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 8클래스 마법사는 연기기 외문제자가 되었다
1화. 마나가 없는데요?
대마법사의 머리는 멀쩡한데 몸은 망했다. 그래도 망한 몸에는 망한 몸대로 쓸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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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의 심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카일은 그 사실이 조금 억울했다. 대륙을 삼백 년 동안 괴롭힌 존재라면 최소한 성문만 한 심장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검은 왕좌 위에 남은 것은 주먹 두 개를 합친 정도의 검붉은 덩어리였다. 8클래스 대마법사의 마지막 화염이 그 위에서 아직 타고 있었다.
용사는 무릎을 꿇고 웃었다. 성녀는 울었다. 검성은 칼을 내려놓았다. 카일은 지팡이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끝났군.”
그는 손끝의 긴장을 천천히 풀었다.
그 순간, 용사의 검이 그의 가슴을 뚫었다.
카일은 아래를 보았다. 자기 로브에 난 구멍이 너무 깔끔했다. 아, 이건 수선비가 많이 나오겠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다음에야 통증이 왔다.
“왜?”
용사는 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안한 얼굴로 사람을 찌르는 재주가 아주 훌륭했다.
“네 마법이 너무 위험해.”
카일은 피를 토하며 웃었다.
“그걸 이제 알았다고?”
배신의 이유는 길지 않았다.
왕국은 마왕보다 8클래스 마법사를 더 무서워했다. 용사는 명령을 받았다. 성녀는 눈을 돌렸다. 검성은 칼을 다시 들지 않았다. 아주 깔끔한 결말이었다. 카일만 빼고 모두가 미리 알고 있던 결말.
“대륙을 위해서야.”
용사는 피 묻은 칼끝을 아주 조금 낮췄다.
카일은 그 문장을 싫어했다. 대륙을 위한다는 말은 늘 누군가의 장례식에서 가장 값싸게 쓰였다. 그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심장에 검이 박힌 상태로는 주문을 완성할 수 없었다. 정상적인 마법사라면 그랬다.
하지만 카일은 정상적인 마법사가 아니었다. 정상적인 마법사는 마왕성 천장에 자기 피로 9서클 미완성 회귀식을 몰래 새기지 않는다.
“그러니까 말이지.”
카일은 피 묻은 입꼬리를 올렸다.
“마법사를 죽일 때는 바닥도 확인했어야지.”
천장이 빛났다. 용사의 얼굴이 굳었다. 성녀가 비명을 질렀다.
카일은 만족했다. 마지막 표정으로 보기엔 꽤 괜찮았다.
그리고 세계가 뒤집혔다.
선우혁은 눈을 떴다.
그는 먼저 천장을 보았다. 천장이 있었다. 다행이었다. 천장이 없으면 보통 죽은 뒤거나, 마왕성 잔해에 깔린 뒤거나, 드래곤 뱃속이었다. 셋 다 별로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문제는 천장이 너무 낡았다는 점이었다. 나무 들보에는 곰팡이가 피었고, 구멍 난 창지 사이로 바람이 들어왔다. 침상은 딱딱했다. 이불은 얇았다. 방 안에는 약 냄새와 땀 냄새가 섞여 있었다.
“누구 집이 이렇게 가난해.”
그는 일어나려다 그대로 침상에 다시 떨어졌다.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갈비뼈는 두 대쯤 금이 간 것 같고, 왼쪽 어깨는 빠졌다가 대충 끼워진 느낌이었다. 배꼽 아래는 텅 빈 듯 아팠다.
카일은 눈을 감고 자기 몸을 진단하려 했다.
마나 감응.
침묵.
마나 회로 점검.
침묵.
기초 보호막.
완전한 침묵.
그는 천장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마나가 없는데요?”
마나는 없었다.
그건 술이 없는 여관보다 심각한 문제였다. 검이 없는 검사는 주먹이라도 쓸 수 있다. 돈이 없는 귀족은 일단 거짓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마나가 없는 마법사는? 그건 그냥 말을 길게 하는 민간인이다.
선우혁은 심호흡을 했다.
아니, 카일은 심호흡을 했다. 아니, 둘 다였다. 머릿속에 낯선 기억이 밀려왔다. 이름은 선우혁. 나이는 열여덟. 청허문 외문제자. 수련 경지는 연기기 2성. 며칠 전 외문 사형들에게 맞고 쓰러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약했다.
카일은 그 기억을 훑다가 이마를 짚었다.
“연기기 2성이라.”
좋게 말하면 시작 단계.
나쁘게 말하면 바닥.
정확히 말하면 바닥 아래에 깔린 먼지.
그는 배꼽 아래를 더듬었다. 이 세계 사람들은 그곳을 단전이라 불렀다. 기억 속의 선우혁은 그 단전에 영기를 모아 수련했다. 문제는 지금 그 단전이 찢어진 주머니처럼 새고 있다는 점이었다.
