발판부를 더 깔아 둔다.
상대가 정말 감시 중이라면 반응할 것이다.
남궁린은 여전히 못마땅했다.
“적을 속이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아군을 미끼로 쓰는 건.”
“조 사형에게는 위험한 역할을 맡기지 않습니다. 소리만 지르면 됩니다.”
조문기는 목검을 어색하게 고쳐 쥐었다.
“그건 잘하지.”
모두가 조용해졌다.
그는 스스로도 깨달은 듯 얼굴이 굳었다.
선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이해가 빠른 건 장점입니다.”
당소미는 소매에 묻은 약초 가루를 털었다.
“너도 좀 해.”
아픈 말이었다.
그날 밤, 두 번째 침입자는 오지 않았다.
대신 작은 붉은 종이학 하나가 날아왔다. 종이학은 산문 위를 빙빙 돌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글자는 없었다. 대신 접힌 안쪽에 붉은 쇠침 가루가 발라져 있었다.
선우혁은 직접 만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배웠다.
그는 긴 집게로 종이학을 집어 청진부 위에 올렸다. 청진부가 서쪽을 가리키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 북쪽. 다시 서쪽. 다시 북쪽.
“둘이군요.”
유설하가 물었다.
“둘?”
“무연사와 적화문 본산. 신호가 두 방향으로 갈라집니다.”
백하령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중간 전달자가 있어요.”
“아마도.”
남궁린은 말끝보다 먼저 발끝을 움직였다.
“그럼 무연사에 있는 자가 적화문 소속이 아닐 수도 있나?”
선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은 적화문도 이용당하고 있거나.”
그 말에 공기가 무거워졌다.
적이 하나라고 생각하면 쉽다. 적이 둘이거나, 적도 누군가의 말이라면 귀찮아진다. 선우혁은 귀찮은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귀찮은 것만 그의 앞에 왔다.
손목의 네 번째 별점이 다시 간지러웠다.
마치 빨리 풀어 보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주제넘은 별점이었다.
연비아는 무연사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사당은 오래전에 버려졌다. 기와는 깨졌고, 문은 반쯤 떨어졌고, 신상은 얼굴이 없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오래된 진법이 잠들어 있었다.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죽지 않은 진법.
연비아는 붉은 종이학의 재를 손끝에 묻혔다.
“잘 피하네.”
그녀는 웃었다.
“마법사답게.”
그 단어는 다시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마치 오래전에 배운 말처럼.
그녀의 뒤편 어둠 속에서 누군가 물었다.
“청허문을 건드릴 겁니까?”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적화문 사자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연비아는 고개를 젓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아직은.”
“그 외문제자가 위험합니까?”
“위험한지 보려면 더 살려 둬야지.”
연비아는 산 위 청허문을 보았다.
새벽 전 어둠 속에서도 푸른 진법 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리고 재미있잖아.”
그녀의 붉은 눈이 가늘게 웃었다.
재미있다는 말은 때때로 가장 위험한 이유가 된다.
넷째 날 아침, 선우혁은 다시 훈련장에 섰다.
당소미는 반대했다. 유설하도 반대했다. 남궁린은 반대하진 않았지만 검집으로 길을 막았다. 백하령은 “투자 대상 관리 차원에서 반대”라고 말했다. 선우혁은 네 명의 반대를 모두 들은 뒤 말했다.
“오늘은 서 있기만 하겠습니다.”
당소미는 약병을 흔들며 눈을 가늘게 떴다.
“믿을 수 없어.”
“정말입니다.”
그는 훈련장 중앙에 작은 의자를 놓았다.
“앉아서 지휘하겠습니다.”
당소미는 잠깐 생각했다.
“그건 조금 낫네.”
남궁린은 말끝보다 먼저 발끝을 움직였다.
“전장의 지휘자가 앉아 있는 건 이상하다.”
선우혁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저는 전장 지휘자가 아니라 몸 약한 외문제자입니다.”
유설하는 검집 끝으로 바닥을 가볍게 눌렀다.
“그걸 필요할 때만 기억하네.”
정확했다.
훈련은 더 촘촘해졌다. 발판부, 청진부, 모래, 호흡, 위치, 분노 유도. 외문제자들은 아직 약했다. 하지만 어제보다 덜 당황했다. 그 차이는 작지만 중요했다.
약한 사람이 덜 당황하면, 강한 사람은 조금 더 귀찮아진다.
그게 시작이다.
훈련이 끝날 무렵, 조문기가 선우혁에게 다가왔다.
그는 한참 망설이다가 말했다.
“네 방식.”
“네.”
“싫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쓸 만하다.”
선우혁은 잠깐 조문기를 보았다. 조문기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사람은 가끔 아주 불편한 방식으로 성장한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칭찬 아니다.”
“그럼 기록만 해 두겠습니다.”
조문기는 고개를 돌렸다. 발등 붕대는 이제 거의 풀려 있었다.
훈련장 너머에서 유설하가 그 장면을 보았다. 남궁린은 여전히 못마땅했지만, 외문제자들의 움직임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당소미는 약값 장부를 덮었다. 백하령은 마차 안에서 새로운 계약서를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선우혁은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네 번째 별점이 작게 빛났다.
아직 이름 없는 불씨.
그는 그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좋아.”
마나도 없고, 돈도 없고, 적은 많다.
하지만 청허문은 이제 조금 귀찮아졌다.
그리고 귀찮은 것은 쉽게 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