“좋아.”
선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몸도 망했고, 재능도 망했고, 집도 망했군. 아주 균형 잡혔어.”
방문이 벌컥 열렸다.
키 큰 소녀가 문가에 서 있었다. 흰 수련복은 낡았지만 깨끗했고, 허리에는 푸른 끈이 매여 있었다. 얼굴은 차가웠다. 눈매도 차가웠다. 말투는 더 차가울 것 같았다.
“살아 있었네.”
예상보다 더 차가웠다.
선우혁은 기억을 뒤졌다. 유설하. 청허문 내문 제자 후보. 외문에서 보기엔 하늘 위 사람이고, 내문에서 보기엔 아직 문턱 아래 사람. 실력은 좋고, 성격은 정직하게 까다롭다.
“죽었으면 문상이라도 오려고 했습니까?”
유설하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
“말은 멀쩡하네.”
“몸이 일을 못 하니 입이라도 해야죠.”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와 그의 이마에 손등을 댔다. 선우혁은 본능적으로 방어 마법을 떠올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한 번 더 절망했다.
유설하는 그의 배 아래를 보고 미간을 좁혔다.
“단전이 더 나빠졌어. 퇴출 시험은 못 버틸 거야.”
“좋은 소식은 없습니까?”
“있어.”
“뭔데요?”
“아직 시험까지 사흘 남았어.”
선우혁은 잠깐 생각했다.
“그게 좋은 소식이면 청허문은 진짜 망했군요.”
청허문은 정말 망해 가고 있었다.
선우혁의 기억 속 청허문은 한때 삼백 리 안에서 이름을 날리던 종문이었다. 지금은 이름만 남았다. 영맥은 말라 갔고, 장문인은 세 해 전 비경 조사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내문 장로들은 서로 책임을 미뤘고, 외문제자들은 밥보다 빚을 더 자주 씹었다.
이번 퇴출 시험도 그 결과였다. 외문을 줄여 식비를 아끼겠다는 아주 창의적이고 비참한 계획.
유설하는 품에서 종이를 꺼내 침상 위에 던졌다.
`외문 정리 시험`
통과자: 외문 잔류.
탈락자: 흑석광산 파견.
선우혁은 종이를 읽고 물었다.
“파견이라 쓰고 노역이라 읽는 거죠?”
“대부분 그렇게 읽지.”
“대부분이 맞는 세계는 별로 발전이 없는데.”
유설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도 그 말에는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시험 내용은 세 가지였다. 기초 호흡법 운용, 하급 부적 판독, 목검 대련. 선우혁의 몸으로는 셋 다 힘들었다. 특히 대련은 문제였다. 이 몸은 맞으면 잘 쓰러졌다. 아주 재능 있게 쓰러졌다.
그는 종이를 접었다.
“사흘이면 충분하겠네요.”
유설하가 그를 보았다.
“죽을 준비 하기에?”
“아뇨. 꼼수 준비하기에.”
유설하는 그 말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수련에 꼼수는 없어.”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미 강하더군요.”
선우혁은 침상에서 다리를 내렸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자 몸 전체가 흔들렸다. 그는 벽을 잡았다. 유설하가 도와주려 했지만, 그는 손을 들어 막았다.
“잠깐. 지금 도와주면 자존심이 다칩니다.”
“방금 일어서다 넘어질 뻔한 자존심?”
“상처 입은 자존심은 더 조심히 다뤄야 합니다.”
유설하는 한숨을 쉬었다.
선우혁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 책상 위에 낡은 죽간이 있었다. `청허기초납기법`. 기억 속에서 선우혁이 매일 붙잡고 실패하던 호흡법이었다. 그는 죽간을 펼쳤다.
문장은 간단했다. 숨을 들이쉬고, 영기를 단전으로 이끌고, 단전에서 세 바퀴 돌린 뒤 팔다리로 보낸다.
선우혁은 첫 줄에서 멈췄다.
“이거 누가 썼습니까?”
“초대 장문인이 남긴 기초법이야.”
“그분은 글을 싫어하셨나 보군요.”
“무슨 뜻이야?”
“설명이 빠진 회로도입니다. 그것도 선이 세 군데 끊어진.”
유설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회로도?”
“아, 여기서는 그런 말을 안 쓰나.”
선우혁은 죽간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영기를 단전으로 이끈다. 말은 쉽다. 하지만 영기는 물이 아니다. 기억 속 감각으로 보면 이 세계의 영기는 마나와 비슷하면서 달랐다. 마나는 의지에 반응하고, 영기는 몸과 호흡과 경로에 더 민감했다.
그렇다면 억지로 모으면 샌다.
선우혁의 단전은 이미 새고 있었다. 정상적인 호흡법은 그에게 독이었다. 주머니가 찢어졌는데 물을 붓는 꼴이다.
“연필 있습니까?”
“연필?”
“아, 붓.”
유설하는 붓과 먹을 가져왔다. 선우혁은 죽간 내용을 종이에 옮기기 시작했다. 글자 대신 선을 그렸다. 배꼽 아래 단전, 가슴의 중단, 미간의 상단. 팔다리로 뻗는 경로. 막힌 곳과 새는 곳.
유설하는 말없이 보다가 물었다.
“너 원래 이런 걸 할 줄 알았어?”
선우혁은 아주 자연스럽게 거짓말했다.
“어제 죽다 살아나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거짓말.”
“그럼 맞다 살아나며 얻었습니다.”
“그건 조금 믿기네.”
첫 번째 실험은 실패했다.
선우혁은 호흡을 따라 영기를 들이마시려 했다. 영기는 들어오긴 했다. 아주 조금. 먼지처럼. 문제는 그 먼지가 단전에 닿자마자 옆구리로 빠져나갔다는 점이었다.
그는 침상 위에서 굴렀다.
“아프네.”
유설하가 팔짱을 꼈다.
“당연하지. 단전이 찢어졌다고 했잖아.”
“네. 그런데 찢어진 방향이 예술적입니다.”
“뭐?”
선우혁은 통증을 참으며 웃었다. 단전의 균열은 무작위가 아니었다. 외부 충격으로 생긴 균열이지만, 세 갈래로 갈라진 모양이 묘했다. 마법진으로 치면 분산 회로에 가깝다.
정상적인 수선자는 균열을 막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카일은 달랐다. 마법사는 망가진 회로도 쓴다. 폭발하지만 않으면 대체로 자원이다.
“단전 하나에 영기를 모으지 않겠습니다.”
“그럼 어디에 모아?”
“새는 곳에요.”
유설하가 처음으로 말문을 잃었다.
선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반응입니다. 저도 제가 미친 소리를 한다는 건 압니다.”
그때 방문 밖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선우혁! 살아 있으면 약값부터 갚아!”
작은 체구의 소녀가 약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머리는 대충 묶었고, 소매에는 약초 가루가 묻어 있었다. 눈은 반짝였지만 따뜻한 쪽은 아니었다. 돈을 받을 사람의 눈이었다.
당소미.
외문 약당의 약사 견습. 나이는 비슷하지만 말투는 장부를 닮았다. 선우혁의 기억 속에서 그녀는 두 종류의 사람을 싫어했다. 약값 안 내는 사람과 약효 없다고 우기는 사람. 선우혁은 첫 번째였다.
“아직 안 죽었네?”
“다들 인사가 독특하군요.”
“죽었으면 약값을 못 받으니까 걱정했지.”
당소미는 침상 옆에 약병을 내려놓았다. 냄새가 지독했다. 선우혁은 병을 들여다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이걸 먹으면 낫습니까?”
“아니. 덜 아프게 앓아.”
“상당히 정직한 상품 설명이네요.”
“정직해야 환불을 안 해.”
선우혁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기로 했다. 최소한 이 사람은 사기 칠 때도 가격표를 붙일 타입이었다.
당소미는 선우혁이 그려 놓은 종이를 보았다.
“뭐야 이건. 부적이야?”
“호흡법 수정안입니다.”
“외문 꼴찌가 기초 호흡법을 수정해?”
“네.”
“맞아서 머리도 다쳤구나.”
유설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혁은 배신감을 느꼈다. 방금까지 협력자 분위기 아니었나.
당소미는 종이를 빼앗아 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선이 이상하게 이어지네. 이대로 돌리면 단전에 모이는 게 아니라 옆으로 퍼질 텐데?”
선우혁의 눈이 빛났다.
“보입니까?”
“약당에서는 경락도 정도는 봐. 이건 경락도는 아닌데, 하여튼 이상해.”
“이상하면 됩니다.”
“이상하면 죽어.”
“제가 살던 곳에선 이상하면 논문을 씁니다.”
“논문이 뭔데?”
“사람을 말로 죽이는 고급 부적입니다.”
당소미는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좀 배워 보고 싶네.”
선우혁은 두 사람 앞에서 두 번째 실험을 했다.
이번에는 영기를 단전 한가운데로 밀어 넣지 않았다. 균열 끝에 닿기 전에 세 갈래로 나누었다. 아주 얇게. 마법 회로에서 과부하를 피할 때 쓰던 방식이었다. 마나는 없었지만 계산은 남아 있었다.
영기가 들어왔다.
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샜다. 하지만 새는 방향을 그가 정했다. 오른쪽 옆구리, 왼쪽 허리, 등 아래쪽으로 흐른 영기가 아주 잠깐 머물렀다. 작은 불씨처럼.
선우혁은 웃었다.
그 직후 코피가 터졌다.
당소미가 손뼉을 쳤다.
“봐. 죽는 쪽으로 이상하잖아.”
유설하는 급히 수건을 던졌다.
선우혁은 수건으로 코를 막고 말했다.
“아닙니다. 성공입니다.”
“코피가?”
“마법사에게 코피는 성공의 영수증 같은 겁니다.”
“그럼 대마법사는 빈혈로 죽겠네.”
선우혁은 반박하려다 멈췄다. 사실 전생에도 비슷한 이유로 몇 번 쓰러졌다. 당소미의 말은 불쾌하게 정확했다.
유설하는 종이를 다시 보았다.
“이 방식은 위험해. 영기를 단전 밖에 머물게 하는 건 정석이 아니야.”
“정석대로 하면 광산에 갑니다.”
“그래도 몸이 버티지 못하면 시험 전에 쓰러져.”
“그래서 약이 필요합니다.”
당소미가 바로 손을 내밀었다.
“선불.”
선우혁은 빈 소매를 털었다. 동전 하나 나오지 않았다. 기억 속의 선우혁은 가난했다. 아주 성실하게 가난했다. 그는 유설하를 보았다. 유설하는 시선을 피했다.
“내가 왜?”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눈으로 했어.”
당소미는 약상자를 닫았다.
“돈 없으면 약 없어.”
선우혁은 잠깐 고민했다. 대마법사 시절에는 왕국 예산으로 마력석을 태웠다. 지금은 약값 하나가 없다. 인생의 낙폭이 조금 과했다.
그는 책상 위의 낡은 부적 조각을 집었다.
“이거 고쳐 드리면 약값으로 쳐줍니까?”
당소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부적을 고친다고?”
“고친다기보다, 왜 안 되는지 비웃어 줄 수 있습니다.”
부적은 하급 청결부였다.
옷의 먼지를 털고 작은 오염을 지우는 부적. 전투에는 아무 도움도 안 되지만 외문에서는 꽤 쓸모가 있었다. 문제는 이 부적이 반쯤 타 있었다는 점이었다.
선우혁은 부적 선을 보았다. 선협세계의 부적은 마법진과 달랐다. 하지만 완전히 다르지는 않았다. 기운을 모으고, 방향을 주고, 발동 조건을 고정한다. 이름만 다르지 원리는 친척이었다. 사이가 나쁜 친척.
그는 붓을 들었다.
“여기 선이 너무 정직합니다.”
당소미가 물었다.
“정직하면 안 돼?”
“기운은 정직한 길을 싫어합니다. 특히 싸구려 부적에서는요. 조금 비틀어야 오래 갑니다.”
“싸구려라니. 그거 내 상품인데.”
“그래서 더 잘 압니다.”
당소미가 약병을 들어 위협했다. 선우혁은 빠르게 선을 고쳤다. 먹이 마르자 부적이 약하게 빛났다. 방 안 먼지가 한쪽으로 밀려났다.
당소미의 눈이 커졌다.
“진짜 되네?”
선우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원래 말이 되는 사람입니다.”
유설하는 눈썹 하나만 움직인 채 상대를 재었다.
“그 말이 제일 안 믿겨.”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정확히는 당소미가 퍼뜨렸다. 그녀는 약값 대신 부적 수리 열 장을 받아 갔고, 가는 길에 외문 약당 사람들에게 “선우혁이 맞고 나더니 이상하게 쓸모 있어졌다”고 말했다. 칭찬인지 모욕인지 애매했지만, 선우혁은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람이 살려면 해석 능력이 좋아야 한다.
오후가 되자 외문 숙소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네가 부적 고쳤다며?”
“퇴출 시험 전에 내 것도 봐 줘.”
“선불은 없고 통과하면 갚을게.”
선우혁은 문을 닫았다.
“세상은 어디나 똑같군.”
유설하가 물었다.
“뭐가?”
“돈 없는 사람들이 제일 창의적으로 외상 부탁합니다.”
그는 다시 종이를 펼쳤다. 사흘. 시험까지 사흘. 그 안에 몸을 고치고, 호흡법을 바꾸고, 목검 대련을 버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전생이었다면 쉬웠다. 공간 고정, 사고 가속, 삼중 방벽. 지금은 아무것도 못 쓴다.
선우혁은 손가락으로 종이를 두드렸다.
“못 쓰는 게 아니라, 이름을 바꿔야 하는 건지도 모르지.”
밤이 되자 청허문은 더 초라해졌다.
낮에는 낡은 전각도 산빛에 가려 그럴듯해 보였다. 밤에는 숨길 게 없었다. 처마는 기울었고, 마당 돌은 깨졌고, 훈련장 깃발은 반쯤 찢어졌다. 종문이라기보다 폐업 직전 객잔 같았다.
선우혁은 마당에 앉아 호흡을 반복했다.
들숨.
영기 세 갈래 분산.
멈춤.
고통.
욕.
날숨.
유설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감시자처럼 보였지만, 실은 넘어지면 주워 가려는 사람에 가까웠다. 선우혁은 그 친절을 모르는 척했다. 자존심은 아직 회복 중이었다.
세 번째 순환에서 등 아래쪽에 작은 열이 남았다. 아주 작았다. 촛불이라기보다 꺼져 가는 향 끝의 불씨.
하지만 남았다.
선우혁은 숨을 멈췄다.
전생의 마법 회로는 원을 만들었다. 이 세계의 영기 순환도 원을 원했다. 그런데 그의 몸은 원을 만들 수 없었다. 그렇다면 원 대신 별자리를 만들면 된다.
“아.”
그는 작게 웃었다.
“망가진 몸이 아니라, 회로판이었네.”
유설하가 다가왔다.
“또 이상한 생각 했지?”
“표정으로 압니까?”
“코피 나기 직전 표정이야.”
선우혁은 코를 만졌다. 아직은 멀쩡했다.
그는 바닥에 작은 점 세 개를 찍었다. 오른쪽 옆구리, 왼쪽 허리, 등 아래. 단전 균열이 흘러가는 지점. 정상적인 수련자는 버릴 자리였다. 하지만 영기가 잠깐이라도 머문다면 저장점으로 쓸 수 있다.
“단전 하나가 깨졌으면 작은 단전 셋을 만들면 됩니다.”
유설하는 한 걸음 물러나며 길을 막았다.
“그런 수련법은 없어.”
“지금 만들면 생깁니다.”
“만들다 죽으면?”
“창시자 사망으로 전설이 되겠죠.”
“농담하지 마.”
유설하의 목소리가 조금 날카로워졌다. 선우혁은 그녀를 보았다. 이 사람은 냉정해 보이지만, 냉정한 척을 꽤 열심히 하는 쪽이었다. 좋은 정보였다.
그는 손을 들었다.
“안 죽겠습니다. 적어도 사흘 안에는.”
“그 뒤에는?”
“그 뒤에는 일정 보고 결정하죠.”
유설하는 한숨을 쉬었다.
다음 날 새벽, 외문 훈련장에 북이 울렸다.
선우혁은 거의 기어가다시피 도착했다. 몸은 어제보다 조금 나아졌지만, 그건 ‘죽을 것 같다’가 ‘매우 아프다’로 바뀐 정도였다. 큰 발전이었다. 기준을 낮추면 세상은 늘 희망적이다.
훈련장에는 외문제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 중 절반은 퇴출 시험에서 떨어질 예정이었다. 모두 눈빛이 날카로웠다. 먹을 밥그릇이 줄어들면 사람은 금방 검이 된다.
교두가 목검을 나누어 주었다.
선우혁은 목검을 들고 무게를 확인했다. 가볍다. 너무 가볍다. 전생의 지팡이보다 못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팔에는 이마저 무거웠다.
옆에서 누군가 비웃었다.
“선우혁, 오늘은 서 있기만 해도 장하다.”
기억 속 얼굴. 어제 그를 때린 외문 사형 중 하나였다. 이름은 조문기. 실력은 애매한데 목소리는 크다. 모든 조직에 한 명쯤 있는 재난형 인간.
선우혁은 미소 지었다.
“고맙습니다. 사형은 말만 해도 피곤하니 더 장하시네요.”
훈련장이 잠깐 조용해졌다.
조문기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 역시 입은 아직 8클래스였다.
목검 대련은 재앙이었다.
선우혁은 첫 합에서 손목이 저렸다. 둘째 합에서 무릎이 흔들렸다. 셋째 합에서 자존심이 먼저 쓰러졌다. 그는 간신히 목검을 들어 막았다.
조문기는 웃었다.
“꼼짝도 못 하겠지?”
“예. 생각보다 더 못 하겠네요.”
“뭐?”
솔직함은 가끔 상대를 당황하게 한다. 선우혁은 그 틈에 발을 옮겼다. 검술로 이길 생각은 없었다. 이 몸은 검술을 하기엔 너무 정직하게 약했다.
대신 그는 훈련장 바닥을 보았다. 깨진 돌, 모래, 어젯밤 이슬이 마르지 않은 곳. 조문기의 오른발은 늘 젖은 돌을 피해 갔다. 습관이었다. 사람은 강할 때도 습관으로 빈틈을 만든다.
선우혁은 일부러 왼쪽을 비웠다.
조문기가 들어왔다.
그 순간 선우혁은 목검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공격이 아니었다. 바닥의 젖은 모래를 튕겼다.
“이런 비겁한!”
조문기의 눈이 감겼다.
선우혁은 낮게 중얼거렸다.
“전술적 먼지입니다.”
그리고 옆으로 굴렀다.
그는 멋지게 이기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아주 안 멋지게 버텼다. 조문기는 화가 나서 더 세게 휘둘렀고, 선우혁은 굴렀고, 피했고, 가끔 모래를 찼고, 한 번은 실수인 척 목검을 놓쳤다. 놓친 목검은 조문기의 발등에 떨어졌다.
“너!”
“죄송합니다. 손에 힘이 없어서.”
거짓말은 아니었다.
교두의 얼굴은 점점 복잡해졌다. 유설하는 멀리서 이마를 짚었다. 당소미는 약당 쪽 담장 위에 앉아 손가락으로 뭔가 계산하고 있었다. 아마 치료비일 것이다.
대련은 선우혁이 넘어지며 끝났다. 조문기의 목검이 그의 어깨를 스쳤고, 선우혁은 그대로 바닥을 굴러 선 밖으로 나갔다.
패배.
하지만 조문기 역시 눈에 모래가 들어가고 발등을 다쳐 절뚝였다.
교두는 명단을 접고 후보들의 발끝을 훑었다.
“선우혁, 졌다.”
선우혁은 바닥에 누운 채 손을 들었다.
“네. 하지만 생각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몇몇 외문제자가 웃음을 참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훈련이 끝난 뒤 유설하가 그를 끌고 나왔다.
정확히는 멱살을 잡고 운반했다. 선우혁은 항의하려 했지만 숨이 부족했다. 대마법사 시절에는 순간이동으로 전장을 가로질렀는데, 지금은 내문 후보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다. 인생은 참 교육적이었다.
“너 일부러 졌지?”
유설하가 물었다.
“일부러 이기진 못했습니다.”
“말장난하지 말고.”
선우혁은 벽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지금 이 몸으로 이기면 다음엔 더 센 놈이 옵니다. 오늘은 약하지만 귀찮은 놈 정도로 보이면 됩니다.”
유설하는 잠깐 침묵했다.
“그런 계산은 누가 가르쳤어?”
“오래 살다 보면 배웁니다.”
“열여덟이잖아.”
“마음은 좀 더 삭았습니다.”
유설하는 그의 눈을 보았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얼굴이었다. 선우혁은 시선을 피했다. 전생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해 봐야 미친놈 취급이다. 이미 반쯤은 그렇게 보고 있기도 하고.
그때 당소미가 약병을 흔들며 나타났다.
“둘이 분위기 잡는 건 좋은데, 피 흘리는 쪽이 먼저야.”
약당은 향긋하지 않았다.
선우혁은 약당이라면 허브 냄새와 따뜻한 차를 기대했다. 현실은 쓴 약, 탄 뿌리, 오래된 항아리, 그리고 돈 냄새였다. 당소미는 그를 의자에 앉히고 상처에 약을 발랐다.
“아픕니다.”
“약이니까.”
“약은 원래 아픕니까?”
“공짜로 바르려는 사람한테는 더 아파.”
선우혁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당소미는 그의 옆구리를 누르다가 멈췄다.
“너 여기 뭐 했어?”
“맞았습니다.”
“그거 말고. 영기가 이상하게 고여 있어. 단전도 아닌데.”
유설하가 즉시 다가왔다.
“보여?”
“약당에서 환자 몸 보는 건 기본이야. 근데 이건 기본이 아닌데.”
당소미는 선우혁을 보았다.
“너 진짜 뭘 한 거야?”
선우혁은 잠깐 고민했다. 둘 다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혼자서는 사흘 안에 몸을 버티게 만들기 어렵다. 대마법사도 재료와 조수가 필요하다.
“새 단전을 만들었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미쳤어?”
이렇게 호흡이 맞을 줄은 몰랐다.
설명은 길어졌다.
선우혁은 마법이라는 단어를 빼고 말했다. 회로도도 조금 순화했다. 단전이 깨져 영기를 모을 수 없으니, 균열 끝의 경락에 임시 저장점을 만든다. 저장점은 작고 불안정하지만, 세 개를 동시에 쓰면 짧은 시간 몸을 보강할 수 있다.
유설하는 위험성을 짚었다.
“경락이 타 버릴 수 있어.”
당소미는 비용을 짚었다.
“경락 타면 약값 세 배야.”
둘 다 중요한 의견이었다.
선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안정제가 필요합니다. 영기가 머무는 곳을 식혀 줄 약.”
당소미의 눈이 빛났다.
“냉월초?”
“있습니까?”
“있긴 한데 비싸.”
“외상은?”
“방금 약값도 외상인데?”
선우혁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약당 구석에 쌓인 실패한 부적과 깨진 약로를 보았다. 쓰레기처럼 보였지만, 그에게는 재료였다.
“고장 난 부적과 약로를 고쳐 드리죠.”
당소미가 팔짱을 꼈다.
“얼마나?”
“퇴출 시험 전까지 쓸 수 있을 만큼.”
“그럼 냉월초 잎 세 장.”
“열 장.”
“네 장.”
“아홉 장.”
유설하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둘 다 환자 앞에서 흥정하지 마.”
“제가 환자입니다.”
선우혁은 붓 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흥정 중입니다.”
결국 냉월초 잎 여섯 장으로 합의했다.
당소미는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선우혁도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유설하는 둘 다 졌다고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셋 다 나름 행복했다.
그날 오후, 선우혁은 약당 구석에 앉아 고장 난 부적을 고쳤다. 청결부, 온열부, 소음차단부. 전투용은 없었지만, 기초 부적은 이 세계의 문법을 배우기에 좋았다.
부적의 선은 주문식과 닮았다. 다만 이쪽은 기호보다 획의 흐름이 중요했다. 먹의 농도, 붓이 멈춘 시간, 영기가 들어가는 방향. 마법진보다 더 몸에 가까웠다.
선우혁은 빠르게 배웠다.
당소미는 더 빠르게 물건을 쌓았다.
“이것도.”
“환자입니다.”
“손은 멀쩡하잖아.”
“손도 환자입니다.”
“그럼 입은?”
“입은 건강합니다.”
“그건 알아.”
유설하는 옆에서 수정된 부적들을 살폈다. 그녀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
“선이 단순해졌는데 효율은 올라갔어.”
선우혁은 붓을 털었다.
“복잡한 식이 항상 좋은 건 아닙니다. 특히 만든 사람이 자기가 똑똑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그린 식은요.”
당소미가 물었다.
“너 지금 부적사들 욕했어?”
“아뇨. 전생의 저도 같이 욕했습니다.”
밤이 깊자 첫 임시 회로가 안정됐다.
오른쪽 옆구리에 작은 열, 왼쪽 허리에 차가운 점, 등 아래에 묵직한 압력. 셋은 단전이 아니었다. 하지만 영기를 아주 조금 붙잡았다. 선우혁은 그것들을 별점이라 부르기로 했다. 단전이라는 이름은 너무 엄숙했다. 별점은 귀엽고, 실패해도 덜 슬펐다.
그는 냉월초 잎을 씹었다.
맛은 끔찍했다.
“이걸 돈 받고 팔아요?”
당소미는 약상자 잠금쇠를 딸깍 닫았다.
“효과가 있으면 팔 수 있어.”
“맛은요?”
“맛있으면 더 비싸.”
합리적인 세계였다.
선우혁은 눈을 감고 영기를 돌렸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단전으로 들어온 영기가 세 갈래로 흩어지고, 별점에 닿아 잠깐 멈춘 뒤 다시 중앙으로 돌아왔다. 완전한 원은 아니었다. 삼각형에 가까웠다.
마법진의 기본형.
그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유설하가 물었다.
“왜 웃어?”
“아는 모양이 나왔습니다.”
“그게 좋은 거야?”
“제가 아는 건 대체로 위험하지만 쓸 만합니다.”
당소미는 약병을 흔들며 눈을 가늘게 떴다.
“위험하면 약값 추가.”
셋째 날 아침, 선우혁은 혼자 훈련장에 섰다.
몸은 여전히 약했다. 단전은 여전히 찢어져 있었다. 마나는 여전히 없었다. 상황을 목록으로 적으면 우울했다. 그래서 그는 목록을 찢었다.
대신 가능한 것만 세었다.
별점 세 개.
하급 부적 다섯 장.
냉월초 잎 두 장.
유설하의 감시.
당소미의 외상 장부.
마지막 두 개는 자산인지 부채인지 애매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는 목검을 들고 천천히 움직였다. 검술은 못 한다. 하지만 검의 궤적은 계산할 수 있다. 상대가 휘두르는 각도, 발의 위치, 호흡이 끊기는 순간. 마법사는 전장에서 늘 그걸 했다. 거대한 주문을 완성할 시간을 벌기 위해, 죽지 않을 각도를 찾았다.
지금도 같았다. 주문은 없지만 각도는 있었다.
목검이 공기를 갈랐다.
옆구리의 별점이 뜨거워졌다.
선우혁은 반 박자 빠르게 발을 뺐다. 몸이 가벼워진 것은 아니었다. 대신 넘어질 방향을 미리 고를 수 있었다.
“좋아.”
그는 숨을 내쉬었다.
“품위는 버리고 생존율을 얻었다.”
퇴출 시험 당일, 청허문 외문은 장터처럼 시끄러웠다.
누군가는 밤새 수련했고, 누군가는 몰래 도망치려다 잡혔고, 누군가는 마지막으로 빚을 정리했다. 선우혁은 그 모든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망해 가는 종문도 사람 사는 곳이라, 망하는 방식이 참 다양했다.
교두가 명단을 불렀다.
“선우혁.”
그는 앞으로 나갔다. 몇몇이 웃었다. 조문기도 그중 하나였다. 발등은 아직 붕대로 감겨 있었다. 선우혁은 그쪽을 보고 친절하게 고개를 숙였다. 조문기의 얼굴이 구겨졌다.
첫 시험은 호흡법 운용.
외문제자들은 차례로 영기를 단전에 모아 돌렸다. 빛이 약하게 피어올랐다. 누군가는 안정적이었고, 누군가는 흔들렸다. 선우혁 차례가 되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는 자리에 앉았다.
들숨.
영기 유입.
단전 통과.
세 갈래 분산.
별점 점화.
그의 몸 주변에 아주 희미한 삼각형 빛이 떠올랐다.
교두의 눈이 커졌다.
“저건 뭐냐?”
선우혁은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기초 호흡법입니다.”
유설하가 멀리서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잖아.”
시험장은 술렁였다.
정상적인 청허기초납기법은 단전 주변에 둥근 기운을 만든다. 선우혁의 기운은 삼각형이었다. 누가 봐도 이상했다. 하지만 이상한 것과 실패한 것은 다르다. 그의 영기는 새지 않았다. 적어도 시험관이 셀 때까지는 버텼다.
교두는 한참을 보다가 말했다.
“통과.”
외문제자들이 웅성거렸다. 조문기는 이를 갈았다. 당소미는 담장 너머에서 손가락으로 여섯을 만들었다. 약값 잊지 말라는 뜻이었다. 정말 한결같은 사람이다.
두 번째 시험은 부적 판독이었다.
탁자 위에는 고장 난 하급 부적 세 장이 놓였다. 선우혁은 속으로 웃었다. 이건 거의 집밥이었다. 그는 부적을 보자마자 문제를 짚었다.
“첫 번째는 획이 끊겼고, 두 번째는 먹 농도가 과해서 영기가 막혔고, 세 번째는 만든 사람이 자존심이 강합니다.”
교두가 멈칫했다.
“세 번째는 무슨 뜻이냐?”
“불필요하게 복잡합니다.”
시험관 한 명이 헛기침을 했다. 아마 그가 만든 모양이었다.
선우혁은 뒤늦게 깨달았다.
아, 사회생활.
이 몸에는 그것도 약했다.
마지막은 목검 대련이었다.
상대는 조문기였다. 우연치고는 악의가 너무 선명했다. 선우혁은 교두를 보았고, 교두는 시선을 피했다. 망한 종문에는 공정함도 예산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조문기가 웃었다.
“이번엔 모래 안 통한다.”
“그럼 다른 걸 써야죠.”
“뭐?”
시작 북이 울렸다.
조문기는 곧장 달려들었다. 빠르고 거칠었다. 전날보다 더 흥분했다. 선우혁은 첫 타를 피하지 않았다. 목검을 비스듬히 세워 충격을 흘렸다. 팔이 저렸다. 뼈가 울렸다. 하지만 별점 셋이 동시에 뜨거워졌다.
몸이 아주 잠깐 버텼다.
그 찰나에 선우혁은 왼발을 조문기의 발 안쪽에 걸었다. 공격이 아니라 위치 조정. 조문기의 검은 이미 내려오고 있었고, 무게중심은 앞에 있었다.
선우혁은 목검 손잡이로 상대 손목을 쳤다.
툭.
작은 소리.
큰 결과.
조문기의 목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선우혁도 같이 주저앉았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보셨죠? 품위는 없지만 결과는 있습니다.”
퇴출 시험 결과, 선우혁은 통과했다.
넉넉한 통과는 아니었다. 가까스로, 애매하게, 시험관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마지못해 적은 통과였다. 그래도 통과는 통과다. 광산으로 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오늘 밤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유설하는 그를 보며 말했다.
“너, 정체가 뭐야?”
당소미도 옆에서 팔짱을 꼈다.
“그리고 약값은 언제 갚아?”
선우혁은 두 질문을 놓고 잠깐 고민했다. 어느 쪽이 더 무서운가. 정체를 들키는 것? 아니면 약값을 밀리는 것? 놀랍게도 두 번째가 더 현실적으로 무서웠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저는 그냥 조금 이상한 외문제자입니다.”
유설하는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당소미는 장부를 꺼냈다.
그때 산문 쪽에서 낡은 종이 울렸다.
끊긴 줄 알았던 청허문의 영맥이 아주 짧게 빛났다. 선우혁의 별점 세 개도 동시에 반응했다. 마나가 아닌 힘. 하지만 계산할 수 있는 힘.
이 세계에는 마나가 없었다.
선우혁은 잠시 절망했다.
그리고 곧장 웃었다.
없으면, 비슷한 걸 훔쳐 쓰면 된다.